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귀족 성씨 - jungse gwijog seongssi

본 연구는 11세기 중엽 비잔티움 제국 귀족 인장에 표상된 두 군인성인, 성 게오르기오스와 성 미카엘 이미지의 선택과 변경요인을 분석하고, 이미지가 만들어진 시대의 사회적 양상과 심성을 조명하는데 있다. 11세기 중엽은 비잔티움 역사에서 제위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경쟁이 지속된 전환기였다. 당대 지배귀족가문 인장에 선택된 두 군인성인의 이미지들은 새로운 황실가문을 세우기 위한 전망 속에서 증폭된 지배계급 내부의 세력 갈등과 통합의 양상, 제위계승을 둘러싼 연대의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견지에서 1057년 이사키오스 1세 콤네노스가 황제로 즉위하게 된 것은 단지 콤네노스 가문의 승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황제 미카엘 4세에 대항한 권력 투쟁에서 형성되고, 콘스탄티노스 9세 치세에 결집한 두 정치 세력, 지방 군벌귀족가문과 수도 문관귀족가문 간의 동맹과 연대에서 비롯된 승리였다. 상호 이질적인 두 정치 세력들은 이미지에 표상된 신앙적 정체성을 중재로 서로의 경계를 넘을 수 있었고 때로는 진영을 바꿀 수도 있었다. 이러한 유연한 협력과 연대의식을 토대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콤네노스-두카스 황실가문은 세워질 수 있었고 제국의 질서는 확립될 수 있었다. 11세기 비잔티움 제국 귀족인장에 표상된 성상 이미지의 사회적 양상과 문화적 심성은 십자군 시대에 유럽에 전파되어 서양의 종교와 예술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로마서 8: 28]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two military saints’ images (St. George and St. Michael), recorded on the Byzantine aristocratic seals of the mid-11th century and also to examine the representation images’ social aspects and cultural function. The Byzantine history of the mid-11th century was a turning point in which political conflict and social change accelerated in the ruling class. So the change in the way the images of the two military saints were adopted on the aristocratic seals reflects a change of complex political and social relationship in the ruling class toward the perspective of establishing new imperial dynasty. In this perspective, it wasn't just the victory of the Komnenos family that Issac I was appointed as emperor in 1057. But it was a victory based on the alliance between the two political forces. This alliance was formed in the political conflict against the emperor Michael IV and strengthened under the emperor Constantine IX Monomachos. In other words, the victory of the Komnenos familiy was originated from the solidarity between the civilian tradition families of Constantinople and the military families of Asia Minor during the same period. Two political forces who grew up in different culture could cross each other's boundaries and sometimes change their camps through the religious identity represented by the image of the same saints. Based on this flexible solidarity and cooperation, the new imperial families of Komnenos-Dukas could be established. [Romans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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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zantine Sigillography, Byzantine Iconography, Byzantine Aristocracy, Cult of Saints, Representation Images, St. George and St. Michael, Identity, Alliance, Integration, Solidarity

이력서에 적힌 이름이 자못 낯섭니다. 검색해 보니 중세 유럽에서 발흥했던 귀족 가문의 성씨라 합니다. 물론 요즘에야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다 직장까지 얻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적힌 글줄 행간에선 한국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온 네이티브의 향기가 짙게 풍겨옵니다. 정말 출생신고를 서유럽에서 한 친구라면 암만해도 이렇게까지 구수하긴 어려울 듯한데요.

아니나 다를까, 인사과에서 확인한 결과, 역시나 지원자는 카페 왕조 시절 융성했던 귀족 집안의 후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반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휴전선 밑에서 지낸 오리지널 한국인이었습니다. 다만 이력서에 호적상의 성명이 아닌, 인터넷에서 주로 쓰는 닉네임을 적었던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작품 대부분을 그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제작하고 선보였기 때문에 본명은 의미가 없으며, 오로지 닉네임을 써야만 아이덴티티를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합니다.

영국은 8백년의 전통을 갖고 이어지는 귀족제도라는 게 있다. 동화책이나 소설책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 뒤에 공작이나 백작, 남작 등을 붙여서 부르는 넒은 땅을 소유하고 수많은 하인들을 거느리며 사는 그런 사람들의 부류다.

공작(Duke/Duchess)이 가장 높은 순위의 작위이고 그 다음이 후작(Marquis/Marchioness), 백작(Earl/Countess), 자작(Viscount/Viscountess), 남작(Baron/Baroness) 등 이다. 이들 5개 작위는 전통적인 귀족의 작위로 장자에게 세습되어진다 해서 세습귀족 또는 유작 귀족(Peerag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지금도 런던의 땅은 웨스터민스터 공, 베드퍼등 공, 그로스배너 공, 사우스햄튼 공 등 손으로 헤아릴 정도의 명망 있는 집안의 소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런던의 동네 이름 중 "Earl's Curt" "Baron's Curt" 등 귀족이 살던 저택의 이름을 딴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의 권력이나 위세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영국의 이런 귀족 제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1958년 우리의 훈장처럼 자식에게 세습할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에게만 평생토록 귀족의 칭호를 쓸 수 있게 한 종신귀족 제도(Life peerages)가 도입되며 귀족제도가 서서히 위기에 처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습 할 수 없는 남작작위(Baron/Baroness)와 세습은 가능하지만 귀족에는 포함되지 않는 준남작(Baron/Baroness), 그리고 이들보다 더 낮은 작위인 기사작위(Knighthood) 등으로 세분된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수상이 1992년 남작작위를 받았고 그의 남편인 데니스 대처는 귀족에 포함되지 않는 세습 작위인 준남작 작위를 받았다. 종신작위는 부모덕에 그저 덤으로 얻은 것으로 세습작위의 귀족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영국 왕실은 매년 두 차례, 즉 신년과 여왕의 생일날을 기념해 영국을 빛낸 인물이나 음지에서 봉사하는 각계에서 추천된 모범시민 1천 여명 내외에게 작위를 수여해 한다. 이중에는 숀 코너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쥴리 엔드루스 등 영국출신 유명영화배우와 영국의 대표적 재벌인 버진(Virgin)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 회장, 권투선수 헨리쿠퍼 등이 포함돼 있다.

