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 아빠 성우 사망 - jjang-gu appa seong-u samang

“짱구 아빠 두 분 다 세상 뜨셨다” 갑자기 사망 소식 전해진 성우

2020-04-1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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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암 투병 중 사망했다고 소속사가 밝혀

짱구 아빠 역할로 유명한 일본 성우 후지와라 케이지

짱구 아빠 성우 사망 - jjang-gu appa seong-u samang
후지와라 케이지 / 에어 에이전시

'짱구 아빠' 목소리로 알려진 일본 성우 후지와라 케이지가 사망했다. 향년 55세.

16일 후지와라 케이지 소속사 에어 에이전시는 "당사 대표 이사 및 소속 성우인 후지와라 케이지가  암 투병 중이던 지난 12일 만 5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후지와라 케이지는 '짱구는 못말려'(크레용 신짱)에서 짱구 아빠(노하라 히로시) 역할을 맡으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보노보노'에서 너부리,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매스 휴즈,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 내레이션 역할 등을 맡았다.

짱구 아빠 성우 사망 - jjang-gu appa seong-u samang
이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 제국의 역습'

지난 2016년 8월에는 건강을 이유로 잠시 휴식기를 가지면서 짱구 아빠 역할에서 하차했었다. 2017년에는 6월 16일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면서도 복귀를 선언하고 최근까지 틈틈히 활동을 이어왔다.

후지와라 케이지 사망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국내에서 짱구 아빠 역할을 맡았던 오세홍 성우와 그를 겹쳐보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오세홍 성우는 지난 2015년 향년 6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었다.

home 권택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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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5월 22일에, 오세홍 성우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정확히 말해서, 집으로 귀가하던 길에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에 알게 되었다. 들은 게 아니라.....

묘한 생각이 들었다. 성우의 죽음이라.....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적어 놓았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주저서인 '존재와 시간'에서 읽은 구절을 더듬더듬 기억에서 끄집어 본다.

하이데거에게 죽음이란,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확연하게 드러내 주는 순간이다. 누구도 그 자신의 죽음을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주관적인 순간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공포를 안긴다. 이 세상 어떤 일도 죽음만큼 개인적이며, 비밀스럽게 필연적이지 않다. 죽음 앞에 현존재인 인간은 평등하다.

그렇기에 우리들 대부분은 죽음을 의도적으로 포장하거나 회피한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는다. 바로 내가 아닌 누군가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살포시 포장한다. 그 누군가에 '나'는 들어있지 않을 것이라고 자위를 하며,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밀어낸다.

2. 우리가 살아 있는 중에 죽음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죽으면 끝이니, 현존재가 다시 비존재, 다시 말해서 없어지는 과정을 통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음을 체험하는 방법은 간접적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비보를 듣는다든지,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장례식에 참석을 한다든지, 아니면 명절이나, 제삿날에 상을 차리고, 조상을 기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사실 매주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분들도 엄밀히 말해서 죽은 예수를 기리는 행동을 하는 것이니, 어찌보면 그 것 역시 죽음의 간접체험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열혈 신도들은 그것을 직접적이라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철학적으로 고찰해 보면, 그 역시도 간접체험이다.)

우리의 곁에는 죽음이 늘 도사리고 있고,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리고 비본디적으로 '죽음'이라는 관념에 익숙하다. 뉴스만 보아도 최소 몇 주에 한 번은 사망소식이 반드시 들려온다. 죽음은 미디어, 특히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우리 옆에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바로 이런 죽음에 대한 친근함이 죽음이라는 것을 실존의 영역에서 진실되고 본디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고, 비본디적, 혹은 왜곡된 형태로 작용하게 만드는데, 바로 아까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언젠가는 확실히 죽을 것이지만, 그 언젠가가 지금은 아니다. 라는 생각의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그 '언젠가'라는 개념을 언제까지나 밀고 밀어서 자신을 세상 속에 완전히 퇴락시켜 버린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3. 하지만 삶에 푹 빠져서 살다보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깊이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치가 된다. 삶이 죽음보다 거칠고 힘들다면, 변명이라면 변명이랄까? 어쨌든 나나 당신이나 혹은 우리나 하이데거의 용어를 빌려서 표현을 하자면 '세인'이 된다. 우리 세인들은 이승에서 똥을 묻히고 사는 존재이기에 본질적으로 세상 속으로 퇴락한 존재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죽음만큼이나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렇기에 마냥 죽음이라는 관념을 의도적으로 떠올리며 살 수는 없는 것이고, 또한 죽음이라는 것을 그렇게 빤히 드려다 본다고 해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비밀이 폭로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삶에 우리 자신을 잊고 몰입한 채 살아간다.

그러던 도중에 오세홍이라는 성우 분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4. 위의 사진은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검프 역을 맡은 톰 행크스다. 나는 예전에 이 영화를 가장 먼저 텔레비전으로 접했다. 상당히 재밌게 본 기억이 있고, 몇 년후에 이 영화를 dvd 로 구입을 했다. 내가 가장 먼저 본 버전은 성우 분들이 더빙을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밑의 사진은 짱구는 못말려 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짱구 아버지의 모습이고, 그 옆의 분이 검프와 짱구 아빠의 역할을 맡은 오세홍 성우님이다.

