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5년 겨울부터 간간이 오르비 눈팅하던 유저입니다. 바쁘신분은 —여기서부터— 라고한곳에서 읽으셔도 돼요 자랑까지 할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생활 시작은 굉장히 순탄했다. 1월 달에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던 달인 것 같다. ‘니 혹시 기억나나? 쉬는 시간에 복도 창문보면서 내가 다음 벚꽃은 진짜 누구보다 즐겁게 맞자 했던 거. 근데 미안하다 난 그거 못 지킬거같네ㅎㅎ.. 씨X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나만 20대 시작을 재수학원에서 보내야 하는거냐 진짜’ 2월 13일이였나 평소 친하던, 재수를 성공한 선배의 추천을 받고 지방의 모 재수학원 의치대반에 들어갔다. <3~9월> 독서실독재를 하면 외롭다 정신병걸릴 것 같다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이다. 독재생들의 걱정 중 하나는 실전감각이다. 이건 나도 부모님도 걱정했다. 6월모의는 아무 생각없이 친 것같다. 그냥 저냥 준비도 안하고 6모네? 하고 쳤다. 7~8월달에는 사관학교응시가 있었다. 경찰대를 칠까도 생각했는데 앞서말한 의대친구도 작년에 1차광탈한 걸 두 눈으로 봤기 때문에 겸손하게 사관학교 응시했다. 하지만 합격했다. 9월에는 변화가 생겼다. <9-11월> -----------아마 이제부터가 글의 핵심일듯------------ 수능 전날(11/15) 학교에 수험표를 받으러 갔다. 한 해
동안 신경 써준 3학년 부장선생님한테 ‘슨생님 올해 우리학교 입결은 제가 책임집니다 걱정마세요’라며 너스레 떨면서 수험표를 받았다. 워낙 긴장안하는 타입이라 교문에 응원오신
학교선생님들보며 ‘아이 뭐 별거없잔습니까 승전보 드리겠습니다’하면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서 9월 화작문을 읽기 시작했다. 본인이라면 어떻겠는가 당연히 멘탈이 터지지. 하지만 작년부터 올해9월까지 국어는 싹 다 1등급이었으니 정신없었어도 답 맞게 했겠지 아니 했어야해라는 행복회로를 돌리며 수학에 들어갔다. 영어는 뭐 글 술술 읽다보니 답이 나왔고 한국사는 3급 92점을 토대로 가볍게 풀었다. 그렇게 2번째 수능을 마치고 대기시간에 답을 찾아서
매겼다. 퇴실해도 된다는 방송을 듣고 교문을 나서는데 아빠가 데리러 와 계셨다. 응시하는 대학 주위에서 자취하는 친구 집에 갔다. 친구가 문을 열어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라. 그렇게 논술치고 서울에 학교다니는 친구들 자취방을 연연하면서 일주일정도 돌아다녔다 한날은 아빠랑 둘이서 술을 먹었다. 경상도분이셔서 사실 속내를 잘 말씀하시지
않는다. 듣고 나니 더 죄송한 마음뿐이더라 그러고 나니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사실이더라 감정이 무더져가더라 이 상황에서 말하면 합리화같지만 만약 의치대를 갔다해도 내가 행복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막상 써 보니 글을 어떻게 마쳐야 할 지 모르겠다. 근데 어느 길을 택하든 최선을 다할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