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벌레 - chologsaeg beolle

잔뜩 색 도화지를 벌려 놓고 무늬는 분주합니다.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하려고 초대장을 만드는 중이지요. 무늬는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그들에게 꼭 맞는 색깔의 카드에 이름을 적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친구들은 제각기 꼭 맞는 색깔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진우의 색깔은 정할 수가 없습니다.

“나두 나두 응? 내 꺼 만드더.”

눈치 없이 언니 하늬가 자꾸 끼여들어 방해를 하자 무늬는 남은 도화지 조각과 가위를 주어 떼 보냅니다.

진우는 무늬네 반에서는 짱! 입니다. 무늬는 진우하고 친하고 싶은데 아직까지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참에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보려는 것입니다.

“나 이거 시더. 더거 줘.”

또 하늬가 다가와 가지런히 포개 놓은 초대장을 흐트러뜨리며 떼를 부립니다.

“안돼! 이건 벌써 다 이름을 쓴 거란 말야.”

하늬는 순순히 물러날 기세가 아닙니다. 한번 떼를 쓰기 시작하면 누구도 당할 수 없다는 걸 아는 무늬는 고개를 저으며 넌지시 엄마 마음을 떠봅니다.

“엄마, 내 생일잔치 말인데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페스트푸드점 같은 데서 하면 어떨까?”

“왜 그러고 싶은데?”

“집에서 하려면 엄마도 힘들고 복잡하고 또오…….”

“엄만 괜찮아. 그러니까 엄마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면 그냥 집에서 하자.”

엄마가 딱 자르는 바람에 무늬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말은 엄마가 힘들까 봐 그런다고 했지만 사실 무늬의 속내는 따로 있습니다. 시한폭탄 같은 언니가 언제 무슨 짓을 할 지 걱정이 돼서 그랬던 거예요.

무늬보다 두 살 위인 하늬는 덩치가 엄마만큼 큽니다. 하지만 하는 짓은 꼭 세살 짜리 어린애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자라지 못해서 그렇다는데 병원으로 특수학교로 또 음악치료다 미술치료다 엄마가 그렇게 데리고 다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걸 보면 상당히 고치기 어려운 병인가 봅니다.

무늬는 엄마에게 거절당한 분풀이로 짜증을 부립니다.

“아유, 내가 못살아! 이거 다 망쳤잖아! 제발 저 통제불능 사고뭉치 제멋대로 막무가내 고집불통 시한폭탄 좀 처리하란 말얏”

“쯧쯧쯧…… 저 소갈딱지하고는.”

엄마는 무늬의 속내를 환히 알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하늬를 데리고 나갑니다.

‘통제불능 사고뭉치 제멋대로 막무가내 고집불통 시한폭탄’

하늬가 일을 벌릴 때마다 덧붙이다 보니 이렇게 길고 이상한 이름이 되어 버렸지만 무늬네 집에선 써서 안 되는 말이 꼭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바보"라는 말입니다.

#.

무늬의 생일입니다. 친구들이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들고 친구들이 모두 무늬네 집으로 모였습니다. 물론 진우도요.

시끌벅적하니 아이들 소리가 나자 하늬가 더 설레발을 치며 나섭니다. 무늬는 그러는 하늬가 신경 쓰여 자꾸 방안으로 밀어 넣지만 소용없어요.

“많이 먹고 재미있게 놀거라. 그리고 하늬는 엄마하고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엄마는 얼른 상을 차려 주고 엉덩이를 빼며 버티는 하늬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제야 무늬와 친구들은 고깔 모자도 쓰고 목소리를 높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위에서는 폭죽이 터지고 아이들의 입에서는 웃음이 터집니다. 무늬는 진우와 짝이 되어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모처럼 웃음과 수다가 그칠 새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밖의 소리에 하늬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나갈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마침 엄마가 전화를 받는 틈을 타 하늬는 재빨리 거실로 나왔습니다. 하늬는 한 쪽에 놓아둔 선물들을 가서 닥치는 대로 포장지를 뜯고 내용물을 꺼냈습니다.

“으-악! 내가 못살아!”

온통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 다음에야 하늬를 본 무늬가 비명을 터뜨렸어요. 제 맘대로 못하게 하자 하늬도 바닥을 뒹굴며 괴성을 질러 댔습니다.

“어머나! 이게 웬일이야!”

그 소동을  듣고 방에서 달려나온 엄마는 놀란 무늬의 친구들부터 다독거렸습니다.

“어머, 얘들아! 놀랐나 보구나. 괜찮아, 별일 아니야. 언니가 좀 아파서 그런 거야. 뭐 더 필요한 거 없니? 뭐 더 줄까?”

엄마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랴, 어질러진 것을 치우랴, 하늬 달래랴, 무늬 다독거리랴 정말 팽팽 돌아가는 팽이처럼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놀란 가슴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뿔뿔이 돌아갔고 무늬의 생일 잔치는 어이없게 끝나 버렸어요.

무늬는 생각할 수록 속이 상합니다. 진우하고 친해지기는커녕 망신만 당한 꼴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도 하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걸 보자 하늬를 보자 버럭 울화가 치밀어 매몰차게 쏘아붙입니다.

“바보야! 그러고도 음식이 넘어 가냐!”

그 순간 엄마의 손이 무늬의 뺨으로 날아들었습니다.

