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불편한 진실 - wianbu bulpyeonhan jinsil

전쟁 성노예, 위안부에 대한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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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느끼셨나요?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부끄럽다고 뒤돌아설 단어가 아니기에 직접적으로 써봤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나눠볼 이야기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이하여, 많은 시민단체들과 군 위안부로 피해를 받으셨던 할머니들이 올해에는 반드시 이 문제를 풀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할머니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으며, 지금 할머니들은 어떻게 살고 계신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종군위안부가 맞는 표현인가요? 아님 전쟁 성노예가 맞는 표현인가요?

 역사학계에서 약간의 논쟁이 있었으나, 현재는 종군 위안부로 거의 통일해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종군 위안부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이유는 알아야 하겠죠. 이번에 소개 해드릴 2권의 책은 한국정신대 연구소에서 나온 '할머니 군위안부가 뭐예요?' 라는 책과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책입니다. 이 2권의 책을 보면 알다시피, 그 어떤 책도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로 표현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권의 책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위안부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종군기자, 종군간호부라는 말을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이와 같이 군대와 함께 따라다니는 것을 지칭하여 종군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일본에서 먼저 이렇게 부르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이와같이 부르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종군을 앞에 붙이게 되면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분들은 원해서 끌려갔다는 표현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후 강제종군위안부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이중표현이 된다는 이유로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주로 군위안부라는 표현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안부라는 표현 또한 문제가 있게 되었죠. 바로 영어 번역을 할때 comfrot women(직역하면 위안해주는 여성)이라고 쓰이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보다는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쓰자고 해서 이후에는military sexual slavery(군대 성 노예 제도)라는 표현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보다는 군대 성노예제도라는 표현이 옳다는 것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으나, 이미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이 이미 광범위하게 굳어져버린 바람에 바꾸지 못한 채로 한국에서는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종군 위안부의 명칭은 틀렸다고 제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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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신대와 위안부는 같은 것인가요? 아니면 다른 것인가요?

 정신대와 위안부를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다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여자근로정신대는 군수공장에서 노동을 하기 위해서 동원된 것이며, 반대로 위안부는 전쟁에 끌려가서 성노예가 되었던 여성을 말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본이 군위안부제도를 은폐하기 위해서 여성의 일부는 군수공장으로, 일부는 전쟁터로 내몰았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군 위안부와 정신대를 구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까요? 그 당시 사람들은 대다수 정신대와 위안부라는 것을 모른 체 끌려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70세 이상의 그 당시의 생존자들에게 일제강점기 시대의 정신대와 군 위안부에 대한 인식을 얼마나 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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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도표에 나온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정신대라는 이유로 여성들이 군수산업에 끌려갔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있었으나, 성노예로 팔려갔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전쟁터로 끌려갔던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전쟁터에서 성노예가 될 줄은 모른체 갔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근로정신대로 끌려가서 군수공장에서 일을 했던 할머니들은 과연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았을까요? 작년에 일본 정부는 근로정신대에 대해서는 일부분 인정하고 보상한다고 했습니다. 그 보상금액은 99엔이었습니다. 꽃다운 시절 16-21정도의 여성들이 군수공장에서 일하다가 죽기도하고, 전쟁터로 끌려가서 성노예가 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결과 보상금액은 99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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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안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인가요?

