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Jan 16, 2018 in Devotions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발 앞을 밝히는 등불이고 인생길을 비추는 빛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을 거룩하게 안내하는 교사요 인도자라는 말입니다. 등불과 빛은 밤에 필요합니다. 따라서 시인은 스스로 어둠으로 둘러싸인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다음 구절들에서는 고난이 심하고, 항상 위기에 있음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그 분의 길과 반대로 향하고 있는 이 세상이 어둠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세상을 헤쳐 나갈 인생길의 빛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진리가 왜곡되고,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말하고, 서로가 옳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이 세상이야말로 정말 어두운 세상입니다. 그런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을 수 있고 웅덩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잘난 듯이 살아가지만 빛되신 말씀이 없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습니다. 진리요, 빛이요 등불인 말씀을 붙들고 어두운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족하는 사람들을 바르게 세우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사십시다. http://robinbox.net/ot/poetic/19psalm/19psalms119105_mylightlamp_20041215_robin.html 제목 : 나의 빛과 등불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9편 105절 한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을 다 찾으셨으면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나의 빛과 등불”이라는 제목으로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에 기름부어 주시라고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일반적으로 사람의 인생을 언급할 때 우리는 자주 “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과거를 언급할 때는 “지나온 길”이라고 표현하며, 미래를 언급할 때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의미로 “진로”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경은 구원받지 않은 인생에 대해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사 53:6上)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잃어버린 자들에게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사 55:7上)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잠 14:12, 16:25)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기 때문이니라. 주가 말하노라”(사 55:8下)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길을 잃고 헤매며 각각 자기의 길로 갔다가 자기 길과 자기 생각을 버리고 길을 바꾸어 하나님께로 나아온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 구절인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은 참으로 거듭난 우리들의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본론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요한복음 1장을 보시겠습니다.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더라.” 침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큰 자는 없다”라고 말씀하실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마 11:11).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대언자들 중의 가장 큰 대언자요(눅 7:28),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었습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에게로 나아와 자신의 길을 묻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리들이 와서 “선생님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묻자, “너희에게 정해 준 것 이상으로 거두지 말라”고 충고하였고, 군사들도 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물으니 “아무도 폭행하지 말고 아무도 거짓으로 고소하지 말며 너희가 받는 급료로 만족하라”라고 말해주었습니다(눅 3:12-14).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침례자 요한을 보며 그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할 정도로 그는 거룩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대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해 증언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더라.” 성경은 단호하게 여자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들 중에 가장 큰 자요, 가장 큰 대언자였던 침례자 요한 조차도 “그는 이 빛이 아니요”라고 못박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람의 말과 가르침도 우리 길의 빛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와 같은 놀라운 사도들도 다만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일 뿐이며, 그들 역시 이 빛을 주의하며 길을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빛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우리의 길에 유일한 빛이 되시는 주의 말씀을 우리 생활 가운데 더 가까이 하기 원합니다.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 성경에서 장막은 우리의 육신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장막을 벗는다는 말과 떠나간다는 말을 번갈아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머지않아 반드시 이 장막을 벗고 주님께로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그리고 내가 떠나간 뒤에도 항상 너희가 이것들을 기억하도록 일깨우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부터 18절에서는 베드로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6 그 까닭은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게 할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오히려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17 그 까닭은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이니라. 18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나온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는 자신이 전파하고 가르친 말씀들이 거짓이 아니요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도 아니라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직접 귀로 들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떠한 영광으로 오실 것인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너희 마음속에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