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랩소디 - peuledi meokyuli bohemian laebsodi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는 왜 고향의 자랑이자 불편한 존재일까?

2018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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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의 신화는 아프리카의 작은 군도에서 시작됐다

영국 록밴드 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하며 퀸의 리드싱어인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과 화려한 의상, 수많은 히트곡과 성적 지향성까지. 에이즈로 인하여 45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1970년대~1980년대 록 역사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비중 있게 설명하지 않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과 혈통이다.

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위치한 잔지바르에서 태어났으며 인도와 페르시아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며 세계를 흔든 프레디 머큐리와 보수적인 무슬림 사회인 그의 고향 '잔지바르'에 관해 당신이 알아야 할 5가지 사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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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크 불사라

머큐리는 1946년 9월 5일 잔지바르 정부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다.

그의 부모 보미와 젤 불사라는 파르시였다.

파르시는 조로아스터교리를 따르며 인도에 거주하는 페르시아의 후예를 가리킨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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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가 가족과 함께 잔지바르에서 살던 집은 탄자니아의 유명 관광지가 됐다

잔지바르 사람들과 조로아스터교도들에게 있어 머큐리는 불편한 존재였다. 머큐리가 양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잔지바르 군도의 대표적인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2004년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2006년, 머큐리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동성애자 관광객들이 섬을 방문한다고 하자 잔지바르의 한 무슬림 조직은 반발 시위를 열기도 했다.

BBC 탄자니아 특파원 아부바카르 파바우는 '자유로운 생활방식' 때문에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는 머큐리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주민들이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주민들은 프레디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이 섬에서 세계 음악 시장에 영향을 미친 사람을 배출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죠."

보모

머큐리의 사촌 페르비즈 다룬카나왈라에 따르면 머큐리는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머큐리의 가족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잔지바르 스톤타운에 위치한 해변이 보이는 집에서 살았다.

사진 출처, Alamy Stock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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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타운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위한 레스토랑이 있다

사진 출처, Alamy Stock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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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와 가족이 스톤타운에서 살던 집

이 지역은 다양한 상가와 회당, 고급 주택들이 있다.

일찍 접한 음악

머큐리는 잔지바르에 위치한 성공회교도 학교에 재학하며 수녀들에게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머큐리의 부모는 8살 때 그를 인도에 있는 학교로 보내기로 했다.

그는 인도 뭄바이 동남쪽에 위치한 빤찌가니에 세인트 피터스 처치 오브 잉글랜드 학교로 전학 갔다.

영국 교회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인트 피터스 학교는 모든 종교의 학생들을 받아들였고, 머큐리는 재학시절 조로아스터교 교리를 충실히 따랐다.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뭄바이에 있는 이모와 조부모와 시간을 보내며 점점 음악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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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는 친구들과 첫 밴드를 결성하는데 이것이 '헥틱스'(The Hectics)다.

다시 탈출한 가족

머큐리는 1963년 잔지바르로 돌아갔다. 1963년은 잔지바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연도다.

머큐리는 이곳에서 마지막 학교생활을 마친다.

당시 함께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종종 친구들과 수영 및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의 친구 본조 헤르난데즈는 "머큐리는 항상 '똑똑하게' 옷을 입었어요"라며 머큐리를 회상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도 오래가지 않았다.

1964년 혁명이 일어났고 군림하던 아랍 엘리트층은 붕괴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1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잔지바르와 탕가니카가 합병하며 탄자니아가 됐다. 당시 많은 사람이 그럤듯 불사라 가족도 군도를 빠져나왔다.

[보헤미안랩소디 비하인드 스토리] 프레디머큐리에 관하여

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랩소디 - peuledi meokyuli bohemian laebsodi

안녕하세요,
코코스유학 시드니지사의 캐씨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소개하여 드릴 내용은 요즘 너무 흥행한 영화인 "보헤미안랩소디"에 대한 이야기로, 이 영화를 통해 "Queen" 의 프레디머큐리 라는 리드싱어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시거나, 더 관심을 갖게 되신 분들을 위한 내용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프레디 머큐리가 밴드에 조인하게 되는 계기를 시작으로하여, 대스타로 거듭나는 내용 뿐만 아니라 프레디의 사생활 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구성이 되어있는데요.

보헤미안랩소디 2018에 캐스팅 된 배우들을 살펴보면, 실제 퀸 멤버들과도 매우 외관적으로 흡사한 것을 느끼게 되실거에요.

