신의 존재 증명 - sin-ui jonjae jeungm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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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데카르트의 『성찰』(Meditations)을 중심으로 신 존재증명을 논증 한다. 데카르트의 신 존재증명 방식은 공식적으로 전통적인 신앙이 아니라 넌크리스천을 위해 기하학적 방식으로 이성에 호소하였다는 점을 분석적 방식(대부분 Georges Dicker의 방식)을 사용해서 밝힐 것이다. 그의 신 존재 논증은 『성찰 III』에 나타난 첫 번째, 두 번째 증명과 『성찰 V』의 세 번째 증명이다. 데카르트는 『성찰 III』에서 신의 관념은 내 안에 있지만 그 관념의 원인자는 신이며(첫 번째 논증), 이에 근거하여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유하는 자아의 존재를 신만이 원인자(두 번째 논증)라는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관념들을 형상적 실재성(formal reality)과는 다른 표상적 실재성(representative reality)의 차등에 따라 위계가 정해진다는 것을 진술하고, 이 실재성의 차등이 결과와 원인으로 동일하게 적용되어 최초의 관념인 신에게로 나아가며 나의 존재의 원인(나는 누구로부터 나왔는가?)도 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논증한다. 세 번째 논증인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에서 필자는 최고의 완전한 존재자인 신이 모양이나 수를 증명하는 것과 수학의 확실성 못지않게 신의 존재(완전성)가 그의 본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명석 판명하다는 데카르트의 논증을 살핀다. 이를 통해 필자는 그의 신 존재증명의 의도와 의의가 신은 회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를 보증하는 것 즉, 이성을 만족시키고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신의 존재 밖에 없었기 때문에 신이 요구되었으며, 인간 이성의 명석 판명한 지각이 참된 인식일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해주는 궁극적 근거의 확보였다는 것을 고찰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증명이 전통적인 노선(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존재증명은 전통과는 다른 의미의 증명이며 전적으로 다른 의미의 신 존재였다(Jean-Luc Marion)는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This paper's purpose is to seek to grasp how Descartes demonstrates proofs of God's existence on the basis of his works especially Meditations. To consider these points, I shall explore first, second, third proofs that are present in his works, and contents related to God. Descartes argues that there is idea of God within me, but it is God, which is first proof. On the basis of this fact, Descartes shows only God is the cause of thinking self who has idea of God(second proof), both of them are called Cosmological argument. To investigate this, at first he states that representative reality that is different from formal reality sets a kind of hierarchy, the degree of this reality is equally applied to cause and effect, consequently to the cause of my idea or existence(God). From Meditation V, third proof which is called Ontological argument, Descartes examined a supremely perfect God can't be separated from God's existence(perfection) just as surly as the certainty of any shape or number, for example triangle, namely it is quite evident that God's existence includes his essence. Through these processes I shall examine following points: the way of having Descartes' proofs of God's existence itself is not only exposed, God's existence who guarantees cogito ergo sum which is never doubted, despite doubting all things that is outside, is but also postulated;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are an ultimate source of ensuring the clear and distinct perception of human reason, Descartes uses reason suitable for non-christians instead of faith suitable for Christians for these methods, which are similarities with the traditional views on the one hand, but nevertheless there are some of discontinuities establishing authority or power of the first philosophical principle to which God is subjected, on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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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 of God, Representative reality, Formal reality, Existence, Ontological argument, Cosmological argument, cogit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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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존재의 증명] (〔神 存在의 證明, 영 proofs of existence of God, 도 Gottesbeweise〕)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교부(敎父)나 스콜라 학자들에 의해서 시도된 바 있으며, 이 후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반복되었지만 이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종류였다. 1) 존재론(본체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 신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그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것으로 안셀무스에 의해서 최초로 제출되었다. 신이란 그것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완전한 것이고, 만약 신이 사고(思考) 속에만 있다거나 존재하는 속성을 지니지 않았다면 가장 완전한 것. 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은 반드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증명이다. 2) 우주론적 증명(cosmological) : 아리스토텔레스가 세계에서 운동의 원인으로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게 하는 것"을 인정하여 자연계에 있어서의 인과 관계에서 제일 원인 또는 자기 원인을 이끌어내어 신의 존재를 추리하려는 방법이다. 3) 목적론적 증명(teleological argument) : 물리 신학적 증명이라고도 한다. 자연 질서의 합목적성에서 그 설계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인지하려 하는 것. 4)도덕적 증명 (moral argument): 도덕 법칙 및 도덕적 세계 질서에 의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는 경우이다. 이 밖에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최고 완전자로 간주되는 신의 개념으로부터 그 원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 데카르트의 증명도 유명하다. 칸트는 신의 존재를 이론에 의해서 증명하는 방법을 부정하고, 인간의 도덕적 의식의 요청에 따라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 만족했다 (→실천이성의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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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는 인간 역사와 함께 한다.

