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남해 해저터널 - yeosu namhae haejeoteoneol

지난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자치단체장은 최근 취임 100일이 지났다.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 등 자치단체장은 4년간 펼칠 주요 사업의 틀을 짜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들의 살림살이 계획을 듣고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행정의 주민 밀착도가 훨씬 높은 시장·군수·구청장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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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남 경남 남해군수가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남해~여수 해저터널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남해군

2021년 8월 24일. 경남 남해군민 4만여명이 23년 동안 기다린 숙원 사업이 마침내 첫걸음을 뗐다. ‘남해~여수 해저터널’이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1998년 문화관광부가 남해안 관광벨트 사업을 위해 경남과 전남을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가칭 '한려대교' 건설 계획을 세운 지 23년 만이었다.

[2022지자체장을 만나다]

해저터널은 여수와 남해가 가장 근접한 여수시 삼일동과 남해군 서면 서상리를 잇는다. 총연장 7.3㎞구간에 왕복 4차로 도로를 건설하는 공사로, 5.93㎞는 해저터널, 1.37㎞는 일반 도로다. 해저터널이 들어서면 양 지역 52㎞의 이동 거리가 7.3㎞로 줄어 여수에서 남해까지 이동시간이 1시간 반에서 10분으로 준다. 해저터널은 내년부터 2028년까지 총 6974억원을 들여 건설할 예정이다.

해저터널 사업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2년·2005년·2011년·2015년 등 4차례나 예타 벽에 가로막혔다.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예타의 벽을 넘은 데는 장충남(60ㆍ더불어민주당) 남해군수 역할이 컸다.

남해 출신인 장 군수는 국민의힘 휩쓴 지난 6ㆍ1지방선거에서 영남권 70개 기초지자체 중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2018년에 이어 남해군수 재선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광역도 아닌 기초단체장이 해저터널이라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성사시킨 게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 군수는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남해~여수 해저터널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다. 남해군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둥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해냈다"라며 "이를 계기로 4년 동안 지역을 크게 도약시키라는 뜻에서 표를 몰아준 것 같다”고 했다.

경제성 부족…BC를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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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기획재정부가 진행한 '남해~여수 해저터널 예비타당성 조사 현장답사'에서 장충남 경남 남해군수가 해저터널 건설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남해군

해저터널이 그간 예타에서 번번이 좌초된 이유는 ‘경제성 부족’이었다. 예타에서 핵심은 ‘BC(비용 대비 편익)’다. 2015년 4차 예타 당시 해저터널 사업 BC는 0.33이었다. BC는 1이 넘으면 비용보다 편익이 높아 경제성이 있다고 본다.

장 군수는 “비수도권에서 어떤 사업을 하던 (BC) 1을 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며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 지역에만 유리한 경제성 분석에 문제를 제기, 비수도권 지역평가에서 지역균형 가중치를 보태달라고 지속해서 건의했다”고 했다. 실제 예타 제도가 개편되면서 해저터널도 예타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장 군수는 2021년 해저터널 예타에 앞서 BC를 높일 수 있는 경제요인을 세밀하게 발굴하도록 지시했다. 과거와 달리 남해에는 연간 400만~500만명이 찾으며 대형 숙박시설과 관광콘텐트 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여수를 찾는 관광객만 연간 130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수세계엑스포 개최 이후 여수ㆍ순천권에 수조원대 인프라가 들어선 상황에서 해저터널을 통해 여수에 있는 공항과 KTX역을 남해군민이 사용하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도 제시했다. 장 군수는 ‘발품’도 많이 팔았다. 그는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당시 국무총리를 두 차례 만났고, 국회ㆍ국토부ㆍ기재부 등 관계기관을 100여 차례나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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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남 경남 남해군수가 지난해 1월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이었던 윤후덕 국회의원을 만나 '남해~여수 해저터널' 건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 남해군

‘교통 오지’에서 ‘남해안 관광벨트 중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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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여수 해저터널 예타 통과. 그래픽=신재민 기자

남해군민들은 해저터널 건설 확정을 두고 “1973년 섬이었던 남해를 육지화한 ‘남해대교 개통’을 뛰어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2개의 큰 섬으로 이뤄진 남해군은 “교통의 오지 중에서도 오지”라는 불명예를 얻어 왔기 때문이다.

남해군은 앞서 남해대교가 설치되면서 육지와 직접 연결, 천혜 자연경관을 무기로 관광지로 조명받았다. 이후 2003년과 2018년 창선·노량대교가 잇달아 건설됐지만, 여전히 대교 3개를 통해서만 오갈 수 있어 접근성이 떨어졌다.

해저터널이 개통하면 수도권과 접근성도 개선된다. 4시간30분에서 5시간가량 걸렸던 남해~서울 간 거리가 공항과 KTX역이 있는 여수를 거쳐 오게 되면 2~3시간으로 단축되기 때문이다. 남해군은 전남 여수ㆍ순천권과 경남 남해안을 찾는 연간 7000만명이 해저터널을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장 군수는 “해저터널은 국가 차원에서 국도 77호선의 마지막 미연결 구간을 잇는단 점에서 ‘막힌 혈’을 뚫는 의미가 있다”며 “영호남의 경제ㆍ문화ㆍ사회 소통로 역할을 함으로써, 두 지역 동반성장과 화합을 도모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국도 77호선은 한반도 남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ㄴ’자로 이어진 총길이 1239.4㎞의 국내 최장 국도다.

남해 패싱 막아라…‘해저터널 시대’ 준비도 착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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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에 조성 중인 대명소노그룹의 리조트 '브레이커힐스 남해' 조감도. 사진 남해군

장 군수는 해저터널 이외에 교통, 숙박, 관광 등 다른 인프라 확충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른 기반 시설 없이 해저터널만 뚫리면 남해가 단순 거쳐 가는 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어서다.

해저터널과 함께 예타를 통과한 ‘국도 3호선 창선~삼동 구간 4차로 확장 사업’은 이미 실시설계 들어갔다. 남해군 미조면 설리해수욕장 부근에는 리조트가 건설 중이며 조도(鳥島)에는 다이어트 보물섬, 창선 진동 권역에는 힐링빌리지 등을 조성 중이다. 다이어트 보물섬은 다이어트 센터, 치유의 숲, 탐방로 등을 만드는 사업이다.

장 군수는 리조트와 실버산업 등을 포함한 숙박ㆍ의료ㆍ문화ㆍ복지ㆍ관광 분야 1조원대 민간 투자 유치도 약속했다.

경찰서장·비서실장·대학교수까지…“어디서든 잊지 않은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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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남 경남 남해군수가 지난 9월 30일 남해군 삼동면 독일마을에서 열린 '맥주축제'를 군민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 사진 남해군

경찰대(1기)를 졸업한 장 군수는 2010년 김해중부경찰서 서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이듬해 당시 김두관 경남도지사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행정 경험을 쌓았다. 장 군수는 김두관 의원과 초·중학교 선후배 사이다.

2012년 김두관 경남지사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지사직을 내려놓자 장 군수도 함께 그만뒀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남해군수로 당선되기 전까지 김해 가야대 경찰행정학과에서 교수로 일했다.

장 군수는 스스로 “애향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 경찰서·경남도·대학에서 일하면서도 항상 고향을 잊지 않았다”며 “군민이 행복하고 전 국민이 살고 싶은 남해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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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남 경남 남해군수가 지난달 5일 남해군 상주면의 면적 0.41km2의 작은 섬인 '노도'에서 군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남해군

남해=안대훈·위성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