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순종하는 제자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 던지는 것을 보고 그들을 부르셨고, 또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는 것을 보고 부르셨습니다. 여기 네 사람이 바다에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애쓰듯이 오늘날 우리 인생들도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바다와 같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밤 늦도록 길을 왕래하면서 무엇인가를 애타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주님이 찾아 오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데 대하여 몇가지 생각해 볼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자들은 의외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꾼으로 쓰시려함입니다. 실로 엄청난 일을 맡기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일을 시키려는 분이 그 당시 그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기껏 고기나 잡아 연명하는 어부들 밖에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그 당시 사회에서 훌륭하게 준비된 사람들을 찾으신다면, 얼마든지 대단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바리새인들이라든지, 에세네파 사람들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매우 높은 종교적인 수준을 갖추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또 에세네파 사람들은 철저한 금욕주의 생활로 경건운동을 지켜나갔던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민족주의 면에서는 남다른 열정을 가진 애국자들 2.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저들을 부르신 목적은 제자 되게 하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순종의 사람입니다. 순종하지 않고서는 스승이 맡긴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이 부르실 때에 순종함으로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였을 때에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20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참 제자 만드시려는 목적에서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님의 뜻에 온전히, 또는 무조건 순종하는 삶뿐입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데는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름 받은 자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것은 천국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해야 할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일들 중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일은 사람을 낚는 어부의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부르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마귀와 세상과 어둠에 속해 있는 절망의 인간들을 하나 하나 구원하여 영원한 세계로 인도해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저작권자 © 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부르심(Calling)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였을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 말씀에도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여 생명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신학 공부하였던 골든 게이트 신학 대학원(현 Gateway Seminary)의 총장인 Dr. Jeff Iorg 박사는 그의 책 “부르심”(Is He calling me?)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세가지 유형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첫번째는 섬김과 성장에로의 일반적인 부르심(A Universal Call to Christian Service and Growth)이며, 두번째는 사역자로의 일반적인 부르심(A General Call to Ministry Leadership), 세번째는 사역 현장으로의 구체적인 부르심(A Specific Call to a Ministry Assignment)로 구분하여 부르심을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 모두는 첫번째 섬김과 성장에로의 일반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중에 일부의 사람들은 평신도 리더로, 사역자로, 선교사로 하나님께서 부르시기도 합니다. 사역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보다 구체적인 임무가 주어집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사도바울 모두 예수님께서 특별히 부르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성경의 많은 인물 가운데 모세의 부르심을 통해, 지금도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 사역을 위해 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1.
광야에서 부르심 (환경) 과거에 화려했던 자신의 신분, 명예는 간곳 없고 초야에 묻혀 은둔자로서 살아갈때 부르심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곳 하나님의 산 호렙의 의미: ‘사막’ ‘황폐함’ 바울도 선교 사역 본격적으로 감당하기 전 3년간 아라비아 광야에서 시간 보내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되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지는 광야에서 시간 필요합니다. 나의 자존심과 나의 이기심과 야망과 계획은 다 부서지고, 하나님만 철저히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광야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육체적으로 연약할 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관계의 어려움으로 힘들어 할때 하나님만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개인적으로 부르심 (관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모세를 예정하신 하나님은 태어날 때 부터 그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모세, ‘건져 냄’의미), 바로의 왕궁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지내면서 당시 최고의 교육과 리더십을 배우게 하십니다. 때가 차매 그를 광야로 이끄시고 호렙산 떨기 나무 앞에 서있는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십니다. Ex.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열두 제자를 개인적으로 부르신 예수님 우리를 이름으로 기억하시고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꼭 필요합니다. 개인적 회심 체험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났습니까? 요한 웨슬레: 감리교 창설자,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때 부터 성경연구, 17세에 옥스퍼드대학입학, holy club 활동, 미국으로 선교여행 가던중에 폭풍속에서도 초연하게 기도하던 모라비안 성도들의 모습보고 충격받음, 이후 런던 올더스게이트에서 열린 모라비안 모임 가서 루터의 로마서 서론 듣고 회심, 믿음으로 의롭게 됨 확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 이사야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사 6장), 3. 거룩에로의 부르심 (삶1: 경건)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거룩하신 분’, 거룩함 그 자체.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 호렙산은 거룩한 땅이었기에 죄인인 모세는 감히 그곳에 설수 없는 자였습니다. 때와 먼지가 묻은 신발을 벗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경외감을 표현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예수님의 보혈로 날마다 정결해져야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능력있는 종이됩니다. 목회 서신중 하나인 디도서에 보면 사역자의 자질: 의로우며, 거룩하며(1:8), 경건하며(2:2),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2:12),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2:14),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3:7) 경건(거룩함)은 내적인 경건과 외적인 경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외적인 경건은 야고보서 말씀대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약 1:27)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며 섬기는 행동이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는 거룩에로, 경건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4. 희생과 포기로의 부르심 (삶2: 고난) 룻기에 기업 무를자의 권리 포기하는 친족은 자신의 신발을 던집니다. 군사독재시절 민주주의 외치다 의문사한 고 장준하 선생,아들이 tv 나와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증언. 취업 안되어 평생 가난하게 삶,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 단칸방에서 노모와 살아감. 독립운동 후손들, 민주인사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대변. 복음 전도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명예, 물질, 권력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서 감사하며 사는 삶이어야 합니다. 기쁨과 만족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함이라” (고후 8:9)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감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고 영적으로 부요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는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나의 권리와 안위를 포기할 때 생명을 낳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5. 사명을 주시기위해 부르심 (목적/비전) 바울: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모세가 바로의 위협, 백성들의 원망과 배신, 불신앙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부르셨는가? 사명을 주시기 위해,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 (마 4:19) 힘든 일이 있고 심령이 연약하여 질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곤 합니다. 사명을 기억할 때 다시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 옥한음 목사님 저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 각자가 처한 환경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하도록, 사명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극동방송에서 사역하는 한 목사님이 전해준 극동방송에서 후원자들에게 발송하는 소식지를 잠시 읽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돕기 위해 4시간 생방송으로 모금을 하였는데, 어떤 청취자가 후원금을 약정 하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내는 만성 신장병으로 주 3회 투석 중이고 저는 대장암으로 항암 치료 중이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2계좌 신청합니다.” 자신들도 힘든 상황 가운데 있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돕는 손길을 내민 한 가정의 섬김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이 열려 있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6. 동행으로의 부르심 (약속/용기) 부르시고 사명 주시고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그 사명 이루도록 함께 하십니다. 야곱에게 벧엘에서 말씀하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제자들에게 지상 대명령 주실 때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40년 광야 생활 가운데 모세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 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실수하여 잠시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임마누엘 하나님은 눈동자같이 모세를 보살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기나긴 인생길, 광야와 같은 인생길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셔서, 마치 염려와 불안한 마음으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들의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뜨거워진것처럼,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히시고 우리의 굳은 심령을 뜨겁해 해 주실줄 믿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고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호렙산 떨기 나무 앞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은 거룩에로의 부르심이며, 고난과 희생에로의 부르심이며, 사명을 주시기 위한 부르심이며, 동행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평생토록 하나님께 쓰임받은 주님의 제자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