 
누구는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은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탐구되어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형이상,이하 불문  과학,비과학 불문 수 많은 답이 있다. 

Gottesbeweis유형을 구분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1. 직관 ㅡ 사람은 직관으로 신의 존재를 안다.  그러나 신을 직관하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도 많다.  그들은 불행하다.  마치 장님으로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더욱 불행한 것은 그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이다.

 - 귀신에 대한 정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유사하다.(칼 융-티벳 사자의 서, 정신세계사 174쪽)  왜 유사할까? 사실이니까 유사한 것이다.

지적설계론(진화론에서의 자연선택이 주장하는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메커니즘으론 설명할 수 없는 생명체의 복잡함이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그 복잡성을 이르는 말.

(**)프시능력의 초상현상(ESP와 PK)에 대한 파라사이콜로지, 양자역학, 이안 스티븐슨의 전생연구 이븐 알렉산더의 NDE연구.. 과학적이려면 양심적이어야 한다.(200126)

- 지구에서 일어난 이 어마무시한 확률의 사건을 다른 행성에서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좀 우습지 않은? (버지니아 대학의 천문학자인 R. T. Rood와 J. S. Trefil은 'Are We Alone?')

- (160720) 신이 이 광대한 우주(항성만 400해 개)를 인간만을 위하여 준비하였다고 보기에는 낭비적이다. 또 다른 지적 설계에 의한 진화가 또 다른 우주와 행성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 질 수도 있다. 외계인에 대한 숱한 증거들. 삼천대천세계를 이야기하는 불교의 직관. 끝없이 늘어나는 지구의 인구를 보라. 

 - 이들은 모두 거의 유사한 체험담을 말하고 있다. 단지 이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말은 신빙성을 얻는다.

 - 남이 먹여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먹지 않으면 나만 죽는다"는 심정으로 진지하게 그들의 말을 들어라. 그럼 금방 그들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혹 당장은 믿어지지 않더라도 삶이 그들의 말이 사실임을 깨우쳐 줄 것이다.  

(**) 유사과학,의사과학, 사이비과학이라고 한다. 불교도 기독교도 다 사이비종교였다. 순복음정도로만 커져도 사이비라 감히 말 못한다.  사이비란 원래 무엇이었던가. 신념을 팔아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면 사이비다. 오늘날 대표적인 사이비는 유물론적 과학주의와 근본주의라는 것을 덕과 통찰력을 갖춘 양심가(3단계 자아)라면 모르지 않는다,(200125)

성경에는 창조신화, 아브라함의 하느님,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하느님 계획이 드러나 있다. 이는 인류의 역사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적절하다. 

(**) 써 놓고도 좀 불안하다.

20. 과학법칙

수학, 물리학, 화학, 화성악, 경제학... 학문에 산재한 많은 과학법칙들. 과학법칙은 없던 걸 발명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이리 저리 뒤져보고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보물찾기에서 찾아낸 것이다. 보물찾기에는 보물과 보물을 숨긴 존재가 전제된다. 보물찾기는 하느님 찾기다. 이를 확대하면 사실 모든 학문이 하느님의 존재를 보여준다. 논리정연. 학문적. 이치. 도리. 질서... 이는 학문의 속성이자 신의 속성이다.

가속도의법칙, 만유인력 법칙,샤를의 법칙,각종 전기에 관한 법칙, 열량법칙,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어느 한 가지 신기하지 않은 게 없다. 神奇!

http://blog.naver.com/jjcpa/70182049374

첫번째 요소 : 설계의 증거 (Evidence for Design) 

설계의 증거들은 다음과 같이 세 부류가 있다.

