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선 후임 관계 - gundae seon hu-im gwangye

군대도 적응이란 의미에선 비슷하다고. 애초에 생활방식이나 목표가 다른 공동체 안에 들어가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생활해야 하는데 겨우 한달 교육받는다고 몸에 베고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선임병들이 노는것 처럼 보이는건 당연한거야. 실제로도 나 군생활할때만해도 짬안되는 애들 시키니까 실제로 놀기도 했지만, 일단 맡기는 일 똑바로 하면 잘하는 경우가 많거든. 왜냐? 그만큼 익숙해졌고 잘하기 때문에 여유도 있고 한거지. 갓 들어온 애들이 못하는 건 당연해. 근데 그렇다면 이걸 조정해주고 알려주고 할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그건 같은 업무를 했던 선임이자 사수이지 간부들이 아냐.

  • 답댓글 작성자제로슷 작성시간 11.09.20 니가 10~20년 짬 먹은 행보관 있다고 했지만 수송관처럼 수송에 대해서만 주로 맡고 책임 질수 있는 보직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보직도 엄청나게 많아. ㅇㅋ? 우리부댄 작아서 급양담당관이 따로 없엇어. 문제가 있으면 행보관에게 부탁을 하지. 그러면 행보관은 취사업무를 다 잘알까? 아니, 같은 지원과에 있는 지원과장조차 1종계원 업무 모두 훑고 있냐고 하면 전혀 모르고, (장교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부사관들도 당연히 자기 맡은 업무 있고 그걸로 바쁜데 얘네들한테 어떻게 목매달고 살겠냐?

  • 답댓글 작성자제로슷 작성시간 11.09.20 +해서 자살한 사람들에겐 미안하다만, 군대에서 자살하는 애들을 모두 군대문제라고 치부하기에도 문제가 많아. 어차피 사회에 있어도 문제가 있을 놈들이 군대안에서 문제 일으키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자살율 정확히 기억나는게 아니라서 미안하다만 군대에서 비교하는거 20대 자살율 비교도 포함되 있을거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혹여 아니라면 미안하고

    스팸뮤직에 썼던 글이다. 글을 쓴 이후 추가된 생각이 있지만, 일단 수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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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난주 15회에서 '빡세다'는 단어에 대한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빡세다'는 단어는 두가지 의미가 혼합되어 쓰이고 있고, 그 중 '자기 미션에 대한 빈틈없음'이 강조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그리고 '선후임에 대한 예의'의 측면에서는 최소한의 권위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 '최소한의 권위'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뻥긋거리려 합니다.
    실제적인 문제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최소한'의 범위가 달라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지나친게 아무개분에게는 '최소한'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짜 '최소한'은 지금의 우리부대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대로 피력하기에는 현실이 제 머리 속과 다르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진짜) 이유로 저조차 제가 생각하는 것대로 몸 속에 체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머리 속에 그리는 '이상'과 지금의 '현실' 중간 쯤에 실현할 수 있는 미래의 '가상'이 있을 것입니다.
    일단 '이상'을 그려낸 '원칙'을 먼저 말씀드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범위 내의 '가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임과 후임을 권력관계로 놓았을 때, 그 상하를 구분짓는 생활양식, 문화양식에는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군에서의 선후임뿐만 아니라 사회 대부분의 권력 관계에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는 제한된 재화의 분배에서 선임이 후임보다 더 높은 질과 많은 양의 재화를 가짐으로써 구분됩니다.
    이를 필요에 의한 '실력적 권위'라고 이름 붙이겠습니다.

    둘째는 선임과 후임이라는 상하관계를 구분짓기 위해 상징적으로 자유도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권위입니다.
    이를 '상징적 권위'라고 하겠습니다.
    '실력적 권위'와 '상징적 권위' 두가지를 정의하였습니다.

    나머지 한 가지로 '법적 권위'가 있습니다. 이는 선임병장이나 분대장 등등이 가지고 있는 실제 법적으로써의 권위입니다. 법적인 권위가 유지되어야함은 군대에서 당연한 거고, 법적 권력이 있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처벌이 필요한 정말로 큰 잘못입니다.

    문제는 법적으로는 주어지지 않는 나머지 두가지 문화적 권위입니다. 병 상호간에는 지시와 간섭을 할 수 없는 것이 법적으로 정해져있지만, 강한 연공서열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주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권위가 남아있습니다.

