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서 판매량 - hangug doseo panmaelyang

“책 한번 뜨면 작은 빌딩 한 채 살 수 있죠. 강남 빌딩은 아니지만…."
지난달 27일 만난 출판업계 관계자 A씨. 그는 올해 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도 선방을 했다고 한다.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A씨는 “건물을 살 수는 있지만,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어 직원들에게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비용 처리하며 차나 집을 마련해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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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1일 경기도 파주시의 한 폐지 전문업체에서 '재활용'을 기다리며 다음 생을 기약하고 있는 책의 마지막 모습. '이들'은 이틀 뒤 분해, 압축 처리될 예정이다. [사진=조태환]

출판계에서는 하나의 베스트셀러가 10개, 20개의 범작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가 있다.

코로나 시대에 뜬 책의 일생 #원고 한달 300대 1 경쟁률 거쳐 출간

2020년. 책이 떴다. 출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호황을 맞은 업종 중 하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책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 증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외출 자제, 도서 시장 성수기인 겨울 등 책에는 호재가 맞물려 있다. 책은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지 더듬어 봤다. ‘책의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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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작가의 머리와 손끝에서 태어나 구멍 뚫리거나 스프레이를 뒤집어 쓰고 생을 마감한다. [중앙포토]

# 인세 평균 10%, 유명 작가는 선인세

‘자, 어서요, 부인, 이리 오세요.’
『책의 자서전』(열대림)은 책의 인생을 다루는 책 중 하나다. 60년 된 왕년의 베스트셀러는 네 번째 주인을 향해 애타게 구애한다. 재활용 처지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판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굴욕적이기도 한’ 눈짓을 보낸다. 하지만 이전, 책도 생명을 얻는다. 『책 죽이기』(문이당)에서는 이를 ‘임신’이라는, 적나라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A씨 출판사에는 한 달 250~300부의 원고가 들어온다. 이 중 빛을 보는 건 한 달에 한 부. 그는 “기존 작가 외에도 일반인들도 투고를 많이 하는데, 독특함이 없으면 몰고(원고를 폐기) 시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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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 유통 구조. 그래픽=이정권 기자

출간 결정이 나면 작가와 출판사의 네고(협상)가 벌어진다. 먼저 인세. 소설·에세이 등은 15%. 첫 책을 내는 작가라면 6~7%다. 평균 10%로 본다. ‘선인세’라는 것도 있다. 작가의 지명도가 있어야 받는다. 예를 들어 인세 20%에 300만원 선인세를 받았다면, 2만원 짜리 책이 1000권 팔린 상태(보통 3개월)에서 미리 받은 300만원을 제한 1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작가는 디자인·교열·편집 등과 4~5차례 ‘밀당’을 한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다른 출판사의 B씨는 “문학 쪽 원고는 잘 건드리지 않지만, 실용서 쪽은 문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교열을 보는 편”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일 경기도 고양의 국일문화사. 양장기계(하드커버 제작)와 무선기계(종이커버 제작)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이 제본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등을 만들었다.

조태환(30) 차장은  “작가들이 선호하는 종이를 들고 오기도 하고, 책의 주제에 따라 재질이 다르다”며 “예를 들어 사진집은 러프그로스(rough-gross)지를, 소설책과 에세이집에는 모조지를 주로 쓴다”고 말했다. 수첩과 학습지를 만드는 엄성호(56) 매일문화사 대표는 “신학기를 앞두고 일이 밀리는데, 일주일에 체중 3㎏은 빠진다”고 했다. 학습지와 참고서가 잘 나가는 신학기 3월은 여름·겨울 방학과 더불어 책 성수기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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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에 자리잡은 제본소 '국일문화사'는 무라키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등을 만들었다. 사진은 국일문화사의 양장기계(양장본 인쇄)가 힘차게 돌아가는 모습. [사진=국일문화사]

책 유통은 난수표처럼 얽혀있다. 제3자물류(배본사)·지역총판·도매점·소매점(온라인·대형체인 서점과 동네서점) 등이 가로·세로, 순방향·역방향을 마다치 않는다. 유통망에 제 몸 맡긴 책은 크게 세 가지의 난해한 키워드에 맞닥뜨린다. 위탁판매와 공급률·도서정가제(도정제)다.