(1) 자연이 취하고 있는 단순한 수학적 형태

(2)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한 모든 우주 상수들의 절묘한 일치

(3) 그러한 절묘한 일치를 주기위한 결정적인 초기조건.

21.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열역학제2법칙)

-시간이 갈 수록 우주는 무질서해진다.  엔트로피가 감소하려면 줄이려면, 외부에서 ‘일(work)’을 해 줘야만 한다. 누가 그 일을 해줄까?

-(200816) 염색체 속의 유전자는 극히 안정된 물질이다. 그 조직 내에서는 커다란 실수를 발견하기 어렵다. 즉 두 개의 코를 가진 사람이나 다리가 세 개인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신체적인 특징은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 염색체 안에 잘 보관되어 있고, 그곳에선 매우 높은 질서와 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다이러한 사실은 생명이 임의의 무기물질을 흡수하여 매우 안정된 구조로 조직화시키고, 그 질서를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것은 엔트로피 감소이다. 자연이 어찌해서 스스로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재주를 갖추었을까? 외부에서 누군가 자연에 역행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그 재주를 부여해야 한다.(우주심과 정신물리학)

22.  살아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멀리 있더라도 그 사람이 느껴진다. 죽은 사람을 생각해 보라. 역시 그 사람이 느껴지지 않는가? 심지어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 살아있는 것일뿐이라고? 기억하는 것과 기억을 느끼는 것(추억)과는 큰 차이가 있다. 타다 팔아버린 차, 옛 애인과 같이 듣던 노래, 옛날 살던 집에 대한 추억은 신다 버린 신발, 가지고 놀던 장난감, 좋아하던 유행가 같은 기억과는 다르다.  어떤 기억은 함께 한 영혼들로 인해 추억이 되었기 때문이다.)

23. 유성생식 - 고등동물이 암수로 나뉘어 번식하는 이유는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유성생식이 유리해서라는데 이는 이유를 위한 이유, 현상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고 그 보다는 '누군가'가 보시기에 좋아서 그리된 것이다. 

- 180211 : 진화론에 따르면, 다양한 인종이 함께 존재해야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여 생존가능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유성생식과 같은 논리이다. 이 논리 역시 결과를 보고 이를 설명하는 논리이다. 주가가 떨어진 다음 이를 설명하는 수 백 가지 논리보다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단 한 가지 확실한 논리가 필요하다. 무성생식은 반드시 짝이 있어야 하는 유성생식에 비해서 과정이 단순하며 에너지 및 물질대사의 필요성이 낮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무성생식은 유전정보가 동일하므로 질병, 영양분의 결핍, 환경변화 등에 동일한 반응과 행동을 보이게 되며, 이로 인하여 개체군의 유지에 큰 변동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는 알려진 바와 같이 물벼룩이나 효모, 대장균처럼 필요시 유성생식으로 전환하면 된다. 따라서 유성생식이 훨씬 유리하여 사람이 유성생식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https://blog.naver.com/jjcpa/222101606403

24. 인과론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인과론이 진실이라는 전제하에 피조물이라는 결과에는 조물이라는 원인이 필요하다

- 이에 대한 반론 ㅡ 세상은 빅뱅으로 생겨났으며 생명의 원인은 진화이다.

- 빅뱅과 진화론에 대한 인과론적 반박
1. 최초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즉 빅뱅의 원인과 빅뱅전의 우주, 생명이전의 생명과 생명의 탄생을 설명하지 못한다.번개와 암모니아의 설. 외계기원설. 우주인 자손설 등은 허무맹랑한 설일뿐이다. see https://blog.naver.com/imillera/221333754195

2. 진화론의 '우연에 의한 선택과 도태'는 결과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리되면 결과가 원인이 되고 원인이 결과가 된다.  결국 인과론의 부정이다.
3. 종을 뛰어넘는 진화 증명이 불가(종간생명은 없음)하여 원인과 결과 사이에 고리가 끊어진다.

(170520 미사중 메모)

** '조물도 원인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에 대해 

- 조물은 조물이지 피조물이 아니다.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즉 조물은 원인이 없다

-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가 아니라 '닭을 누가 만들었나'다.

