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경기도 의료원 안성병원 내 수술실 CCTV.   경기도

수술실 CCTV(폐쇄회로TV) 의무 설치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를 규정한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해 8월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해 9월24일 공포됐다. 시행까지 2년 유예기간을 두면서 내년 9월25일 시행 예정이다.

CCTV를 설치해야 하는 의료기관은 전신마취 등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모든 의료기관이다. 의료기관 장과 의료인은 환자 또는 환자 가족이 CCTV 촬영을 요구하면 ‘거부 정당화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촬영에 응해야 한다.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국민 여론과 의사 입장은 상반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21년 국민 1만3959명을 상대로 CCTV 설치 찬반 여부를 물어본 결과, 약 97.9%에 달하는 1만3667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유는 의료사고 입증 책임 명확화, 대리수술 등 불법행위 감시, 안전하게 수술받을 환자의 권리, 의료진 간의 폭언・폭행 예방 등이었다.

반면 의사 2345명 가운데 10명 중 9명은 반대 의견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 1월 발표한 ‘수술실 내 CCTV 설치·운영 의무화 법안 검토 및 의사 인식조사’ 결과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를 반대하는 이유(복수응답가능)는 의료진 근로 감시 등 인권침해(54.3%)가 가장 많았다. △진료 위축 및 소극적 진료 야기(49.2%)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48.1%) △불필요한 소송 및 의료분쟁 가능성(47.3%) △의료인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인식 발생(45.7%)이 그 뒤를 이었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수술실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대신 대리수술 등 비도덕적・비윤리적 행위를 한 의사의 ‘면허 취소’ 등 행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대한의사협회.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발단은 지난 2016년 고(故) 권대희씨 사망사건이다. 성형외과 원장 장모씨는 수술 과정에서 다른 환자를 수술한다는 이유로 고 권씨 지혈을 간호조무사에게 30분 가량 맡기는 등 후속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장씨는 지난 5월 2심에서도 징역 3년과 벌금 1000만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장씨는 유족들이 배상을 받게 된 배경에 수술실 CCTV 영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의사가 진료 중 환자를 강간하는 성범죄가 잇따랐다. 2018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은 의사는 대장내시경을 받으러 온 환자에게 수면유도제를 투여하고 항거불능 상태인 환자를 상대로 강간했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 받은 성형외과 의사는 2개월간 수면마취 상태의 환자 3명을 상대로 준 강간을 저질렀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순례 전 의원(자유한국당)은 “의료현장 특성상 피해자는 의식이 없거나 항거불능인 상태가 많아 실제 범죄 발생 여부를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의료행위에 대한 국민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수술실 CCTV 설치가 근본적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관건은 CCTV 촬영 예외 사항이다. 복지부는 수술실 CCTV 설치를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안을 오는 12월 중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지난해 신설된 의료법 제38조의2 제2항에 따르면 △수술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응급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위험도 높은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따른 수련병원 등의 전공의 수련 등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수련병원 목적 달성 저해 우려에 따라 CCTV 촬영 예외 사례에 전공의 수술 참여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를 두고 의료계와 시민·환자단체 간 의견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환자단체에서는 예외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폭넓은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복지부는 최근 의료계, 전문학회, 환자·시민단체 등과 함께 비대면으로 ‘수술실 CCTV 설치방안 및 하위법령안 마련 협의체’ 3차 회의를 진행했다.

복지부는 올해 초 수술실 CCTV 설치방안 및 의료법 시행규칙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연세대 의과대학 장성인 교수(예방의학교실)가 내달 중 연구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연구용역 결과를 비롯해 의료계와 환자단체 의견 중에서 취사선택해 하위법령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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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의무화' 놓고 충돌한 91%와 91%

여론조사에서 91%는 압도적 숫자입니다. 거의 이견이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이 91%의 수치가 정확히 반대 방향에서 부딪혔습니다. 충돌이 일어난 곳은 국회도서관 대강당. 지난달 30일, '수술실 CCTV 의무화' 토론회장이었습니다.

본격 논의가 시작된 지 3년 만에 국회에서 열린 첫 토론회. 찬반 논란이 뜨거운 만큼 환자단체와 의사단체가 총출동했습니다. 이미 도립병원 6곳에 수술실 CCTV를 설치한 경기도가 주관한 만큼 경기도의료원이 CCTV 설치 사례 발표를 하고, 찬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발제자로 나선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수술실 CCTV 도입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91%가 찬성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수술을 받을 경우 CCTV 촬영에 동의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87%의 도민이 '촬영할 생각'이라고 답했습니다. 정 원장은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근거라며 "CCTV 설치로 환자들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뒤이어 발제에 나선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도 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전문직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있는 직업이 의사이고 신뢰도는 90.7%, 약 91%라는 겁니다. 경기도의료원에선 불신의 근거로 쓰였던 91%가 의사협회에선 신뢰의 근거로 쓰인 셈입니다.

