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실제 키 - gimhyeja silje ki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화배우 김혜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김혜자의 요즘 근황 모습은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 역을 맡았습니다. 배우 '한지민'과 듀얼 캐스팅으로 화제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줄지 너무 궁금하네요. 그럼 배우 김혜자의 과거 얼굴, 과거사진, 남편 임종찬, 아들 등등 다양한 정보들과 프로필 정보들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한국의 국민 배우로 뛰어난 연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 영화에서 어머니, 엄마 역할을 많이 맡았습니다. 재밌는 일화 중 하나는 지금까지 광고 모델 활동을 한 곳이 거의 'CJ제일제당'이라고 합니다. 김혜자는 제일제당 전무급으로 임원과 동등한 대우를 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과거 이화여자대학교 3학년 때 결혼을 하면서 학교를 중퇴했다고 합니다. 연기를 쉬다가 KBS 최초 공채 탤런트 뽑혀 연예계 데뷔를 했습니다.

김혜자 실제 키 - gimhyeja silje ki

과거 젊었을때 리즈 시절 사진을 보니 대단한 미모로 눈길이 갑니다. 이목구비는 지금과 똑같아서 성형 수술은 전혀 안 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와 다르게 인터뷰 등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사랑스럽고 소녀 다운 목소리와 행동이 아름답습니다. 아쉽게도 '인스타그램'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연기대상 4회 수상을 한 대단한 배우입니다. 그밖에 해외 봉사 활동, 자원봉사의 선구자라고 합니다. 

본명 김혜자, 국적 한국, 1941년 9월 15일생으로 만으로 실제 나이 77살입니다. 고향 지역은 일본령 조선 경기도 경성부이며 혈액형 A형이네요. 직업 정보는 배우, 방송인입니다. 그리고 학력 사항은 경기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생화미술학과 중퇴이며 가족 사항은 아들 1명, 딸 1명이 있습니다. 종교 개신교입니다. 데뷔 시기는 1961년 KBS 1기 공채 탤런트이며 소속사, 키, 몸무게 정보는 없습니다.

남편 임종찬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아들 1명, 딸 1명이 있습니다. 프로그램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은 빨리 죽는 것 같아 나는 나쁜 사람인가 봐. 이렇게 오래 살고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정말 잘 했다고 하네요. 남편 임종찬과는 1998년 사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김혜자는 담배를 피우는데 멋으로 피우는게 아니라 너무 답답할 때 담배를 피우면 좀 나아진다고 하네요. 또 배우 '김수미, 윤여정'과 좋은 우정으로 지내는 절친이라고 합니다.

김혜자는 '그래 이 맛이야' 다시마 광고가 인기가 많았습니다. 또 '혜자스럽다'말과 함께 '김혜자 도시락'도 큰 인기였습니다. 그리고 연관검색어에 '김혜자 사망'이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사실이 아니며 루머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영화, 드라마, 화보, 광고,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약하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탤런트 김혜자의 과사, 담배 등 다양한 정보들을 알아봤습니다. 방문하신 분들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셨기를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김혜자씨가 국민 탤런트로 서기까지 고민과 열정, 노력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고백한 글이다. 아마 이렇게 까지

솔직 담백하게 표현 하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듯하다. 배우로서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30대의 김혜자씨를 이해하는 좋은 글이 될듯하다.

배우 같은 김혜자

나의 연예 생활은 좀 거창한 말이 될진 모르지만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한 것 같다. 세브란스 의대생들이 가진 생의 계단이라는 연극에 출연 했으니까.

여섯 살 때 얘기 다. 그런데 우연히 극중에서 병든소녀역이 였는 데 연극이 끝나고 나도 늑막염에 걸려버렸다. 그래서 그분들이 가지려한 지방 순회 공연은 그냥 흐지부지 돼 버렸다.

남산국민학교 들어갔다 국민학교 시절은 그저 국어 시간이면 책 잘 읽는 정도에 평범한 아이였다. 오남매 중에 세째로 태어나 각별한 부모의 사랑이나 간섭을 모르고 살아서 어려서부터 웬만한 일들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해결하곤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별히 예뻤다거나 뛰어난 재주꾼도 못 됐고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내게 별로 커다란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에 입학 했다. 일류 중학교라는 경기였지만 실제 나 자신은 별 감동을 못 느꼈다. 그런데 김혜자 라는 이름은 왜 그렇게 흔해 빠졌는지 그때 우리 학년에만해도 4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네명의 이름 앞에 다가 각각의 특징을 붙여 구별해 불렀다. 키 큰 김혜자 , 공부 잘하는 김혜자 , 키 작은 김혜자, 배우 같은 김혜자 내가 바로 배우 같은 김혜자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불리우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김혜자 실제 키 - gimhyeja silje ki