- 인과론은 사람이 창조주를 찾는 방편일뿐 섭리가 아니다. (1901)

25. DNA와 생명정보(180808)

https://blog.naver.com/imillera/221333760027

26. 간극의 신(180808)-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은 증거지만 숫자 채우는 심정으로

https://blog.naver.com/jjcpa/221206175479

27.

참고

신의 존재증명[Proofs of the existence of God, -存在-證明, Gottesbeweise ]

 - 171107 보완

1. 종교학대사전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은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탐구되어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은 아니지만, 인간이 제기하는 각종 질문의 근저에 숨어있는 억제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매우 뛰어난 <실존적>이며 <철학적>인 질문이다. 신의 존재는 영혼의 불멸이나 의지의 자유와 함께 형이상학의 근본 문제의 하나였다.

칸트는 형이상학의 이런 사변을 인간 이성의 초권행위로서 물리쳤다. 그러나 칸트의 비판은 신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많은 곤란함을 내포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였지만, 이런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곤란함이라는 것은 경험을 초월하는 곤란이며, 바꾸어 말하면 일상 언어와는 다른 형이상학적 언어의 체계를 확립하는 곤란이다.

신의 존재 증명 중에는

1. 우리들의 윤리적 경험을 뒤돌아보고 그것이 신의 존재를 실천적으로 요청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윤리적 증명과, - 1유형

2. 경험적 사물의 존재에서 출발해서 그것과는 근원적으로 구별되는 고차적인 실재 보통 <>의 이름으로 이해되는 것 에 도달하는 형이상학적 증명이 있으며 주로 철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것이다. 경험에서 출발하는 아 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 증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의 길>이며, 이는 경험세계에서 확실히 인정되는 운동변화, 작동인의 계열, 존재의 우연비필연성, 완전성의 단계, 목적지향성 등의 사실에서 출발해서 제1의 동자(動者), 1 작동인, 필연적 존재, 최고의 존재, 우주를 통재하는 지적 존재인 신에 도달한다는 의견이다. - 2유형

3. 이외에 안셀무스로 거슬러 올라가는아 프리오리(a priori), 또는 <본체론적>이라고 하는 증명, 즉 우리들이 신에 대해서 안고 있는 관념에서 곧바로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냐는 의견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 의미나 타당성을 둘러싸고 논쟁이 이루어진다. - 3유형

신의 존재증명에 의해서 결론지어지는 <철학자의 신>과 신앙의 대상으로서 신을 대립시킬 필요는 없지만, 신의 존재증명은 신의 탐구를 방향짓는 역할을 수행할 뿐으로, 소위 신과의 <실존적 만남>에까지는 유도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험과는 관계 없이 알 수 있는 진리, 이를테면 논리법칙이나 수학의 정리()를 ‘아프리오리한 진리’라 하고, 자연과학의 제반 법칙 등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진리를 ‘아포스테리오리한 진리’라고 함[a priori;a posteriori] (두산백과)

2. 철학사전

(1) 존재론(存在論 : 본체론本體論)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 -3유형

(2) 우주론적 증명(cosmo-logical argument) - 2-1유형

(3) 목적론적 증명(teleological argument) - 2-5유형

(4) 인간학적 증명(anthropological argument) - 4유형

(5) 도덕적 증명(moral argument) - 1유형

토마스의 구분

1. 1원동자 - 2-1유형

2. 1동력인 - 2-2유형

3. 우연한 것이 존재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을 있게 만든 필연적인 존재 때문 - 2-3유형

4. 완전성의 기준 - 2-4 유형

5. 목적론적 방법 - 2-5유형

신의 존재에 대해 신앙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이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려고 하는 시도. 교부(敎父)나 스콜라 학자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 증명 방법 중 몇 가지는 이미 그리스 철학에서 그 근원이 보였다. 그 방법들은 중세 이후에는 많은 철학자에 의해 되풀이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1) 존재론(存在論 : 본체론本體論)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 - 3유형

즉 신의 개념으로부터 그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안셀무스가 시도한 증명으로서, 신은 가장 완전한 것인데, 그것이 관념으로서만 있고, 존재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미 완전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증명이다. 이에 대해 그와 동시대의 수도사인 가우닐로(Gaunilo)는 이 논법에 의하면 '가장 완전한 섬'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의 논법으로 증명 가능한 것이 된다고 하면서 반박을 가했다.