일차적으로 오세홍 성우님의 목소리에 대한 내 단상을 조금 적어 보고 싶다. 내 머릿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역할은 오세홍 성우가 톰 행크스와 짱구 아빠의 목소리 역할을 했었을 때였다. 오세홍 성우의 목소리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인텔리의 느낌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경우에 따라서는 건방지게 들릴 수 있는 목소리일 수도 있지만, 건방짐의 느낌은 금세 세상에 대한 이해와 그 이해에 따른 허무한 감성으로 약해지면서, 되려 듣는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끌어내는 그런 종류의 목소리였다고 기억한다.

그건 맡은 배역의 느낌 덕택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톰 행크스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말고도 수 많은 다른 영화에도 출연을 했다. 필라델피아나, 혹은 다빈치 코드, 등등의...행크스는 이런 영화에서 믿음직스러우면서도 견고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가 그런 느낌을 관객에게 줬던 이유는 그가 종합적으로 완전하다는 느낌에서였을 것인데, 그 종합적이고 완전한 느낌을 성립시키는 것은 육체적인 강인함 보다는 지적인 우월함과 명민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한층 낮출 수 있는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향기였을 것이다.

오세홍 성우는 그 같은 행크스의 연기를 보는 통찰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행크스의 개성과 자신의 개성을 일치시키려 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뛰어난 성우분들을 단순한 목소리 출연자가 아닌, 하나의 예술적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생겨난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모방이고, 모방에서 발생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산출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덧붙이면, 행크스의 외면적인 모습에서 드러난 연기, 다시 말해서, 그의 얼굴, 키, 몸동작, 몸태, 목소리 등등에서 행크스의 진짜 내면의 모습을 잡아내야만 했을 것이고, 그 잡아낸 과정을 오세홍 성우가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구현해 내야만 했을 것이다. 이 과정은 정확하게 예술의 창작 과정에서 보여지는 고전적 창작의 형태다.

5. 장시간 방영되는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 아빠 역할을 보면, 오세홍 성우의 역량을 짐작하고 남기에도 넉넉하다. 영화라는 매체는 100분에서 200분 내외의 예술이기에 배우의 연기와 톤은 특정하게 기록이 되고, 또 프로 배우들은 그런 매체의 특성을 정확히 집어내어 자신의 연기를 영화에 맞출 줄 안다. 그리고 성우 입장에서도 한 배우의 특징에 대한 대략적인 감을 잡게 되면, 그의 연기적 특징에 자신의 목소리 연기를 덧붙이는 일이 한결 수월해 질 것이다. 그것에 반해서, 애니메이션 연기는 성우 입장에서 모방해야하는 것이 한결 제한을 받게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같은 제한은 성우에게 단순한, 모방, 연역, 수렴, 통찰 그리고 자신을 통한 재생산이라는 과정에서 자신의 연기력과 상상력에 기대는 부분이 커짐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만들어진 성우의 목소리가 더빙이 된 부분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이나 표정등은 실제 사람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렇다면 그 특징을 상징적으로 잘 잡아서 자신의 목소리를 새겨 넣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사실 일일 드라마의 매너리즘에 빠진 연기자들의 연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일 수 있다.

6. '목소리'라는 개념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개념은 전달이 될 수도 있고, 듣고 말하는 과정일 수도 있고, 수단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목소리에서 형태를 잡아낼수 없고, 목소리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목소리는 소유할 수 없고, 잡을 수도 없으며, 볼 수도 없고,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어떤 배우 한 분이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기억에 없다. (그 분에 대해서도 칼럼을 적어볼 생각이다.......) 그에 반해서 오세홍 성우분의 죽음에는 어떤 선명한 기억의 잔상으로 남아있다. 물론, 오세홍 성우의 목소리가 성우계에서 스타급의 자리에 위치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디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것은 이 성우의 죽음이 목소리라는 개념과 얽혀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길게 적었지만, 죽음에는 형태가 없다. 죽음 후에 남는 것은 영혼의 개념이 빠져 나간 육신일 뿐이다. 여기서 영혼이라는 개념도 역시 형태가 없다. 마치 목소리와 같은 것이다. 목소리가 육신에 속해져 있다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영혼 역시도 육신에 깃든 혹은 육신에 속해져 있다는 개념과 목소리의 개념이 순간적으로 일맥상통한 것이다.

오세홍 성우분의 죽음은 한 목소리의 사라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그 과정에서 죽음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단순한 과정이라 여겼던 육신과 정신, 혹은 영혼의 분리가 목소리라는 특수한 개념에 상징적으로 얽혀 들어가는 과정에서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던 통상적인 생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성우라는 직업은 배우와는 다르게 몸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영화 배우 만큼의 찬사를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점도 조용히 뒤에서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해내는 장인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 부음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만든 것이고.

7. 오세홍 성우 분의 역량은 이미 나나 모든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녹아서 이 분의 부음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리라 확신한다. 그만큼 좋은 성우였고, 예술가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추가

요즘엔 IPTV의 영향으로 더빙 영화의 비중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더빙 영화는 제작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톰 행크스의 신작 영화나, 아직 더빙이 안 된 영화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성우가 오세홍 성우를 대신해서 행크스의 목소리의 연기를 맡아야 할 것이다. 그 경우에 그 새 성우 분은 행크스의 목소리와 오세홍 성우의 목소리를 동시에 참고해야 할 것이다. 마치 오세홍 성우가 행크스의 외면을 통찰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재생산한 것 처럼. 덧붙여서 그에게는 한 가지 과정이 더 첨부될 것이다. '오세홍 성우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그리고 그것을 뛰어 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오세홍 성우의 목소리 연기는 뛰어난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