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식용유 비누 설거지 - pye sig-yong-yu binu seolgeoji

누가 뭐래도 튀김은 맛있다. 케첩은 지우개를 찍어 먹어도 맛있고,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 그러니 감자를 튀겨 케첩에 찍어 먹는다면? 천국의 맛이다. 하지만 그 뒤는? 집에서 튀김을 해 먹다간 천국의 맛 다음에 밀려오는 지옥의 고통을 맛봐야 한다. 남은 폐식용유 처리 말이다. 보관, 방치, 버리기 그 무엇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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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에서 흰 연분홍 연꽃이 피어나듯, 이걸 되살려 그 강렬했던 그 튀김의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폐식용유 비누 만들기가 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실행할 여유와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오랜 망설임 끝에 드디어 실행했고, 그 결과를 여기에 남긴다. 망설임이 길었던 만큼 나름 준비도 꽤 했었다. 튀김만큼 간편하고 아름다운 비누의 제조를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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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도이니만큼 향이나 색 없이 그냥 폐식용유와 가성소다만 사용한 민자 기본형 비누를 먼저 만들어봤고, 자만 팽배한 나는 파는 비누같이 향과 무늬가 있는 고급형 비누도 만들어 봤다. 먼저 기본형부터 시작이다.

먼저 폐식용유, 새로 들였던 튀김기 덕에 폐식용유는 차고 넘쳤다. 혹시 폐식용유 모아 놓은 것은 없는데, 폐식용유 비누는 꼭 만들어야겠다면, 잘 됐다. 요즘 감자도 싼데 이 기회에 케첩 찍은 햇감자 튀김 실컷 먹고 남은 식용유를 써볼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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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식용유에서 고체 찌꺼기를 걸러낼 것이 필요하다. 난 여과지를 사용했다. 저렴하고 쓰임새도 많다. 없으면 면보나 구멍이 아주 미세한 체가 있어도 좋다. 이것저것 다 없으면 폐식용유를 잠시 둬 가라앉힌 다음에 위층만 살살 따라 사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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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성소다가 필요하다. 이건 필수고 동네 마트나 문구점에서는 팔지 않는다. 가성소다 파는 곳, 내가 이용했던 곳의 주소를 남긴다. 아, 화학물질 관리법에 의해 유해화학물질 시약 판매 시 본인인증이 필요하다. 그대 등급이 미성년이시라면 보호자의 도움이 꼭 필요하단 얘기다.

다음으로 기름과 가성소다 등을 계량할 수저와 그릇이 필요하다. 가성소다를 물에 타 용액을 만들 그릇, 폐식용유를 담아 중탕할 그릇도 필요하다. 폐식용유를 담을 그릇은 나중에 가성소다 용액도 넣고 저어줘야 하니 넉넉하게 큰 것으로 준비해야 한다. 온도계가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손대중으로 맞춰도 된다. 정밀 화학 산업은 아니니까. 단, 강염기 약품을 다뤄야 하니 보호 장갑은 꼭 필요하다. 목장갑이나 주방 위생장갑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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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식용유에 가성소다를 섞은 후 저어줄 주걱이나 긴 막대가 필요하다. 이게 가장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자작 교반기를 제작했다. 페인트 믹서기 날을 구입해 드릴에 연결하고, 안 쓰는 작은 테이블에 구멍을 뚫어 고정했다. 이게 나의 킬링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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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걸쭉해진 비누액을 담을 틀이 필요하다. 내가 사용해본 것은 빈 우유팩, 플라스틱 와인 케이스, 두부 한 모 용기, 그리고 기성품으로 나온 실리콘 몰드 + 나무 상자의 짝이었다. 모양만 잘 잡아 준다면 뭐든 상관없고, 굳은 비누를 빼 내기 위해서는 찢어 내거나 약간 움직일 수 있는 용기가 좋다.

기본형 폐식용유 비누 만들기, 제일 첫 단계는 물에 가성소다를 넣어 수산화나트륨 용액 만들기다. 순서가 중요하다. 절대로 가성소다에 물을 넣으면 안 된다. 폭발할 수도 있다. 나는 물 300ml에 가성소다 135g을 넣었다. 이렇게 해 주면 마술처럼 뜨끈뜨끈해진다. 식으라고 그냥 놔둔다. 온도계로 35도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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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소다 용액이 식는 동안 폐식용유 1,000g을 준비한다. 먼저 폐식용유를 여과지로 걸러내고, 35도로 따뜻하게 중탕한다. 둘의 온도를 비슷하게 맞추려는 것인데, 온도계가 없다면 손으로 그릇을 만져 체온과 비슷하다 느껴지면 된다. 다만 손 데지 않게 주의해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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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소다 용액과 폐식용유 온도가 35도 정도로 비슷해지면, 가성소다수를 폐식용유 그릇에 붓는다. 그리고는 주걱으로 저어줘야 한다. 하염없이. 여기서 진짜 문제는 이 과정이 꽤 힘들고 오래 걸리는데, 정확히 얼마나 걸리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별 수없이 비누액의 상태를 봐가며 계속해서 저어줘야 한다. 나는 자작 교반기에게 맡기고는 가끔씩 눈으로 확인만 해줬다. 너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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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저어주다 보면 비누액이 걸쭉해지며 주걱이 지나간 자리가 보이게 된다. 이걸 트레이스라고 한다는데, 대충 진한 수프 정도의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면 비누액이 완성된 것이다.