(헤겔사전) 헤겔에 따르면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은 특수 형이상학의 한 부문 안에서 움직이는 것으로서 (이를테면 생물학이 곧바로 생물의 개념을 전제하기에 이르듯이) 그 대상인 신의 개념(그 본질 내지 실재성(Realität)의 총계에서 최대의 존재자)'전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존재' 내지 '현실성'은 이러한 질의 하나로서 신에게 귀속된다. 이러한 증명에 대해서는 그것이 '단순한 개념'으로부터 '존재'를 끌어내는 것이라 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데카르트 방법서설해제) 데카르트가 신 존재 증명을 위해 확실하게 전제하고 있는 것은 정신으로서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정신 안에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신 존재 증명을 위해 또 다른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사유의 법칙인 충족이유율과 모순율이다. 데카르트는 이 두 가지 논리법칙의 형태를 명확히 제시하거나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법칙들의 타당성만은 결코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모순율은 일반적으로 “A는 비 A가 아니다라는 형태로 표현되는데, 정당하게 사고 또는 추론하려면 모순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법칙을 이미 나의 존재증명에서 사용한 바 있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이 생각하는 동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순율을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에서 다시 사용하고 있다.

충족이유율은나의 존재와 내 안에 있는 신 관념의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신 존재 증명을 하는데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은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나의 존재와 내 안에 있는 신 관념에 충족이유율을 적용하여 신 관념의 원인 또는 신 관념을 가진 나의 원인으로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신 관념 자체에 모순율을 적용하여 신의 본질에 존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신은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형태이다.

후자는 안셀름이래 일반적으로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이라고 불리어 왔고, 전자는 칸트에 의해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이라 명명되었다.

(2) 우주론적 증명(cosmo-logical argument) - 2-1유형

세계에 있어서 사물의 운동이라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운동의 원인의 계열을 거슬러 올라가 그 궁극적인 원인(1원인 또는 자기원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논증하려고 한 것.'최초의 동자'(動者, 플라톤),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는 것'(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그리스 철학의 논법을 이용하여 신의 존재를 논증하려고 하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도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헤겔사전) 헤겔은 이 점에서 세계의 우연적 '존재'로부터 필연적 존재자로서의 신의 '개념'에로 추리하는 우주론적 증명과, 거꾸로 '개념'으로부터 '존재'로 나아가는 존재론적 증명과의, 자기의 체계로서 유기적으로 전개되어야만 할 통합을 보고 있다. 헤겔은 이러한 상황을 칸트의 비판을 통해 받아들였다. 칸트에 따르면 세계의 존재로부터 필연적 존재자의 개념에로 추리하는 우주론적 증명은 방금 본 이 개념의 '무규정'함 때문에 결국 안셀무스적인 개념의 전제로, 즉 그의 존재론적 증명으로 퇴보한다. 그리고 이 증명은 결정적으로 존재란 어떤 경험되는 사물의 질이나 규정성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비판된다. 이 비판에 대한 대답이 논리의 학의 다양한 장소에서 발견된다. 우선 시원의 존재의 무규정성은 물론 경험된 사물의 질이 아니지만, 사유의 경험 그 자체가 가능하게 되기 위한 질, 즉 무규정이라는 규정성이다. 또한 절대적 필연성 속에서 개념과 존재의 상호관계가 가능태의 현실화라고 말해진다.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해제) 결과로부터 원인으로서의 신을 추론하는 형태의 신 존재 증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결과로서의 사물의 존재, 특히 나의 존재가 확실하다는 사실과 충족이유율을 토대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사물, 특히 유기체의 고도로 정밀함으로부터, 이러한 존재의 원인은 전지전능한 존재여야 한다고 추론하는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이다

(3) 목적론적 증명(teleological argument) - 2-5유형

이것은 칸트에 의하여 '물리신학(物理神學)적 증명'(physiotheological argument)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인데, 자연의 질서가 합목적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그 설계자, 제작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추정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토아 학파의 사고 방식에 따라 이 증명법도 시도하였다.

(**)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이론(irreducible complexity)의 지적설계론자들과 같은 맥락이로군.