물론 두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도, 방식도, 기간도 다릅니다. 하지만 두 수치가 말하는 것을 좇다보면 '대다수가 신뢰하는 의사를, 왜 대다수는 수술실에서 믿지 못할까?'라는 의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찬반 단체가 격돌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토론회는 매우 차분하게 진행됐습니다. 의문을 조금이나마 푸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수술실 CCTV 의무화'를 둘러싼 쟁점을 정리해 봤습니다.

어린이집, 블랙박스 그리고 수술실의 공통점

'수술실 CCTV 의무화'에 찬성하는 쪽은 이미 의무화된 어린이집 CCTV와 비교합니다. 언어 표현이 미숙한 유아들처럼 전신마취 환자도 무자격자 대리수술, 성범죄 등 불법적인 상황이 일어났을 경우 항거불능 상태라는 겁니다. 계약 관계로만 보면 돈을 내는 환자가 갑이지만, 수술실에서의 결정권은 의사가 갖는다는 점, 즉 계약과 실제 위력행사의 갑을 관계가 바뀐다는 점도 두 공간의 공통점입니다.

류영철 경기도 보건복지국장은 수술실 CCTV와 유사 사례로 블랙박스를 들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 또 오히려 나의 잘못를 입증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할까봐 블랙박스를 장착한다"는 겁니다.

류 국장은 "환자 안전은 물론 의사를 위해서도 수술실 CCTV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의료사고 예방은 물론, 의료사고가 나더라도 의사가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봤다는 상황을 증명해주는 자료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병원 측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리진료 등 불법 행위를 강요했을 때 의사의 자기방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의료사고 예방? 소극 진료로 환자 위험"

반면 의사들 생각은 달랐습니다. CCTV 설치로 대리수술이나 성범죄 등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수술 자체에 차질을 빚어 오히려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겁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의사단체는 "수술은 고도의 정신적 집중이 필요한 행위"라고 강조했습니다.

김해영 의사협회 법제이사는 의사들이 평정심 유지를 위해 수술실에서 음악을 트는 사례를 언급하고 "CCTV가 설치돼 분쟁의 소지가 된다 생각하면 음악을 틀지 못할 것"이라며, 의사가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돼 수술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법제이사는 의사의 재량권도 언급하며 "CCTV 설치해서 감시해 보겠다? 의사가 최선을 다할 리가 없다"면서 "마음이 그렇게 다가가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박종혁 의사협회 홍보이사는 "단순히 CCTV 카메라 한 대를 설치하는 문제가 아니라 의료 문화 전반이 바뀌는 문제"라며 "생존 확률 5%만 돼도 살 기회가 있는 것인데, 소송을 생각해 보수적으로 판단하면 그냥 사망하게 되는 것"이라며 진료환경 위축을 우려했습니다.

"해킹으로 민감한 영상 유출" VS "화질 조정·보안 강화로 해결"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가 공개한 해외 유출 수술실 사진

의사협회는 이날 산부인과와 항문외과 진료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습니다. 해외에서 해킹으로 유출된 사진으로, 민감한 부위는 모자이크로 가렸습니다. "여러분의 민감한 의료 정보가 이렇게 공개되길 원하느냐"며 CCTV 의무화 반대 근거로 해킹 위험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CCTV를 설치한다 해서 민감한 수술 부위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며 "제때 필요한 처치가 이뤄졌는 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수술실 전경을 촬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 대표는 "벽에 부착하는 카메라의 각도와 화질을 조정해 전경을 찍게 되면 민감한 부위는 의료진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와 함께 개인정보보호 규정을 강화해 의료분쟁이 일어났을 때가 아니면 영상을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영현 의료문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 부대표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에는 촬영 카메라 종류가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며 "해킹 위험이 낮은 폐쇄회로TV, 즉 CCTV로 카메라 종류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잠재적 범죄자 VS 잠재적 환자

의사협회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에 큰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범죄 발생 위험이 있는 곳에 설치하는 CCTV를 수술실에 설치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짙어 보였습니다. 환자가 나를 믿지 못하는 데 어떻게 수술을 하겠냐, 치료의 제1조건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객석에서 질의를 했던 한 의료사고 피해 가족은 "생로병사 안에서 병원에 안 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에 거부감만 나타내지 말고, 역지사지로 모두 '잠재적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이지만 일선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질의자는 "의료사고로 소송을 6년이나 했는데, 의사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소송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故 권대희 씨 어머니의 외침 "의사협회가 먼저 '미꾸라지'를 버리십시오"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2016년 안면윤곽수술을 받고 숨진 故 권대희 씨의 수술실 CCTV 영상. 1시간 가량 수술을 하던 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의사가 지혈 조치를 했고, 이후 들어온 간호조무사는 환자를 앞에 두고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눈화장을 고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수술실 CCTV 의무화' 필요성을 알린 것은 2016년 안면윤곽수술을 받고 과다출혈로 숨진 故 권대희 씨 사건이었습니다. 수술실 CCTV 영상을 통해 불법 의료행위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CCTV 영상이 없었더라면 소송할 엄두 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라던 권 씨의 어머니 이나금 씨는 병원을 상대로 2년이 넘는 소송 끝에 지난달 28일 민사에서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병원에 4억 3천만 원의 지급판결을 내렸습니다.