그때의 동창들이 요즘 테레비에 나오는 내 얼굴을 보고 역시 배우가 되었구나 하고 일찍부터 예언한 자신들의 말에 새삼 신기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때 아이들은 왜 나를 배우같다고 했을까. 진짜 배우가 된 요즘에 나를 거울 속에 비춰봐도 특별나게 배우 같은데라곤 없는데.. 예쁘지 라든가 미인인데 라는 소리를 아직 직접 들어 보지 못했다 내가 봐도 결코 예쁜 얼굴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서 그런 찬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여배우 하면 우선 미인이야 한다는 일반 사람들의 상식을 실망 시켜 줄까 봐 그것이 좀 걱정이다.

그러나 미의 관점이 점점 달라지는 지금 자신을 가지려고 한다. 조형적인 미 보다는 움직이는 살아있는 미 즉 내면적인 성격미 라고 할 까 ...얼마 전에 중앙극장에서 상영되었던 빗속의 방문객이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자주가 보지는 못하지만 좋은 영화는 될 수 있는 대로 보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는 영화라면 미치도록 좋아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화관에 갔다 공부 시간이 왜 그렇게 지루했던지 학교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감방에서 풀려나는 기분으로 뛰어나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바 가드너, 리나 타나 ,오드리햅번, 진피터스 , 파이어 롤리, 마를린 몬로 , 안 바카 , 진 시몬스.. 이런 여배우들의 얼굴 표정에서부터 발끝 움직이는 것까지 반해버려 나의 머릿속은 온통 사로잡았다. 나의 조그만 가슴을 설레게 했던 남배우는 로버트 테일러 ,조셉 코튼, 제임스메이슨, 게리쿠퍼 ,로렌스 올리비에 , 타이론 파워 , 클락 케이블이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화 중에서 총상 입은 게리 쿠퍼를 두고 말에 실려가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애절하게 외치던 마지막 신의 여운이 귀에 남아서 그 장면을 되새기면서 한 밤을 짜릿한 슬픔으로 보냈던 일이 기억난다.

극성스럽게 모았던 배우 사진과 영화 프로그램은 아직도 일부가 남아 있다. 그 바람에 성적은 늘 끝에서 몇 번째 한 번은 중앙극장에서 파도라는 영화를 보다가 학교 선생님한테 들켜 정확 당할 뻔한 것을 교실 청소 당번으로 그쳤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졸업장은 탔다. 지금도 중앙극장 컴컴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여학교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김혜자 실제 키 - gimhyeja silje ki

영화광 미대생

그때와 지금의 영화는 많이 달라졌다 지금의 주연배우들은 옛날에 로버트테일러 그레이스켈리에서 볼 수 없었던 강한 개성적 매력을 느낀다.

주먹코의 찰슨 브론슨 그렇고 밀레느 조벨 역시 주근깨 투성이의 몸은 보잘것이 없다 조그맣고 말랐지만 표정 하나하나가 그대로 관계를 사로잡는 매력을 가졌다. 조벨이 기차역에서 빨간 여행 가방을 몰래 훔치다가 찰슨 브론손한테 들키지 금방 셀쭉 웃던 그 깜찍한 모습은 몇 마디 말보다 멋있다. 나는 조벨이 미인이 아니어서 은근히 호감 더 갔다.

겉으로는 얌전한 학생이었다. 별로 말은 안 하고 또 몸가짐도 조용한 편이었다 지금도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충고를 할 정도로 평범한 여자로 다닌다. 멋을 좀 내라는 말은 자주 듣지만 천성이 게을러서 그런지 외모에 인위적인 것은 별로 신경을 쓰기 싫다. 하지만 내면의 세계 공상의 세계는 무척 화려하고 엉뚱하다는 것을 남들이 모른다.

인기인일수록 로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사교에익숙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번잡스럽게 떠들썩한 것이 싫어 녹화가 끝나면 집으로 곧장 직행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나는 별 말도 변변히 못 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런 사람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그렇게 대담한 연기를 할 수 있느냐고 우리 집 아빠까지 의아해 한다. 일종의 신들리는 것일까?