    '실력적 권위'의 예를 들자면, 포메이션 시간에 병장들은 쇼파나 의자에 앉고 자리가 없는 사람은 바닥에 앉는 것, 독방이 남을 때 병장이 먼저 쓰는 것, 기타 물질적, 비물질적 재화가 부족할 때 높은 계급에게 우선권이 가는 것들입니다.

    '상징적 권위'는 높은 계급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녀도 되지만 낮은 계급은 되지 않는 것, 높은 계급은 재미로 전체메일을 뿌려도 되지만 낮은 계급은 되지 않는 것 등으로 물질적, 비물질적 재화가 한정된 것이 아님에도 계급의 구분을 위해 차등시킨 자유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은 '실력적 권위'만 남고, '상징적 권위'는 없는 부대입니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관계에서 그런 경우는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상'입니다.)

    '실력적 권위'는 필요한 권위입니다. 모두가 가질 수 없다면 높은 사람이 가지는 것이 계급사회입니다.
    다만 재화를 모두가 가질 수 있다면 이 권위는 필요없습니다. 골고루 분배하면 다 돌아갈 수 있는 재화를 높은 사람이 욕심으로 더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해야 되지만 모두가 할 필요는 없는 '일'을 낮은 사람이 하는 것 또한 실력적 권위입니다.
    신병 때 포메이션 준비 등의 궂은 일을 맡아서 하는 것, 낮은 사람이 치킨을 받아 오는 것 등의 몸으로 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 예입니다.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 해야 하고, 부대원 전체가 필요하지 않다면, 낮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여기에 불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다만 모두가 다 힘을 모아야 하는 일에 권위를 이용해 빠져서 낮은 계급에게 두배로 짐을 지어준다면 안 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모두가 원하는 재화의 분배에서 골고루 돌아갈 수 없다면 높은 계급에게 돌아가는 것,
    그리고 누군가 해야하는 일의 분배에서 모두가 나설 필요가 없다면 낮은 계급이 먼저 나서는 것이 '실력적 권위'의 발현입니다.

    연공서열제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계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근사적으로 공평합니다.
    이의를 제기 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돌아갈 수 없는 재화를 왜 꼭 높은 계급이 가져야 하는가, 항상 낮은 계급이 가진다고 해도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연공서열사회에서는 높은 사람이 더 많은 재화를 가지는 것이 더 안정적입니다. 둘다 공평하긴 하지만 이왕이면 안정적인 게 더 좋습니다. 이게 왜 더 안정한가. 낮은 계급이 더 많이 가질 때는 전복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낮은 계급일 때 재화를 차지하다가 높은 계급이 되었을 때 권위를 이용하여 그동안의 관습을 전복시킬 수 있습니다. 높은 계급이 궂은 일을 맡아서 한다면 낮은 계급일 때는 편안한 이득을 누리다가 계급이 올라가면 낮은 계급에게 그 일을 떠넘길 수 있습니다. 낮은 계급은 의사결정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높은 계급이 더 좋은 재화를 가지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궂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모든 서열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조심할 것은 앞서의 재화의 분배는 모두가 같은 조건일 때입니다.
    예컨데 카투사 US 프렌드쉽 위크 포상 포메이션에서 (저는 듣기만 했지만), 낮은 계급에게 포상을 주자는 말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결국 몇명만 추려서 제비뽑기를 했는데, 그런 경우에 제 생각에는 계급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가장 고생한 사람이 받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병이라서 어쩔 수 없이 더 고생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고생은 인정해주어야 하고, 계급이 높아서 총 지휘를 하느라 어쩔 수 없이 고생을 해도 인정해주어야 하지,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 몰아줄 필요도 계급이 높다고 다 가져갈 이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합리적인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 더 고생한 사람이 있고 일부에게만 보상이 주어진다면 고생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건 '동등한 조건'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실력적 권위'는 그렇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인데, '상징적 권위'는 어떻겠습니까.
    일단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겠습니다. 한국육군에서 근무하는 제 친구 중 한명은 군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선임과 싸우고 여생활을 관심병사로 지내다 제대했습니다. 그 친구가 마음의 편지에 써서 바꾼 것들도 한두가지가 아닌데, 그 중 한가지가 샤워 바구니입니다. 그 부대는 병장만 샤워바구니를 쓸 수 있고, 나머지는 논산에서 받은 가죽 가방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대는 일이병은 샴푸를 써서는 안 되고, 바디워쉬를 써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100일 휴가를 갔다가 샴푸나 바디워쉬를 들고 오면 '빠졌다'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낮은 계급이 샤워바구니를 쓰든 샴푸를 쓰든 높은 계급이 피해를 보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쓸 수 없습니다.
    그 부대에서 '샤워바구니'나 '샴푸'를 쓰는 것은 짬 좀 찼다는 '상징'입니다. 그 상징을 깨는 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우리부대에도 정도가 약한 '상징적 권위'가 많습니다. 신병 때 목소리 크고, 절도 있음을 강조하는 것도 상징적 권위입니다. 낮은 계급이 비공식적인 내용으로 전체메일을 보내는 것을 막는 것도 상징적 권위입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높은 계급이 할 수 있는 걸 낮은 계급이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징적 권위입니다. "어디서 이병이.. " 라는 말로 시작하거나, "병장들이 하는 짓을 일이병들이.."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들은 열에 아홉은 상징적 권위의 발현입니다.