CCTV 영상을 500번도 더 돌려보며 분석했다는 이 씨도 의료사고 피해가족과 함께 객석에서 토론회를 지켜봤습니다. 토론회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 "의사에게 필요한 건 CCTV가 아니라 환자의 신뢰"라는 의사협회의 말에 이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듭니다. 자꾸 신뢰를 이야기 하시는데, 미꾸라지를 제 식구라고 감싸지 마시고, 국회의원이 의사들 잘못을 제재하는 법안 발의하게 하지 마시고, 의사협회에서 자성의 차원으로 잘못한 의사들 처벌 강화해달라는 법안을 요청하십시오. 그러면 환자들이 이렇게 (CCTV 설치하자고) 외치지 않을 겁니다."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수술은 영상 촬영을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14일 발의됐다가, 공동 발의 의원들 일부가 하루 만에 발의를 철회해 폐기됐습니다. 그러다 지난 21일 다시 발의됐습니다. 국회 파행에 찬반 입장이 팽팽해 법안 논의 속도는 더딜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의 입장을 좁혀나가는 토론회는 쭉 이어지길 환자단체와 의료계는 바라고 있습니다.

  • 수술실 CCTV, ‘91%’에 담긴 진실은?
    • 입력 2019-06-02 08:00:37
    취재K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수술실 CCTV 의무화' 놓고 충돌한 91%와 91%

여론조사에서 91%는 압도적 숫자입니다. 거의 이견이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이 91%의 수치가 정확히 반대 방향에서 부딪혔습니다. 충돌이 일어난 곳은 국회도서관 대강당. 지난달 30일, '수술실 CCTV 의무화' 토론회장이었습니다.

본격 논의가 시작된 지 3년 만에 국회에서 열린 첫 토론회. 찬반 논란이 뜨거운 만큼 환자단체와 의사단체가 총출동했습니다. 이미 도립병원 6곳에 수술실 CCTV를 설치한 경기도가 주관한 만큼 경기도의료원이 CCTV 설치 사례 발표를 하고, 찬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발제자로 나선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수술실 CCTV 도입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91%가 찬성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수술을 받을 경우 CCTV 촬영에 동의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87%의 도민이 '촬영할 생각'이라고 답했습니다. 정 원장은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근거라며 "CCTV 설치로 환자들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뒤이어 발제에 나선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도 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전문직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있는 직업이 의사이고 신뢰도는 90.7%, 약 91%라는 겁니다. 경기도의료원에선 불신의 근거로 쓰였던 91%가 의사협회에선 신뢰의 근거로 쓰인 셈입니다.

물론 두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도, 방식도, 기간도 다릅니다. 하지만 두 수치가 말하는 것을 좇다보면 '대다수가 신뢰하는 의사를, 왜 대다수는 수술실에서 믿지 못할까?'라는 의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찬반 단체가 격돌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토론회는 매우 차분하게 진행됐습니다. 의문을 조금이나마 푸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수술실 CCTV 의무화'를 둘러싼 쟁점을 정리해 봤습니다.

어린이집, 블랙박스 그리고 수술실의 공통점

'수술실 CCTV 의무화'에 찬성하는 쪽은 이미 의무화된 어린이집 CCTV와 비교합니다. 언어 표현이 미숙한 유아들처럼 전신마취 환자도 무자격자 대리수술, 성범죄 등 불법적인 상황이 일어났을 경우 항거불능 상태라는 겁니다. 계약 관계로만 보면 돈을 내는 환자가 갑이지만, 수술실에서의 결정권은 의사가 갖는다는 점, 즉 계약과 실제 위력행사의 갑을 관계가 바뀐다는 점도 두 공간의 공통점입니다.

류영철 경기도 보건복지국장은 수술실 CCTV와 유사 사례로 블랙박스를 들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 또 오히려 나의 잘못를 입증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할까봐 블랙박스를 장착한다"는 겁니다.

류 국장은 "환자 안전은 물론 의사를 위해서도 수술실 CCTV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의료사고 예방은 물론, 의료사고가 나더라도 의사가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봤다는 상황을 증명해주는 자료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병원 측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리진료 등 불법 행위를 강요했을 때 의사의 자기방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의료사고 예방? 소극 진료로 환자 위험"

반면 의사들 생각은 달랐습니다. CCTV 설치로 대리수술이나 성범죄 등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수술 자체에 차질을 빚어 오히려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겁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의사단체는 "수술은 고도의 정신적 집중이 필요한 행위"라고 강조했습니다.

