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열차 사고 - suhag-yeohaeng yeolcha sago

20. 모산 수학여행 참사

사고 개요

당시의 연흥관광 소속이었던 사고 버스는 서울 경서중학교 3학년 학생 77여 명을 태우고 현충사에 소풍갔다 귀경하던 도중이었으며, 모산역 북쪽에 위치한 이내건널목을 통과하던 중에 서울역을 출발하여 장항역으로 달리던 열차에 버스 왼쪽을 들이받힌 채 약 80여 미터 가량 밀려가면서 연료통이 폭발, 불길에 휩싸였다.

사고 원인

오랜 기간 입시 등에 중압된 상태의 학생들이 모처럼의 당일치기 여행 도중 즐거운 분위기에 심취함으로서 심한 소란을 피웠으며 이로서 운전 기사의 주위 집중력을 저하시켜 착오로 인한 건널목 일단정지 신호위반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또한 인명 피해의 규모가 커진 데에는 승차정원을 초과한 탑승 및 인솔교사가 탑승하지 않았던 점이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피해 규모

이 사고로 학생 45명과 운전기사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30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2명만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고 버스는 완파 및 전소되었고 기관차도 일부가 화재에 소실되었다. 장항선 열차 상하행선 모두 사고 순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전면 통제되었다.

사고 여파
사고를 당한 경서중학교는 5일 동안 임시 휴교 조치가 내려졌으며, 사고 발생 수 일이 지나 원주 삼광터널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하면서 전국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전면 금지되는 사태를 맞기도 하였다. 이 사고를 책임을 물어 경서중학교 교장 등 4명의 교직원이 파면되고 8명이 해직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사고를 낸 관광버스 회사에 대해 사업자 면허 취소 처분을 내렸고[3], 책임을 들어 당시의 서울 교육감의 사표를 수리한 데 이어 서울 철도국장이 잇따라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하는 등 철도계 내부에서도 인사 조치가 이루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또한 사고가 일어났던 곳에 위령비가 세워졌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르고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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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교육·학문

안전공학박사, 기술사(기계안전,인간공학,국제), 한국소방정책학회 감사, 한국화재감식학회 정보이사,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평가위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평가위원,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평가위원,한국지역정보개발원 평가위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평가위원, 칼럼니스트(전기신문,소방방재신문, 세이프퍼스트닷뉴스, 월간크레인.

서울 인창고 18회 졸업생, 열차사고로 중단됐던 경주 여행길 올라
당시 교사·학생 13명 숨져… 옛 은사도 동행

수학여행 열차 사고 - suhag-yeohaeng yeolcha sago

40년 전 중앙선 원주터널에서 발생한 열차충돌사고로 수학여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서울 인창고 18회 졸업생들이 40년 만에 다시 경주로 `수학여행`을 와 눈길을 끌었다.

지금부터 40년 전 1970년 10월 17일 토요일. 인창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400여명의 학생들은 서울 청량리역에서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이들에게 여행의 설레임은 잠시 뿐이었다.

강원도 원주역 동남쪽 2km 지점인 원주터널 안에서 이들이 탄 기차와 신호작동부주의 마주오던 화물열차가 정면충돌했다.

이 사고로 인솔책임자였던 정경근 교감과 교사, 학생 등 13명이 숨지고 2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날은 사고는 현재까지도 국내 수학여행사에 있어 대참사의 날로 기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수학여행은 취소되고 그 해 다른 학교의 수학여행도 일시 중단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이 참사가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전날 수학여행을 떠난 경서중학교의 버스사고 여파로 문교부에서 수학여행은 열차로만 이동하라고 지시한 바로 다음 날이었기 때문.

이처럼 아픈 사연으로 중학교 수학여행을 가슴에만 묻어뒀던 학생들은 최근 이원선 18회 동기회장의 제안으로 40년 만에 옛 교복을 입고 은사를 모신 가운데 경주로 수학여행을 왔다.

이들은 지난 16일 오전 7시 서울역 앞에서 선배 이귀남(15회) 법무부 장관과 최용주 인창고 교장 및 학생들의 환송을 받으며 기차를 이용, 경주에 도착했다.

사고 당시 인창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1997년 정년퇴임한 김대륙씨(72)도 이번 여행에 동행했다.

김씨는 “제자들이 40년 전의 한풀이를 하게 됐다”며 “40주년을 기리며 곁을 떠난 선생님과 아이들을 떠올랐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경주를 찾은 중년의 학생(?)들은 문화유산해설사인 담임선생님과 함께 자율적으로 선도, 반장 등을 정해 첨성대, 천마총 등 40년 전에 계획됐던 수학여행 코스를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한편, 이들은 매년 10월 17일 당시 희생자들이 안장된 경기 김포시 고려공원묘지 참배와 관리를 하고 있다. 경주/윤종현기자

입력 : 2014.04.18 05:38

2010년 10월 머리 희끗한 서울 인창고 18회 동기생 80여명이 경주로 뒤늦은 수학여행을 떠났다. 40년 전 고2 때 열차 사고로 먼저 보낸 선생님과 친구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1970년 10월 17일 서울 청량리역에서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중간에 울며 돌아와야 했다. 학생 400명이 탔던 열차는 단선이던 중앙선을 따라가다 원주 부근 터널에서 마주 오던 화물열차와 정면 충돌했다. 1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국 학교에 수학여행 중단령이 내렸다.

▶인창고 수학여행 사고 사흘 앞서 충남 아산의 철도 건널목에선 경서중 사고가 터졌다. 서울 경서중 학생을 태우고 현충사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던 버스 옆구리를 장항선 열차가 들이받았다. 학생 70여명 중에 40여명이 숨졌다. 정부는 수학여행과 소풍 때 버스를 타지 말고 안전한 열차로 다니라고 지시했다. 그러다 며칠 안 가 대형 열차 사고로 인창고 학생들이 죽고 다치자 머쓱해졌다.

수학여행 열차 사고 - suhag-yeohaeng yeolcha sago

▶70년대 서울에 있는 대부분 고등학교는 열차를 타고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한두 학급이 기차 한 량씩 빌리는 '전세 열차'가 유행이었다. 그 뒤론 점차 전세 버스가 열차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설악산·강릉·부여로 여행지 선택 폭도 넓어졌다. 그러면서 몇 대씩 꼬리를 물고 달리는 전세 버스 행렬이 사고뭉치가 됐다. 2000년 부산 부일외고 수학여행단을 태운 관광버스 두 대가 빗길에서 트럭을 추돌하면서 18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가 최근까지 이어졌다.

▶1990년대 제주도가 인기 수학여행지로 떠오르고 미국·중국·일본으로 떠나는 해외 수학여행도 늘어나면서 배와 비행기를 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자동차 사고 사망률이 10만명당 10명, 배는 0.3명, 철도는 0.2명, 항공기는 0.03명이어서 선박이나 비행기가 특별히 위험하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그러나 결국 수학여행 배에서도 일이 터졌다. 그제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하면서 제주로 수학여행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참사를 당했다.

▶침몰 사고가 나자 일부 시·도교육청은 수학여행을 미루라고 지시했다. 가족 여행조차 쉽지 않던 시절의 낡은 유물 '단체 수학여행'을 없애자는 얘기도 나온다. 교육 당국은 2001년부터 수학여행을 주제·학급별 소규모로 진행하라고 권고하지만 일선 학교에선 잘 지키지 않고 있다. 바깥세상이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교실에만 가둬둘 순 없다. 안전하고 유익하고 즐거운 여행을 아이들의 평생 추억으로 남겨주려면 어른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