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랩소디 - peuledi meokyuli bohemian laebsodi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말 까지의 그들의 전성기때의 명곡들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그 일화와 밴드 내 멤버들의 끈끈한 우정, 가족애를 그린 영화로, 실제 퀸 멤버였던 인물들이 영화 디렉팅에 참여하여서인지 더 실화로 느껴지는 영화 였는데요.

영화 줄거리 중에서 실제 이야기와는 다른 부분에 대해 몇가지 공개된 정보를 공유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랩소디 - peuledi meokyuli bohemian laebsodi

1. 프레디 머큐리는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프레디 머큐리가 우연히 "스마일" 이라는 밴드 멤버였던 브라이언과 로저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내며 밴드에 조인하겠다며 이야기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게 되는데요,
실제로는 프레디가 런던의 아트컬리지 재학중일 당시에 브라이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브라이언은 천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던, 로저는 치과의사가 되기위해 공부하고 있던, 취미 겸 "스마일" 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던 덜 평범한 사람들이었죠.
프레디는 이 밴드의 팬이었고, 브라이언과 로저와 친한 친구가 되면서 부터 밴드의 멤버가 되고싶었지만 실제 리드싱어였던 "팀 스타펠"이 1970년 밴드를 자의로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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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레디머큐리는 전 여자친구였던 메리 오스틴을 밴드 멤버를 우연히 만나던 날 함께 만났을까?
영화에서는 프레디가 메리 오스틴을 "스마일" 밴드 공연 관람 후 백 스테이지로 브라이언과 로저를 만나러 가던 도중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으로 비춰 줍니다.
하지만, 프레디는 메리를 브라이언을 통해 만나게 되었고, 메리와 브라이언은 아주 잠깐 데이트 하던 사이였다고 합니다.
프레디는 밴드의 실제 멤버가 되어 공연을 하게 되면서 메리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며, 첫눈에 반한것은 아니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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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밴드는 "퀸"이라는 이름에 대해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있었나
맞습니다. 정말 다양한 의미를 갖고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밴드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합니다.
머큐리는 퀸이라는 의미가 동성애자에 대한 뉘앙스를 갖고있는 것을 인정하긴 하지만 그것이 전적인 의미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4. 프레디의 특이한 치아
프레디의 앞니는 그의 심볼이 될 만큼 아주 독특 한데요. 앞니가 너무 많이 튀어나와서 평소에 불편하지는 않느냐, 언제 치아성형을 할것이냐 등의 질문을 많은 인터뷰에서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앞니 뒤에 추가로 4개의 치아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의 말에 의하면 노래를 하는데에 이 부분이 큰 장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치아를 성형하게 되면 그의 음성의 공명을 바꿀까봐 두려워서 그 치아들을 제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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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레디의 개인 매니저였던 폴 프렌터는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프레디를 배신하였나
맞습니다.  실제로 폴은 1977년부터 1986년까지 프레디의 개인매니저로 일했습니다.
퀸의 다른 멤버들은 그를 "Bad influence" 라고 불렀죠. 영국 신문에 가수의 개인정보를 판매한 이유로 해고 되었는데, 머큐리의 전 연인들이 에이즈로 어떻게 죽어가고 있었는지를 폭로하거나 자신이 매니징 하고있는 프레디의 사생활을 동성애 남자로 묘사하고 다녔죠. 영화와 달리 그는 TV 인터뷰에서 프레디의 개인 사생활을 노출시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폭로는 단지 생중계로 방영되지만 않았을 뿐, 신문에만 많은 정보를 보냈다고 해요.

6. 실제 밴드 멤더들이 보헤미안랩소디 영화 제작에 참여하였나
맞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8년간 바이오픽 제작을 시도 하였습니다.
2010년부터 영화제작에 힘쓴 이들은 영화를 통해 세계가 프레디를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영화내용을 바로잡을 것이고 균형 잡힌 구성으로 만들 것이라고 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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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퀸은 해체 하였던 적이 있었나
아닙니다. 영화에서는 4백만 달러의 솔로계약을 맺은 프레디가 다른 멤버들을 배신하면서 자신만이 하고싶은 다른 음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들은 해체를 했던 적은 없으며, 1970년대 초반부터 10년간 함께하여 불붙어 세계를 공연하며 다녔기에 서로 각자의 커리어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1983년 잠시 휴식을 취한것에 서로 동의하였고 연락을 유지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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