김해영 의사협회 법제이사는 의사들이 평정심 유지를 위해 수술실에서 음악을 트는 사례를 언급하고 "CCTV가 설치돼 분쟁의 소지가 된다 생각하면 음악을 틀지 못할 것"이라며, 의사가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돼 수술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법제이사는 의사의 재량권도 언급하며 "CCTV 설치해서 감시해 보겠다? 의사가 최선을 다할 리가 없다"면서 "마음이 그렇게 다가가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박종혁 의사협회 홍보이사는 "단순히 CCTV 카메라 한 대를 설치하는 문제가 아니라 의료 문화 전반이 바뀌는 문제"라며 "생존 확률 5%만 돼도 살 기회가 있는 것인데, 소송을 생각해 보수적으로 판단하면 그냥 사망하게 되는 것"이라며 진료환경 위축을 우려했습니다.

"해킹으로 민감한 영상 유출" VS "화질 조정·보안 강화로 해결"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가 공개한 해외 유출 수술실 사진

의사협회는 이날 산부인과와 항문외과 진료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습니다. 해외에서 해킹으로 유출된 사진으로, 민감한 부위는 모자이크로 가렸습니다. "여러분의 민감한 의료 정보가 이렇게 공개되길 원하느냐"며 CCTV 의무화 반대 근거로 해킹 위험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CCTV를 설치한다 해서 민감한 수술 부위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며 "제때 필요한 처치가 이뤄졌는 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수술실 전경을 촬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 대표는 "벽에 부착하는 카메라의 각도와 화질을 조정해 전경을 찍게 되면 민감한 부위는 의료진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와 함께 개인정보보호 규정을 강화해 의료분쟁이 일어났을 때가 아니면 영상을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영현 의료문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 부대표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에는 촬영 카메라 종류가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며 "해킹 위험이 낮은 폐쇄회로TV, 즉 CCTV로 카메라 종류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잠재적 범죄자 VS 잠재적 환자

의사협회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에 큰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범죄 발생 위험이 있는 곳에 설치하는 CCTV를 수술실에 설치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짙어 보였습니다. 환자가 나를 믿지 못하는 데 어떻게 수술을 하겠냐, 치료의 제1조건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객석에서 질의를 했던 한 의료사고 피해 가족은 "생로병사 안에서 병원에 안 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에 거부감만 나타내지 말고, 역지사지로 모두 '잠재적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이지만 일선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질의자는 "의료사고로 소송을 6년이나 했는데, 의사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소송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故 권대희 씨 어머니의 외침 "의사협회가 먼저 '미꾸라지'를 버리십시오"

수술실 CCTV 사례 - susulsil CCTV salye
2016년 안면윤곽수술을 받고 숨진 故 권대희 씨의 수술실 CCTV 영상. 1시간 가량 수술을 하던 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의사가 지혈 조치를 했고, 이후 들어온 간호조무사는 환자를 앞에 두고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눈화장을 고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수술실 CCTV 의무화' 필요성을 알린 것은 2016년 안면윤곽수술을 받고 과다출혈로 숨진 故 권대희 씨 사건이었습니다. 수술실 CCTV 영상을 통해 불법 의료행위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CCTV 영상이 없었더라면 소송할 엄두 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라던 권 씨의 어머니 이나금 씨는 병원을 상대로 2년이 넘는 소송 끝에 지난달 28일 민사에서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병원에 4억 3천만 원의 지급판결을 내렸습니다.

CCTV 영상을 500번도 더 돌려보며 분석했다는 이 씨도 의료사고 피해가족과 함께 객석에서 토론회를 지켜봤습니다. 토론회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 "의사에게 필요한 건 CCTV가 아니라 환자의 신뢰"라는 의사협회의 말에 이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듭니다. 자꾸 신뢰를 이야기 하시는데, 미꾸라지를 제 식구라고 감싸지 마시고, 국회의원이 의사들 잘못을 제재하는 법안 발의하게 하지 마시고, 의사협회에서 자성의 차원으로 잘못한 의사들 처벌 강화해달라는 법안을 요청하십시오. 그러면 환자들이 이렇게 (CCTV 설치하자고) 외치지 않을 겁니다."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수술은 영상 촬영을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14일 발의됐다가, 공동 발의 의원들 일부가 하루 만에 발의를 철회해 폐기됐습니다. 그러다 지난 21일 다시 발의됐습니다. 국회 파행에 찬반 입장이 팽팽해 법안 논의 속도는 더딜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의 입장을 좁혀나가는 토론회는 쭉 이어지길 환자단체와 의료계는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