(4) 인간학적 증명(anthropological argument) - 4유형

이것은 근세에 들어와 데카르트가 시도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아는 것은 우리 내부에 있는 본유개념(本有槪念)으로서의 신의 관념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관념의 원인은 아니다. 그 원인은 관념적인 실재성 밖에 없는 본유관념으로서의 신의 관념보다도 더욱 우월한 실재성을 갖는 것, 즉 실재하는 신이라고 말한다.

(5) 도덕적 증명(moral argument) -1유형

도덕 법칙, 도덕적 질서의 원천으로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려고 하는 것.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도덕적 의식의 요청으로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려 했던 칸트의 생각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칸트는 신의 존재의 이론적인 증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실천이성의 요청으로서만 신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3. 토마스 아퀴나스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신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신학의 출발점이자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마스는 안셀무스가 일찍이 제시한 바 있는 신의 본체론적 증명방식에 대해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안셀무스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신은 존재한다라는 말을 무조건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기 전에,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그는 신의 존재를 다섯 가지 방식으로 논증했다.

첫째 방법은 운동에서 찾는다.이 세계 안에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며, 우리의 감각적 경험도 이것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운동하는 모든 것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움직여져야 하고, 그 어떤 것은 또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움직여져야 한다. 이러한 소급은 논리적으로는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다. 그리고 무한히 소급해 가는 도중에 마지막 지점에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 1원동자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그 이상의 소급은 불가능하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신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 2-1유형

둘째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동력인(動力因)에서 찾았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스스로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動因)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원인을 가정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조금 전 말한 것처럼 무한히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1 동력인이 있어야 하고, 이것을 우리는 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 2-2유형

셋째 방법은 이 세상의 우연한 사물에서 필연적인 존재로 가는 과정에서 찾았다. 이 세상에 우연한 것이 존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것을 있게 만든 필연적인 존재 때문이다. 만일 필연적인 존재가 없다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데, 필연적일 수 있는 이유를 자체 내에 담고 있는 그 무엇, 바로 이것이 신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 2-3유형

넷째 방법은 모든 개별적인 존재마다 지니고 있는 완전성을 향한 단계적 구조에서 찾았다. 우리는 각 개별적 존재에 대해 각각 진 · · 미 또는 존재의 완성도를 비교한다. 이 경우, 서로간의 상대적인 완전성의 정도는 반드시 하나의 최고 존재를 암시한다. 다시 말하면, 각각 어느 것이 더 완전한가 또는 어느 쪽이 더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지를 비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2-4 유형

그러나 물론 이렇게만 본다면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 존재가 여럿 있을 수 있으므로, 그것을 갖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토마스는 모든 존재의 완전성을 통틀어 그것 전체의 원인이 되는 최고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봤으며, 이것이 바로 신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신이란 가장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우며, 모든 분야에서 가장 완전하다.

다섯째 방법은 목적론적 방법에 따른 것으로, 모든 자연 세계의 합목적성6) 구조를 관찰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우리는 인식활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작은 생명체마저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는 종족 보존을 위한 번식 활동을 위해 기가 막힌 나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심지어 생명이 없는 자연적 물체(우주 천제의 움직임, , 공기의 작용 등)마저도 마치 어떤 목적을 향해 나가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여기에는 그들에게 일정 한 목표로 나아가게끔 조종하는 어떤 지적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우주 공간 안에 존재하는 생물 · 무생물들은 마치 거대하고도 완벽한 존재의 끊임없는 조종을 받는 것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 어떤 존재도 가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 2-5유형

4. 기타

라이프니츠 단자론

후험적 방식에 의한 증명이라는 우연한 사물의 존재로부터의 신 존재 증명,

영원한 진리의 실재성으로부터의 신 존재 증명,

그리고 선험적 방식에 의한 신 존재 증명이라고 부르는 존재론적 증명 등이다.

'존재론적 신증명'에 대한 가우닐로의 반박과 안셀무스의 답변

존재론적 신증명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은 안셀무스와 동시대의 인물인 수도사 가우닐로(Gaunilo)가 한 비판이다. 그는 어리석은 자를 위한 책에서 안셀무스의 신증명을 두 가지로 반박했다.