말이면 다 말인 줄 알어! 그따위 소리를 어디서 함부로 지껄엿!”

잠깐 지난 다음에야 무늬는 사태를 알아차렸습니다. 엄마가 이글이글 불길이 타오르는 눈으로 하늬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불에 덴 듯이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하늬도 악을 썼습니다.

엄마는 저 사고뭉치밖에 몰라! 맨날 하늬, 하늬, 하늬. 정말 너무해! 난 뭐야?”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어요.

너무해도 할 수 없어! 너하고 하늬하고는 다르니까. 그러니까 입 다물고 잠자코 있어.”

엄마는 무섭게 무늬를 나무랐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무늬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뒤에서 엄마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어.’

자꾸만 눈물이 흘러 하늘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늬는 너무너무 슬프고 속이 상해서 울고 또 울었어요.

하늬가 그 이상한 병에 걸렸다는 걸 안 뒤부터는 모두들 하늬만 챙기느라 무늬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까지도 말이에요.

무늬는 막내이면서도 어리광 한번 하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엄마는 하늬를 데리고 여기 저기 쫓아다니느라 무늬는 아예 할머니에게 맡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무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할머니 집에서 살아야만 했어요.

도대체 난 뭐야? 하늬는 그렇게 챙기면서 나한테는 왜 그래? 난 주워 왔어!”

가끔 투정이라도 할라치면 엄마는 말하곤 했어요.

“양보는 더 나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언니보다 네가 낫잖니. 그러니까 무늬가 양보하고 언니를 이해해 주렴. 응?”

하도 들어서 이젠 귀에 못이 박혔을 지경입니다.

물론 무늬도 다 알아요. 그래도 가끔씩은 무늬도 제 나이 또래 아이처럼 살고 싶은 것입니다.

##.

며칠이 지났는데도 조가비처럼 꽉 닫힌 무늬의 입은 열리지 않습니다. 하늬도 얄밉고 진우랑 친해지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무늬의 입이 붙어 버린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엄마 때문이에요.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는 엄마는 무늬의 마음이 어떨 거라는 것도 다 알 테지만 무늬를 달래 주지 않는 것입니다.

무늬는 엄마 눈치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방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딸 아직도 마음이 안 풀렸어?”

아빠는 방으로 들어와 무늬를 가만히 안아 주었습니다. 아빠가 아는 체를 하자 무늬는 참고 있던 울음이 넘어왔어요. 무늬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흐느낍니다.

“우리 무늬가 많이 섭섭했나 보네.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라고 그랬던 건데……”

무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합니다.

“알아. 하지만 나도 가끔씩은 엄마 아빠의 사랑이 필요하단 말야.”

“미안하구나. 이젠 더 신경 쓸 게. 무늬야! 내일은 우리 주말 농장에 가자. 바람도 쐬고 기분 전환도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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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네는 농사를 지으려고 주말 농장을 한 게 아니었어요. 하늬와 무늬에게 자연을 배우게 하려고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농사꾼처럼 가꾸지도 못했지요.

자연은 편을 가르지 않나 봅니다. 한참만에 와 본 밭에서는 채소와 잡초가 한데 어우러져 사이좋게 자라고 있습니다. 엄마는 푸름이 짙게 어우러진 밭의 채소들을 어루만지며 대견해 합니다.

“참 신통하지 뭐야. 제대로 보살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잘 자란걸 보면. 무늬야, 배추 솎아다 점심에 겉절이 해 먹자.”

엄마는 배추밭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며 무늬를 부릅니다.

“엄마야!”

배추밭에 있던 무늬가 기겁을 합니다. 엄마 아빠가 눈이 휘둥그래서 달려가고 남의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하늬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런 게 아니구, 이거……”

무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내던진 배추 포기를 가리켰어요.

“배추벌레야. 약을 하지 않았더니 이런 게 다 있네.”

아빠가 배추 잎에 붙어 있던 초록빛 벌레를 찾아 들고는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그러게 벌레가 많네. 배추 맛이라도 보려면 잡아야겠어.”

성한 것이 없을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린 배추와 벌레를 번갈아 쳐다보며 엄마가 말했어요.

“그냥 둡시다. 우리야 꼭 이거 아니라도 사 먹으면 되지만 이 벌레들은 여기 아니면 살 데가 없을 테니.”

아빠는 초록 벌레를 도로 배춧잎 사이에 놓아주고 무늬와 하늬를 돌아보았어요.

“벌레지만 있어야 할 것이기에 하느님이 만드신 거 아니겠어. 그렇다면 하느님 보시기엔 우리 사람이나 이 벌레나 다 똑같은 생명 일거야. 나비가 될 것 같다. 하느님이 당신의 나라를 찾는 이들의 길잡이로 쓰려고 여기에 놓아두신 건지도 모르니까 그냥 두자.”

엄마가 하늬의 어깨에 팔을 걸며 아빠의 말을 받습니다.

“맞아요. 하느님의 뜻을 모르면서 사람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건 옳지 않아요. 사람의 눈에는 필요 없고 하찮아 보여도 꼭 거기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놓아두셨을 거예요”

무늬도 엄마 아빠가 하는 말뜻을 다 알아듣습니다.

장다리꽃 사이로 하얀 나비가 너울너울 날아갑니다. 나비를 따라 하늬가 뽀얀 꽃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글 /정진숙(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