세습은 안되지만 각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관록과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종신귀족수가 크게 늘어나니 당연히 세습귀족이 설 땅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물론 작위를 물려 받아 귀족이 된 세습상원 들이 국가의 중요 사안에 대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해 왔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마침내 1999년 10월말 귀족의 상원의원직 세습을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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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출신으로 2차대전 당시 V2로케트를만든 Berner von Brown박사의 이름을 풀어보죠.

von의 뜻은 영어의 from 또는 of에 해당 하며

이름을 직역하면

Brown가문의 Berner라는 뜻이지만

von Brown이 거의 성으로 쓰이죠.

독일의 경우는 von이고

프랑스는 de

이태리는 da 이죠

프랑스와 이태리의 스페인의 예를 들면

Charles de Gaulle ( 샤르르 드골 )

Leonardo da Vince ( 레와르도 다빈치) 등이 있구요.

이들은 미들네임은 아니고

일종의 귀족 내지는 특권 의식으로 사용 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들네일의 예로는

John F. Kennedy에서

F가 미들 네임에 해당 되는데

특별한 룰은 없고

이름을 지어준 부모가 특별히 추가로 넣어 주고 싶은 경우나

어머니쪽의 성을 넣은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John F. Kennedy의 F는 Fitgerald로 어머니쪽 성을 미들네임으로 사용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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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습되는 작위들

= 영국 이외 = = 영국 내 =

- 남성 - - 여성,부인 - - 남성 - - 여성,부인 -

공작 [ Duke ] [ Duchess ] [ Prince ] [ Princess ]

후작 [ Marquis ] [ Marquees ]

백작 [ Count ] [ Countess ] [ Earl ]

자작 [ Viscount ] [ Viscountess ]

남작 [ Baron ] [ Baroness ] [ Lord ] [ Lady ]

- 당대에 한하는 작위

준남작 [ Baronet ] [ Dame ]

기사 [ Knight ] [ Dame ]

(공작, 후작 등은 번역을 위해 중국(주나라)의 작위를 끼워맞춘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공작, 후작의 아들들, 혹은 백작의 장남은 Lord라고 부릅니다.

'카인 하이그리브스'라면 '로드 하이그리브스'

* 작위 + 성

'드보아 드 오를레앙'이라면 '듀크 오를레앙'

* sir + 이름

'포톤 드 브르기냥'이라면 '서 포톤'

* lady + 성명

- 귀족의 성에 대하여

대체로 귀족들의 성 앞에는 단어가 하나씩 붙습니다.

독일의 '폰von', 프랑스의 '드de', 스페인의 '데de' 등이 그것인데요...

영어로 번역하면 of 의 뜻을 지닙니다.

원래, 귀족들은 영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 영지의 이름이 곧 성입니다.

샤를 드 부르봉이라고 하면 '부르봉 가문의 샤를' 이란 뜻이자,

이 가문의 본거지가 '부르봉'이라는 지방이란 뜻입니다.

'잔 다르크jeanne d'Arc'는 '잔 드 아크Jeanne de Arc'의 줄임말이며 또한 잔이 받은 영지가 '아크'라는 지역임을 뜻합니다.

(잔의 모든 가족은(여성을 포함하여) 샤를 7세로부터 귀족의 작위를 받게 됩니다.)

영국에는 이러한 middle name 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작위의 어원

처음에 토지는 왕의 동료들에게 (토지의) 소유권, 즉 매매·양여·증여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주어졌다. 나중에 프랑크족의 왕들은 병역의무의 대가로 토지의 이용권을 주었다. 이 토지는 사망과 같이 봉사기간이 종료되면 다시 왕에게 귀속되었다. 성직자에게 준 토지는 신앙심과 하늘에서의보상을 위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영원히 주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세속적인 수혜자들은 보통 사회적 지도자(duces, 단수는 dux)나 왕의 동료와 고문(comites, 단수는 comes)이었다. 후에 이들은 각각 공작(dukes)과 백작(counts)이 되었다. 이보다 후에 나타난 「공작」이란 칭호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왕족의 일원을 의미하게 되었다(따라서 백작보다는 다소 격이 높았다). 국경 지대(marches)는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했으며, 따라서 후작(margrave, marquis)은 백작보다 한 단계 더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