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책장 뒤 - inteoseutella chaegjang dwi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11월 6일 개봉)는 야심이 큰 작품이다. 우주 한복판에서 인류애의 본질을 찾는 이야기인 동시에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건너갈 수 있다는 최신 과학 이론을 극에 적극 끌어들인다. 등장인물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일반상대성 이론과 블랙홀, 웜홀 등 현대 물리학의 주요 개념은 물론, 이에 근거한 영화적 상상력까지 녹아 있다.

고등학교 물리 교과서에서 손 뗀 지 오래된 관객으로서는 이 영화의 과학적 논리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 점에 대해 온라인 교육 업체 메가스터디의 과학 대표 강사 김성재(46)씨에게 부탁했다. 아주 쉽게 설명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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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웜홀을 통하면 정말 다른 은하계로 갈 수 있을까?

“웜홀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통로를 의미한다. 벌레가 사과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으로 갈 때 표면을 따라 기어가는 것보다 속을 뚫고 가는 게 더 빠른 원리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웜홀(Worm Hole, 벌레 구멍이라는 뜻)이란 이름이 붙었다.

블랙홀은 맨 처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예견된 것으로, 이후 우주에서 실제로 관측돼 이제는 사실로 받아들여진 이론이다. 블랙홀의 생성 원인은 여러 가지다. 대개는 별이 일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뒤 중력만 남아 아주 작은 부피 안에 질량이 뭉쳐지면서(태양이라면 약 3㎞의 직경) 매우 큰 중력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이 중력장은 주위의 빛까지 빨아들인다. ‘블랙홀’(Black Hole, 검은 구멍이라는 뜻)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과학자들은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다면 이를 다시 분출하는 화이트홀과 그 둘을 연결하는 통로인 웜홀이 있을 거라 가정했다. 하지만 화이트홀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현재 없다. 오히려 웜홀은, 생성 조건이 매우 불안정하지만 그것을 충족할 수만 있다면 우주 어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론적 기반이 다져져 있다. 몇몇 과학자들은 웜홀을 전혀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통로로 가정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개념이다. ‘인터스텔라’의 과학 자문 및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미국의 물리학자 킵 손은 바로 이 웜홀을 통한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연구한 인물이다.

‘인터스텔라’는 웜홀을 시간 여행의 통로라기보다, 서로 다른 은하계를 연결하는 지름길이라고 상상한다. 죽어가는 지구를 대신해 인간의 새 터전이 될 행성을 찾기 위해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와 세 과학자 아멜리아(앤 해서웨이), 로밀리(데이비드 기아시), 도일(웨스 벤틀리)은 누군가 토성 근처에 만들어놓은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건너간다. 웜홀을 통하지 않고서는 제 아무리 빛의 속도로 달린다 해도 다른 은하계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수명을 넘어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웜홀을 통해 간단한 정보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쿠퍼와 아멜리아보다 12년 앞서 열두 명의 과학자들이 이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건너가 각자 다른 행성에 도착해 그곳에서 인간이 살 만한지 조사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설정이다. 이들이 보낸 신호가 웜홀을 통해 1년에 한 번씩 지구에 전해진다는 대사가 극 초반에 나온다. 쿠퍼와 아멜리아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생존 가능성이 높은 세 행성에 들러 그 실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지구로 돌아오는 임무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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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교수의 연구실 세트 칠판에 중력방정식을 적는 킵 손 박사.

Q. 브랜드 교수(마이클 케인)가 ‘쿠퍼 일행이 지구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뭔가?

“극 중 NASA(미국항공우주국)를 이끄는 브랜드 교수는 쿠퍼에게 이번 우주 탐사의 조종석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며 플랜A와 플랜B 이야기를 꺼낸다. 플랜A는 지구에 남은 모든 사람들을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이다. 플랜B는 플랜A가 불가능할 경우에 대비해 새 행성에 새 인류를 번식시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쿠퍼는 5000개가 넘는 수정란을 우주선에 싣고 떠난다.

플랜A를 성공시키려면 두 가지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첫째, 쿠퍼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새 행성의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둘째, 중력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중력은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다. 극 중 로밀리가 ‘차원을 거스르는 건 중력뿐’이라고 말하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5차원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왜곡된다. 3차원, 4차원의 시간과 공간이 전혀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펼쳐진다는 뜻이다. 극 중 쿠퍼 일행이 웜홀을 통과하는 순간 우주선 한쪽이 쭈글쭈글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바로 시공간의 왜곡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웜홀이 3차원의 거리를 순식간에 가로지르는 것 역시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3차원의 공간이라도 중력이 다른 곳에서는 시간도 다르게 간다. 중력이 셀수록 시간은 느리게 간다. 쿠퍼와 아멜리아는 지구보다 중력이 센 행성에 한 두 시간 남짓 머물렀다가 지구 시간으로 23년 4개월 8일을 보내게 된다. ‘인터스텔라’는 이런 시간 차를 통해 아버지 쿠퍼와 딸 머피(제시카 차스테인) 사이의 눈물겨운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브랜드 교수는 중력 방정식으로 원자·분자·소립자 등 물질을 이루는 아주 작은 단위, 그 미시적 세계 안에 웜홀 같은 5차원 통로를 만들고, 그것을 크게 키워 지구 사람들을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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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영화 중반, 브랜드 교수가 이미 오래 전 중력 방정식을 풀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브랜드 교수는 그 사실을 쿠퍼의 딸 머피에게 말하며, 그럼에도 쿠퍼가 지구로 돌아올 이유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 스스로 플랜A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유가 뭘까? 방정식이 반쪽짜리 해답이라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방정식을 완성해도 여기에 5차원의 양자 정보, 특히 중력에 대한 정보를 대입해야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양자란, 에너지의 최소 단위를 뜻한다. 5차원에서 에너지가 어떻게 존재하고 움직이는지 알기 위해서는 5차원에 존재하는 양자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걸 알아야만 사람들을 우주 저 멀리로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 그 정보는 블랙홀 안에 있다. 하지만 인간이 블랙홀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그곳을 살아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브랜드 교수는 양자 정보를 결코 얻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쿠퍼 일행이 플랜B를 실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이 지구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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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쿠퍼는 블랙홀 안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걸까?