‘위탁판매’는 출판사가 총판과 도·소매점에 배본한 뒤 팔린 만큼 결제를 받고 안 팔린 책은 되돌려 받는 한국의 독특한 시스템이다. 어음이 많이 쓰인다. 2017년 부도 처리된 업계 2위 도매점 송인서점(현재 인터파크송인서점)의 어음을 받고 책을 공급한 중소출판사들이 연쇄 부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인터파크송인서점은 지난 6월부터 매각 절차에 들어갔으나 매수자가 안 나타나 지난달 19일 회생계획안을 연장했다.

‘공급률’은 책 가격 대비 출판사의 납품 가격이다. 작은 출판사일수록 납품 가격이 낮게 책정된다. 같은 1만원짜리 책을 작은 출판사는 6000원(공급률 60%)에, 큰 출판사는 7000원에 납품하도록 하는 것이다.

‘도정제’는 이런 작은 출판사는 물론 소매점인 작은 서점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나왔다. 도정제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도정제가 도서 할인율 상한선을 10%로 정하자 오히려 대형서점에 비해 비싼 값에 책을 들여와, 할인을 할 수 없는 동네책방들이 문을 닫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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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과 헌창고가 만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태어난 서울책보고가 2019년 3월 27일 잠실나루역 인근에 개관했다. 김현동 기자

하지만 동네책방과 중소 출판사의 버팀목이 된다는 평가도 있다. 중대형 출판사와 대형 소매점이 창고 대처분 또는 땡처리를 위해 눈물의 세일을 해왔는데, 이를 막았다는 것. 한강 작가는 “도정제가 없으면 우리가 모르는 새 잃게 되는 작은 출판사들이 생기고, 태어날 수 있었던 책들의 죽음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겪게 될 것”이라며 “최대 피해자는 독자들”이라고 말했다.

A씨는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에 작가 혼자서 책 마케팅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출판사가 뛰어야 한다. 출판사 입장에서 손익분기점은 1쇄~2쇄 사이라는 게 중론이다. 출판사들은 이전에 1쇄에 5000부를 찍었다. 출판업계 장기 불황으로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 3000부로 줄였다.

A씨는 “고정비용이 있어 2쇄부터는 책을 찍을수록 돈이 적게 들지만, 그래도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2쇄 찍을지 2주일이나 고민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책 판매가 저조해도 한번 베스트셀러가 뜨면 출판사는 기사회생한다.

# 책 보관이냐 처분이냐 저울질
솜털 난 듯 보송보송한 책은 주인을 찾아간다. 교보문고가 2017년~2019년 월평균 판매량(학습서 제외)을 분석한 결과, 12월은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달이다. 월평균 판매량의 119%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10월, 11월)은 95% 안팎으로 평균 판매량에 못 미친다. 때문에 '독서의 계절'은 ‘책 안 읽는 계절’을 무마하기 위해 만들어 낸 구호라는 말도 떠돈다.

팔린 책이나 안 팔린 책이나 ‘고난의 행군’은 남아있다. 국토교통부 ‘2019년도 주거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이사 주기는 평균 7.7년. 이때마다 골치 아픈 이삿짐 1순위로 책이 꼽힌다. 주인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책들의 양로원(『책 죽이기』)’인 헌책방에 보내지거나 재활용 포대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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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1일 경기도 파주시의 한 폐지 전문업체에서 '재활용'을 기다리며 다음 생을 기약하고 있는 책의 마지막 모습. 이들은 이틀 뒤 분해, 처리될 예정이다. [사진=조태환]

출판사에서도 전전긍긍한다. 파주 출판단지 근처 책 창고를 운영하는 업체는 3~4곳. 출판사들 책 보관비용도 만만치 않다. B씨는 “책이 어쩌다 한두 권 팔리니, 보관비가 나갈 바엔 아예 처분하는 게 나아서 얼마 전에 3만권을 폐기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책에 빨간 스프레이가 뿌려진다. 구멍이 뚫리거나 모서리가 잘려나간다. 양이 많으면 물 폭탄을 맞기도 한다. 가혹하지 않으냐는 기자의 말에 A씨가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게 돌아오고 돌아다닌다. 시장이 교란된다. 누군가 1만2000원짜리 책을 3000원에 판다고 해봐라. 작가도, 출판사도 그리고 책도 원하지 않는 또 다른 죽음”이라고 강변했다.

책 종이는 박스로 다시 태어나 택배 상자로 돌아다니다가 결국 한줌의 재가 된다. 책은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전해줄 게 많다(『책의 자서전』).’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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