    모든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그 지위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를 확인하기 위한 행동규범들이 상징적 권위의 양식입니다.
    이러한 상징적 권위는 어느 위계 사회에나 다 있습니다. 어른이 밥 숟갈 들기 전에 먼저 들지 않는 것, 회사에서 높은 계급의 사람보다 더 좋은 차를 타면 눈치를 주는 것 등등이 상징적 권위입니다.

    상징적 권위의 존재 이유는 지위확인 욕구도 있지만, 이 상징적 권위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실력적 권위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편하게 대해줬더니 기어오른다"라는 말은 이때 씁니다.

    상징적 권위인지 실력적 권위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디팩에서 밥 먹을 때 낮은 계급이면 손을 상 위에 못 올리게 하는 것은 '상징적 권위'처럼 보이지만 '실력적 권위'의 요소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상 위에 손을 올리고 있으면 밥먹다가 팔이 부딪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낮은 계급은 손을 못올리게 하기 시작했다는 게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물론 상징적 권위의 측면이 훨씬 많긴 합니다만 완전히 분리할 순 없습니다.

    '법적 권위'가 '실력적 권위'나 '상징적 권위'를 강제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병들은 몇분, 일병들은 몇분까지 아침에 나오라고 선임병장이 말한적이 있는데, 이것은 법적 권위로 상징적 권위를 강제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 배경에는 '상징적 권위'가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밑의 계급이 자꾸 늦게 나와서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깨우러 가야 했고, 위협 받는 '실력적 권위'를 살리기 위해 '법적 권위'를 발휘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가지 권위는 분리할 수 없이 서로 상호작용합니다. '실력적 권위'만 남기고 '상징적 권위'를 없애고 싶은 게 제 심정이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막상 바뀌면, 상징적 권위가 사라진 상황에서 지위를 확인하고 싶은 제 욕망은 충족되지 못하고 예전사회로의 회귀를 희망할지도 모릅니다. 겉으론 이렇게 말해놓고 속으로는 건방진 쉐끼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저는 '상징적 권위'들을 하나씩 없애갔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일이병, 상병 초반이 자유롭게 전체메일을 못보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기수 밑으로만 도는 부분메일이 있었는데(동기 중 한명은 포함되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아마 전체메일을 보내지 못하게 하는 윗 선임들의 압박 때문이었을 겁니다. 몰래 관찰한 바로는 그 부분메일 속에서는 비교적 짬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메일을 주고 받았던 걸로 아는데 당시에는 그 부분메일의 경계선이 실제에도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끼지 못했던 저 같은 경우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주제도 못 따라가고, 더 사이가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들으면 웃기겠지만 서글퍼서 혼자 운 적도 있습니다.
    전체메일을 밑짬이 보낸다고 해서 윗짬에 피해가 가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물론 너무 낮은 짬이 장난스런 메일을 보내면 보기 안 좋지만. 일병 이상 쯤에서 (단어에 신경 쓰며) 예의를 갖춰서 보낸다면 공지가 아닌 전체메일이라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중구난방 너무 많은 메일이 쏟아진다면 전체에게 피해가 될 수 있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전체메일 뿐만 아니라, 사소한 옷차림에서의 지적도 불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신병 때는 피티시간에 튀는 운동화를 신고 와도 지적을 받았습니다. 무릎이 아파 보급받은 운동화를 쓸 수 없었던 저는 사제 운동화를 사야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것과 안 튀는 것 중에 갈등을 해야 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재고가 없어 안 튀는 것을 샀지만, 사실 튀는 운동화를 신는다고 해서 다른 부대원이 피해를 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값비싼 것만 입고 신는다면 경제적인 박탈감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그건 선후임을 떠난 다른 문제이고.
    군인으로서 해서 안 되는 악세서리나 피어싱 등을 한다면 그건 법적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기에 강하게 압력을 줘야할 것이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자유로워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이런 걸로 지적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단체로 건물을 들어서거나 나설 때 낮은 짬이 문을 계속 잡고 있는 것도 제 눈에는 너무 권위적으로 보입니다. 문을 휑하고 닫히게 놔두고 가는 것은 누가 하든 예의가 아니지만, 각자가 뒷사람이 들어올 때까지만 자연스럽게 잡고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는 모두가 똑같이 분담할 수 있는 일을 후임에게 전가한 것으로 실력적 권위를 가장한 상징적 권위 같습니다.