“쿠퍼는 우주선의 연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멜리아를 마지막 후보지인 에드먼즈 행성으로 보내기 위해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의 반작용을 이용하기로 한다. 블랙홀에 가까이 다가가 그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엔진을 가동해 블랙홀 바깥으로 빠져나가면 블랙홀 중력의 반작용까지 더해져 더 세게 튕겨나가게 되는 원리다(우주 탐사선의 항법 원리인 Swing-by, 일종의 새총 원리). 이때 우주선의 무게를 줄여야 튕겨나가는 속도가 더 세지기 때문에 인공지능 컴퓨터 타스와 쿠퍼 자신은 연료를 소진한 정찰기와 함께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와 블랙홀로 뛰어든다. 아멜리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그리하여 쿠퍼는 블랙홀의 5차원 공간으로 떨어진다. 알 수 없는 공간으로 계속 추락하던 쿠퍼는 이윽고 사방이 책장 모양으로 된 3차원의 공간 한가운데 떠 있게 된다. 그는 곧 그곳에 딸 머피가 지내는 삶의 온갖 순간이 저장돼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순간은 머피가 머무는 방의 형태로 전시돼 있는데, 방과 방이 사방팔방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고, 쿠퍼는 어릴 적 머피의 방 한쪽 벽면을 채웠던 책장 너머로 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공간에 대해 영화는 ‘누군가 블랙홀의 5차원 공간 안에 3차원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쿠퍼가 블랙홀에서 겪는 극적인 사건을 관객에게 3차원의 영상으로 전하기 위한 설정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1941년 발표한 단편 소설 ‘바벨의 도서관’을 떠오르게 한다. 보르헤스는 여기서 책장으로 채워진 육각형 모양의 방이 무한히 연결된 도서관을 상상하며, 거기에는 모든 정보와 모든 사람의 일생, 세계 각국의 모든 책이 다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이 공간에서 쿠퍼는 가장 먼저 자신이 딸의 곁을 떠나 우주로 왔던 과거를 되돌리려 애쓰지만, 결국 과거를 바꾸지는 못한다. 이는 쿠퍼 자신이 딸 머피에게 했던 말과 연관이 있다. ‘머피의 법칙’이라는 별명 때문에 괴로워하는 딸에게 쿠퍼는 이렇게 말했다. ‘머피의 법칙이라는 건 나쁜 뜻이 아니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거야.’

결국 쿠퍼는 ‘블랙홀 안의 도서관’에서 타스가 분석한 블랙홀의 양자 정보를 5차원의 신비한 힘을 빌려 머피의 손목시계 초침에 모스 부호로 전환해 전달한다. 이로써 머피는 브랜드 교수가 완성한 중력 방정식에 양자 정보를 입력해 수많은 사람들을 우주 멀리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친다.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역사에서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다고 이 영화는 암시한다.”

Q. 쿠퍼가 노년의 딸을 만나는 곳은 어디인가?

“블랙홀을 빠져나와 우주를 떠돌던 쿠퍼는 우주복의 산소가 떨어지기 직전 구출된다. 쿠퍼가 블랙홀에서 어떻게 무사히 빠져나왔는지에 대해 ‘인터스텔라’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블랙홀이라는 미지의 공간이 발휘한 신비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쿠퍼가 눈을 뜬 곳은 토성 근처에 자리한 ‘쿠퍼 정거장’의 어느 병원. 머피가 중력 방정식에 블랙홀의 양자 정보를 대입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이 정거장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이 정거장은 인공 지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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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건 이 정거장이 토성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다. 웜홀 역시 토성 근처에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설정이다. 영화는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지만, 정거장에 있는 사람들이 웜홀을 통해 새로운 행성으로 건너갈 준비가 됐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 인류가 이주할 새 행성을 확보했는지, 그것이 아멜리아가 도착한 에드먼즈 행성인지 그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이 정거장에서 쿠퍼는 드디어 딸 머피와 만난다. 중력이 강한 블랙홀 주위의 행성을 탐험하고 돌아온 쿠퍼는 여전히 중년의 모습이지만, 지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머피는 백발 노인이 됐다. 영화의 마지막, 쿠퍼는 머피의 권유에 따라 에드먼즈 행성에 홀로 있는 아멜리아의 곁으로 가기 위해 이 정거장을 떠난다. 쿠퍼의 탐험은 이번에도 성공할까. 과연 아멜리아는 그 행성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인터스텔라’의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장성란 매거진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