몰아의 경지에 빠진다고 하면 좀 건방진 표현 같고 여학교 때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친구가 없다. 하나 있던 친구 마저 얼마 전에 미국에 가 버리고 말았다 나와 친하던 아이가 다른 아이와 친절히 이야기 하는 것만 봐도 나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내가 싫어졌나 봐 하고는 다시 외로운 외톨이 노릇을 즐겼다.

경기여고를 그럭저럭 졸업한 후 뚜렷한 목적도 없이 이화여대의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그 당시 고급 공무원 생활을 하시던 아버지 덕택으로 경제적 곤란을 모르고 대학 생활을 보냈다 돈을 벌어 보겠다는 든가 유명한 미술가 되어 보겠다는 야망을 모르고 따뜻한 햇살 아래서 풀 냄새 맡기나 즐겼고 여전히 혼자서 영화관엘 다녔다. 하루쯤 학교에 안 가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조용한 정도였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kbs 텔레비전 개국 과 함께 탤런트 모집이 있다는 방송을 듣고 나는 무턱대고 찾아가서 시험을 보았. 합격까지 했지만 집안 식구 와 내 주위 사람 아무도 몰랐다. 그때 나와 함께 합격된 사람은 정혜선 김란영 조영일 태현실 박주아 최정훈 최길호 등 모두 폐기와 정열의 넘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다시 열등감과 회의에 빠져 망설였다 그러다가 배역도 신통치 않아 왔다 갔다 하다가 아예 그만둬 버렸다. 다만 탤런트 시험에 합격 됐다는 걸 많이 신기롭고 늘 열등감에 빠져 있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을 뿐이다

공군 아저씨와의 결혼

하루는 어머니께서 웬 손님 한 분을 내게 소개 해 주셨다 둘이 곧게 선 공군 유니폼 때문이었던 지 믿음직스런 남자의 인상이 강하게 와 닿았다. 나는 대학생활도 별로 재미가 없고 하루 하루가 지루해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며 보냈다. 22살이면 한참 공부에 열을 올려 장 래 꿈으로 부풀 나이 이것만 나는 이때 학교 공부를 집어치우고 결혼 해 버렸다.

어머니가 선택해주신 바로 그 공군 아저씨다. 아 내 위치가 어떤 거고 결혼하면 곧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첫 아이( 현식이 )아들을 낳았고 시부모 밑에서 며느리 노릇도 했다. 가끔 가다가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지루하고 평범하게 3년을 집 안에서만 지냈다. 이런 생활이 내 전부는 아닐텐데 하고 그저그런 아주머니로 지내 버려야 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속에서 여학교 선배인 권영주 씨는 나를 구제 해 주었다.

민중극장의 창립 공연 달걀의 출연해 보라는 권유를 기쁘게 받아 들였다 미숙하기 그지없는 연기였지만 무대위에서 보람을 느꼈고 사는 것 같았다. 나의 지루 했던 생활에 조금 활기가 생겼고 연기에 재미를 붙이고 시작했다. 구후 민중극장 공연에도 한 번도 빠져 본 적이 없는 열성파 연기인의 하나가 되었다. 한 곳에 미쳐 보는 것이 여간 신나고 멋있는 일이 아니었다 2년이 지나자 또 다른 욕심이 불끈 솟았다.

나와 함께 KBS TV에 합격 되었던 탤런트들이 활짝 두각을 나타내고 TV극이 활발해지자 무대 연기인 들까지도 하나 둘 그쪽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다시 KBS TV에 나갔다. 이미 정상에 길을 걷고 있는 동기 탤런트들.. 심한 좌절감에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화려한 각광 속에서 커가는 옆사람을 의식할 때 내 화제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얼마나 초조 했는지도 모른다. 내면적인 연기가 더 중요한 거야 하면서 자꾸만 초라해져 가는 자신을 위로했다.

김동현 작품 박재민씨가 연출한 무죄에서 조금 사람들 입에 올랐다. 파리했던 얼굴에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얘기도 잘 하게 되었고 마음 놓고 웃기도 했지만 여전히 여러 사람들 앞에선 두 손을 둘 곳을 몰라 쩔쩔맸다.

실험 극단, 자유 극장에서도 교섭이 왔다. 모두가 욕심내는 작품들이라 시간과 몸을 조개야 열심히 뛰고 열심히 움직였다. 사할린스크에 하늘과 땅에서는 나는 온 정열을 쏟았다. 열연을 했던지 마지막 공연 날 막이 내리자 허탈감에 빠져 무대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연극속에서 나의 인생을 다 살아 버린 것 같았다.