 그 당시 일본군은 군 위안부에 대해서 문서로 남겨 놓은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군인 40명당 1명정도, 혹은 100명당 1명의 군위안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1937-45년 당시 일본군이 약 760만명 정도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안부의 수는 약 8만명에서 28만명 사이로 예측됩니다. 실제로 대다수 학자들은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이 약 20만명정도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조사된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1992년 아시아연대회의가 결성된 이후에야 제대로 된 조사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밝히지 않거나,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는가에 따라 인원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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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정말로 우리나라 할머니들이 이렇게 적게 끌려갔는가 입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해서는 일본이 전쟁이 끝날 때 쯤 자신들의 죄가 드러날까봐 성노예 취급 받던 여성들을 산채로 모두 파묻어버렸습니다.실제로 중국 여기저기서 여성들의 시체가 단체로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군위안부로 피해받은 여성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이것에 대해서 확실히 조사했기에 이렇게 많은 숫자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실제로 조사한 것을 토대로 위안부가 된 원인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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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한국 여성들처럼 군수물자에서 일한다. 혹은 할만한 일거리가 있다는 식으로, 온 여성들이 45%가 되었고,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정도가 45%, 납치나 유괴된 사람이 9%정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는 인도네시아는 네달란드의 식민지엿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와 달리 회유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러나 일반적인 일본의 행동이 사기나 강제에 의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로 여성들이 원해서 스스로 성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 당시에 연행되었던 사람들을 직접 조사하여, 언제 나이때 끌려갔는가를 조사한적이 있었습니다. 이 조사는 충격적이였습니다.175명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 여성들이 20살도 되지 않은 한국여성들이 끌려가서 성노예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여중생,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해서 국민들이 분노하곤 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밝혀진것만 400명의 넘는 20세 이하의 여성들이 그것도 그 당시 초등학생이라고 볼 수 있는 10여명의 여성들이 끌려가서 하루 40명 넘는 군인들에게 치욕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때 이것은 결코 과거의 역사니 우리가 용서해주겠다라고 말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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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나갈 역사는?

 과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종군위안부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가 넘어가면서 많은 역사적인 사실들이 나오자,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자신들이 한 바가 없다. 후진국 여성들이 돈 때문에 자신들이 원해서 참여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의 일본인들은 정부의 말이 사실인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일본인들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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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도표를 보면 알 수 있드시, 현재의 일본인들의 대다수는 오히려 일본인들이 위안부에 대해서 사과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대다수는 전쟁에 대해서 일본은 더 이상 한국에게 사과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아직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보면, 아마도 앞으로는 일본정부가 정말로 사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기대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는 일본 우익단체들입니다. 일본우익단체들은 처음에 한국인 여성들과 일본인 여성들이 1980년대가 지나서 자신들이 위안부였음을 말하면서, 일본정부에게 배상을 요구하자, 전쟁터에서 몸 팔아서 돈 번 사람들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나선다. 자신들이 돈 벌라고 거짓말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누가 돈 없다고, 가족들이, 주변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내가 군위안부를 했다고 하겠습니까? 얼마전 일본 우익단체가 또 다시 8.15 평화시위를 위협하고, 한국정부에게 사죄한 총리에 대해서 위협을 가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소통하는데 가장 큰 적이 되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보지 못한 극단주의자들 때문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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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국 국민의 서명운동과 수요집회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 930회를 맞이한 수요집회, 8월 11일 수요일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위안부로 피해를 받으셨던 할머니들이 모여서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했습니다. 여기에 몇몇 청소년들이 봉사활동으로 왔다고 학교에서 왔다고 하자, 이것을 본 일본네티즌들이 한국에서는 거짓을 조장할려고 청소년을 억지로 집회에 내보낸다는 말도 하기도 했습니다. 참 슬픈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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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만 이러한 모임이 있는 것이 아니죠! 제가 재학중인 대구에도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라는 단체를 통해서 50만명의 서명운동을 했습니다. 대구백화점앞에서 시작한 서명운동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많은 서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습니다. 다만, 서명해달라고 할 때, 내가 성노예 된 것도 아닌데 무슨상관이야하는 눈빛으로 지나간 수많은 대구 시민들에게 야속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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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사진은 군위안부로 피해를 받으셨던 심달연할머니입니다. 할머니께서는 대구에 살고계시면서 대구에 있는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참여하시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합니다. 얼마 전 생일을 맞이하셔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사진입니다. 앞으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음으로써, 정말로 이 한을 푸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본 글은 '통계청 블로그 기자단'의 기사로 통계청의 공식입장과 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