    이외에도 불필요해 보이는 상징적 권위들이 찾아보면 하나 둘 있습니다. 이 상징적 권위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밑짬일 때는 상징적 권위를 인정해주면서 불편하게 지냈는데 내가 누릴 때가 되면 포기하라니 억울할 것입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사람만 포기하면 됩니다. 아니면 법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상징적 권위를 포기하게 할 수도 있지만, 자연스레 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징적 권위를 깼으면 하는 제 바람의 이유는,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의 계급은 필요에 의해 임시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짬이 군에서 더 오랜 시간 고생을 했지만, 그것의 보상은 실력적 권위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상징적 권위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 권위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권위적인 사회는 소통이 단절되고, 개인이 개인으로서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군대는 사회의 반영이고, 폐쇄적인 이 곳은 사회의 안 좋은 것들이 마지막에 남게 됩니다. 여기서 배운 양식이 그대로 사회에 재반영되는데 지배적인 한국사회의 군대문화를 바꾸고 싶은 제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시면 그건 의견차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군대는 계급체계가 무너지면 기능할 수 없는 사회기 때문에 군대 밖 사회보다 더 권위적이어야 함은 분명합니다. 군에서는 개인이 개인으로서 제대로 서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사병들간의 '상징적 권위'가 적어진다고 해서 우리부대의 카투사병의 기능에 문제가 생길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주의할 것은 상징적 권위를 깨나가는 과정에서 실력적 권위가 위협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력적 권위만큼은 확실하게 통제를 해가면서 상징적 권위를 풀어나가도 풀어나가야 합니다. 법적 권위로 실력적 권위를 보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특정한 상징적 권위를 없앨 마음이 있는 선임이 먼저 깨려고 해야지, 후임이 먼저 깨려고 하면 선임이 기분이 무지 나쁠 것 같습니다. 위에서 먼저 푸는 것과 아래서 먼저 푸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항상 먼저 존경을 보이는 건 사람 만나는 지혜인 것 같습니다. 선택은 윗사람이 해야합니다.

    저는 선후임이 정말 자유롭게 대화하고, 소통하는 부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임을 좀 어려워 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아마 사적으로 어려워하지 않으면, 공적으로도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일정정도 동의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상징적 권위를 되도록 깼으면 합니다.
    그래서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공과 사를 확실히 구별할만큼 우리가 성숙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한번 없어진 '상징적 권위'를 살리기는 무척이나 힘든지라 섣부르게 판단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선후임이 자유롭게 놀면서도, (공적으로) 지킬 건 지키는 부대의 모습은 (어렵겠지만)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적으로는 어려워하지 않으면서 공적으로는 예의를 지키고,
    선임은 지나친 '상징적 권위'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후임은 '실력적 권위'에 불만을 갖지 않는 수준.
    '법적 권위'는 철저하게 지켜지면서 그 권위를 남용하지 않는 수준.  
    제가 바라는 수준입니다.

    '이상'을 설정하기는 쉽지만 현실에서 가능한 형태를 요구하면 '수준'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상 횡설수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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