완성된 비누액을 비누 틀에 넣어준다. 나는 우유팩과 두부 한 모 팩, 그리고 플라스틱 와인 케이스를 이용해봤다. 최소한 하루 이상 두고 말리는데, 첫날은 온도 유지를 위해 보온 상자를 이용하는 것이 좋단다. 내 경우는 날이 춥질 않았고, 보온하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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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정도 지나니 잘 굳어 보였다. 틀에서 꺼내 중식도를 이용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시장 생활용품점에서 사온 진저맨 틀도 찍어봤다. 더 폼 나게 자신의 스탬프를 찍어주는 사람들도 있더라. 폐식용유와는 아주 다른 뽀얀 비누가 만들어졌다. pH는 10, 적당했다. 지옥 수렁에서 피어오른 두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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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형 비누를 사용해보니 거품도 잘나고 깨끗하고 잘 씻어진다. 씻은 뒤 뭔가 남는 것 없이, 비누가 순하게 잘 씻겨 내려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사실 만들기 전에는 진짜 비누가 될까 걱정도 됐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건 냄새였다. 뭔가 그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누 특유의 냄새, 싫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딱히 좋다고는 못하겠다. 그래서 바로 고급형 비누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향과 무늬를 넣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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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향에 예쁜 무늬가 있는 고급형 비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형 비누 만들기 재료들에 옥사이드 색소와 향료가 추가로 필요하다. 이것들은 인터넷으로 많이 팔고 있으니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옥사이드 색소는 식용유에 개어 써야 하니, 색소를 개어 넣기 위해 식용유, 실리콘 주걱, 그리고 팔레트 판으로 쓸 적당한 판이 있어야 한다.

우선 옥사이드 분말을 식용유에 개서 색소를 준비해둔다. 미리 만들어 두는 이유는 색이 잘 안정되도록 숙성 시간을 좀 두기 위해서였다. 색소는 시원하게 파란색과 흰색을 선택했다. 하지만 적용해본 결과 흰색은 별 효과가 없더라. 아마도 사용하지 않은 순 오일을 쓰지 않는다면 흰색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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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액을 만드는 과정은 기본형과 똑같다. 이번에는 두 종류 무늬를 만들어보기 위해 양을 좀 늘렸다. 폐식용유 1,620g에 가성소다 219g, 그리고 물 486ml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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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랑 자작 교반기에 노동을 맡기고 여유를 부리던 중, 급하게 비누액이 굳어지며 트레이스가 왔다. 정확한 시간은 재보지 못했지만, 채 10분이나 걸렸을까? 깜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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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교반기에서 비누액 통을 빼 내고는 급하게 향료부터 투하, 20ml를 넣었다. 잠시 저어서 향료를 섞어주고는 바로 두 그릇으로 나눠 담았다. 파란색과 흰색 비누액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비누액이 자꾸만 굳어져 마음이 급했다.

한 쪽은 파란색, 다른 쪽은 흰색 색소를 넣어 저어줬다. 굳어지는 비누액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색소는 잘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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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예술적 상상력을 한껏 펼쳐볼 차례다. 비누틀(실리콘 몰드 + 나무틀)에 흰색 한번, 파란색 한번, 그리고는 다시 흰색 덧대고 파란색 덮고, 김밥 만들 듯이 잘랐을 때 무늬를 상상하며 비누액을 비누틀에 나눠가며 붓는다. 나는 흰색과 파란색 반반이 한 통, 그리고 나머지 한 통은 옷걸이 철사로 휘휘 흔들어 파란 물결무늬를 만들어봤다. 맨 위층에도 물결 모양을 더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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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택배 온 스티로폼 상자를 이용해 하루 저녁 보온을 해줬다. 이틀 정도 말린 후 몰드에서 꺼내 적당한 두께(3~5cm)로 잘라줬다. 이번에는 깔끔하게 자르기 위해 안 쓰는 MDF 판과 기타줄을 이용해 자작 비누 커터기를 만들어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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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기본형에 비해 모양도 더 있어 보였고, 거기다 비누 향이 그냥 파는 비누 수준이다. 이거였다. 지옥 수렁에서 피어오른 연꽃 송이들, 그 더럽던 폐식용유가 되살아났다. 그것도 제 몸 하나가 아니라 남도 깨끗하게 해줄 향비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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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과정들이 막상 해보면 사실 재미가 꽤 쏠쏠하다. 하지만 바쁘고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날 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자작 교반기를 이용해 그나마 편하게 했지만, 많이 걸리면 1시간도 더 걸릴 수 있는 비누액 저어주기는 정말 괴로울 수 있다.

여유가 없어 폐식용유 재활용은 못하겠다면, 하지만 튀김은 먹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이 잘 만들어 놓은 폐식용유 재활용 비누를 사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 급식으로 단 한 번만 사용해 깨끗한 식용유로, 잘 관리해서 만드는 강청 비누를 써보라. 적어도 나의 튀김 생활로 생긴 폐식용유 대신 다른 폐식용유를 재활용해서 조금이라도 튀김 빚을 갚는 길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강청 비누는 재활용 비누 아닌 다른 친환경 비누들도 있고, 평도 좋다.

아, 그리고 순비누를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겪던 물러짐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방법, 비누 설거지를 위한 수세미 선택, 그리고 비누 친환경성 등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해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