한 곳에서 이토록 결정할 수 있는 나의 젊음을 새삼 감격하며 즐겼다 가장 흐뭇하게 마음을 들어 있던 흐뭇하게 마음에 들었던 것은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에서 내역이였다. 그때 나는 현식이를 닣고 6년 만에 다시 임신을 해서 매일 딸기만 먹으면 살았다. 연출이 무대 뒤에서 북을 쳐 준다. 막이 오르면 나는 신이 오른다 남편과 애인 사이에 방황하는 여인이 되어 울고 웃고 하다 보면 그대로 내 자신의 일처럼 빠져들어간다 애인과 남편의 공모로 죽임을 당하는 나..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막이 내린다.

철이 드니 점점 어려워 ..

땀에 흠뻑 젖어 흡사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나는 딸기를 몇알 집어 먹고 또 다시 저녁 공연을 위해 열심히 화장을 한다.

낮과 밤 공연 사이에 그동안 점점 인기 상승에 있던 연속 드라마 그림자 녹화를 위해 방송국으로 뛴다. 심한 입덧과 과로로 내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거만 마음은 창공을 나는 듯 자꾸 부풀어 올랐다. 내 몸이 약해서 간다는 걸 즐기고 있는 듯했다.

죄송스럽게도 가끔 난 두 아이의 어머니란 것 그리고 아내와 며느리 위치를 까맣게 잊고 30세의 여인인 김혜 자로서 만 있는 있고 싶은 순간을 자주 갖게 된다.

칭얼대는 두 아이가 나 혼자만의 세계를 방해하면 나는 아이들한테 도망가 골방으로 숨어버린다. 정말로 혼자이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사치스러운 감상과 소녀라고 우리집 아빠는 핀잔을 주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MBC 텔레비전으로 옮기 자마자 시작한 김동현 작의 개구리 남편이 얼마전 많은 화제 속에 끝을 맺었다 극중 인물로 만삭의 여인이었던 나는 아기를 낳을 때까지 그리고 낳고 나서 일주일도 안 된 채 시청자 앞에 부은 얼굴을 내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나에게 사람들은 동정을 보내기로 했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 열의에 하는 식의 찬사를 보낸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분은 아무리 연극이 좋지만 너무하다는 비난으로 받았다. 사실 나의 사생활을 그대로 드려 내놓으면서까지 출연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때 주위 환경이이를 거부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출연자들이나 연출 자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개구리 남편 속 최불암씨 아내를 실제 나로 잘못 알고 무척 가정적인라고 알고 있다. 아기를 낳고 10일 째 되던 날 몸 조리도 제대로 못 하고 남편을 찾아 나가는 야외 촬영에서 나는 정말 내 자신이 슬퍼졌다. 오시시 하는 몸을 떨며 집에 돌아와서 누워 있는 우리 아기를 보자 왈칵 눈물이났다. 나의 전부가 사람들 앞에서 벗겨 져 버린 것 같아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싫어졌다.

그나마 철 없을 때는 무서운 줄 모르고 이역 저역 다 해보았지만 자신의 경기에 불만이 생기자 점점 연결하는 것이 다 더 어려워져 간다.

(중략)

함께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의 열렬한 팬입니다 텔레비전을 보시고는 나의 연기가 좋으면 좋다고 나쁘면 나쁘다고 솔직한 평을 해주신다 우리집 아빠는 겉으로는 전혀 내일에 무관심한 척하지만 아빠 만큼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어서 가끔 한마디 해주는 말이 나에겐 커다란 도움을 준다 나와는 11살 터울이라 웬만한 나의 투정을 어리광으로 받아 죽 받아주 별로 심한 다툼 없이 살아 왔다. 인기 직압인의 아내로 인한 수모를 당했을때고 소박한 행주치마 주부가 되지 못하는 나에게 불만도 있을 터인데 그린 그런 내색을 안 보인다. 죄송한 마음이 늘 있건만 그 고마움을 나는 겉으로 표현 할 줄 모른다. 피곤해 뵈는 나를 위해 올 여름 바닷가의 갈 계획을 세우는 그이. 나는 따뜻한 행복을 느낀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신선한 얼굴로 다시 나타나 새로운 연기를 보여 줘야겠다

드라마속 국민엄마의 이미지는 김혜자씨 가정생활의 희생을 딪고 나온 것이라고 본다. 사람가리는 성격 탓에 연극을 통해 위안을 받으며 살아온 연기 인생이라 생각된다

김혜자 실제 키 - gimhyeja silje ki

1990 .3.10 선데이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