첫째로 그는 아무도 마음속에 신의 관념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은 상상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와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반박의 핵심은 존재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단지 사유(관념)속의 개념으로부터 추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관념으로부터 신존재가 증명된다면, 사유는 가능하나 증명될 수 없는 존재들도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상상 속에 도깨비 방망이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도깨비 방망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듯, 신에 대한 관념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가우닐로는 다른 어떤 섬들보다도 뛰어나며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사라진 섬'의 예를 들어 안셀무스의 주장을 반박한다. "우리는 그 섬에 대한 확실한 관념을 형성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라진 섬의 현존, 즉 실제로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그 섬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상상력 밖 실제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우닐로의 두 가지 비판에 대해서 안셀무스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첫째 반박에 대해서 안셀무스는 논증이 단지 신에게만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에 대한 관념 자체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개념을 필연적으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신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동일하기 때문에, 누구 할 것 없이 마음에 신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둘째 반박에 대한 답변 은 첫째 반박에 대한 답변과 연관된다. ,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는 가우닐로의 둘째 반박에 대해서 안셀무스는 그것이 일반적인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실의 예외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개념이 오직 마음속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실제의 대상을 가리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 말하자면 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칸트사전

- 신의 존재증명은 계시신학과 대비되는 이성적 신학(theologia rationalis)에서 이론적으로 추구되는 증명.

이성적 신학은 신 인식을 위해 경험적 원천을 배제하는 순수하게 이론적인 초월론적 신학(Transzendentale Theologie)과 경험적 원천을 원용하는 자연신학(natürliche Theologie)으로 구분된다.

초월론적 신학은 나아가 존재론적 신학(Ontotheologie)과 우주론적 신학(Kosmotheologie)으로 둘로 나눠지며,

자연신학은 나아가 자연의 질서를 목적론적으로 이해하여 성립하는 물리신학(Physikotheologie)과 최고선의 실현을 위한 목적론적 질서를 요청하는 도덕적 신학(Moraltheologie)으로 나누어진다.

신의 존재증명에 관해 존재론적 신학에서는 '가장 실재적인 존재자(ens realissimum)'의 개념에서 그 실재로 추론해 가며,

우주론적 신학에서는 '필연적 존재자(das notwendige Wesen)'로서 신의 존재가 탐구된다. 물리신학에서는 자연의 목적론적 질서의 창조자가 탐구되며,

도덕적 신학에서는 최고선 실현의 필연성을 위해 신의 존재가 인정된다.

1비판에서는 모든 사변적인 증명(존재론적, 우주론적, 물리신학적 증명)이 비판되며, 도덕적 증명은 제2비판과 제3비판에서 논해진다. 다만 칸트는 제1비판에서 그 불가능을 논한 사변적인 신의 존재증명을 전비판기에 두 차례 시도하고 있다(후술).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제1비판의 비판은 "존재""정립"이지 "무언가의 실재적인 술어가 아니다"라는 점으로부터 이루어진다[B 625ff.]. 다만 이것은 사유 내적인 개념이 사유 바깥의 현실로 이행할 수 없다는 논의가 아니다. 오히려 사유에서의 개념은 주어져 정립되는 실재와 융합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와 같은 것은 가능한 경험에서 정립되는 실재의 경우에만 실현되지 신의 경우에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논의이다.

우주론적 증명에 대한 비판은 가능한 경험에 한정되는 이성에서는 무제약적인 필연성이 도대체가 이해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루어진다.

물리신학적 증명에 관해 칸트는 한편으로 자연의 합목적성에 관한 "일정한 경험"[B 648]에서 성립하는 애매한 것이라 하여 배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로부터 가장 자연스럽게 행해져온 것이라 하여 호의적이기도 하다.

도덕적 증명에 대해서는 제2비판에서 '실천 이성의 요청'으로서 논의된다. 또한 제3비판에서도 자유와 자연의 융합을 보증하는 신의 존재는 이론적으로는 아무래도 '개연적'인 데 불과하다 하더라도, 최고선의 실현이 실천 이성에 의해 선험적으로 명령되는 한에서 "주관적-실천적 실재성"을 지니게 된다[§88]. 여기서 도덕적 목적론과 자연적 목적론의 융합이 문제로 되지만, 이것은 역사철학에서의 최고선의 문제로 계승된다. 또한 요청론은 진리에 대해 믿음이 문제되는 장면에로 전개되어 종교론으로 이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