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희 계명대 미대 명예교수(미술사 전공)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1만여 점 되는 것으로 안다. 이곳 역시 수장고가 비좁은 상태다. 더욱이 이건희컬렉션은 총 2만3천여 점인데, 어떻게 서울 송현동에만 수장할 것인가. 이건희컬렉션은 조선시대, 근·현대, 외국 등 작품이 다양하다. 현재로서 이건희기증품을 전시할 이건희 기증관은 가칭이다. 이건희미술관Ⅰ·Ⅱ·Ⅲ 등으로 해 시대별로 수장센터를 지역에 더 지어야 한다"면서 "특히 근대미술의 발상지가 대구라는 점에서 국립근대미술관과 함께 대구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구시와 삼성가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드러냈다. 이미애 미술평론가는 "문화예술 도시로 자랑해온 대구는 옛 제일모직 부지에 삼성창조경제단지를 조성하고 삼성의 산업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삼성가도 그 부지에 오페라하우스만 건립해 대구에 기증했지만 삼성을 짝사랑하는 대구시민의 성에 차지 않는다. 세계 최대의 컬렉션 재벌 구겐하임가처럼 앞으로 삼성도 통 크게 삼성의 모태인 대구에 시각예술 관련 시설 건립에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대구시청 별관(옛 경북도청)에 2천500억원을 들여 이건희미술센터를 짓겠다고 한 대구시도 이건희미술관 유치 무산에 따른 후속 조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박희준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경북도청 후적지에 문화예술 관련 시설물을 건립한다는 건 분명하다. 문체부에 국립현대미술관 수장센터, 국립근대미술관 그리고 뮤지컬센터 등의 국립시설물을 유치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도록 요청해 놓았다"면서 "문체부도 이에 긍정적으로 답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일 송현동 일대 대한항공 부지 3만7천141㎡ 중 9천787㎡를 기증관 건립부지로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달 중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작해 내년 하반기 국제설계 공모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다. 완공 및 개관은 2027년이다. 박진관기자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 개막 첫날인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사전예약자들이 관람을 하고 있다. 2021.7.21 [email protected]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지난 21일부터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이 기증한 소장품 전시를 시작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도 뜨거운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당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증자에 대한 예우의 일환으로 전시회 시작에 앞서 이달 20일에 유족들에게 특별 관람할 기회를 제공했으나 홍 여사와 이 이사장은 이를 고사하고 일반 관람 일에 맞춰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계와 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홍 전 관장은 전시관 벽에 적혀 있는 이 회장의 이름을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며 감회에 젖었다. 특히 이 회장과 같이 처음 수집한 작품으로 알려진 '인왕제색도' 앞에서는 오랜 시간 머물며 회고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술계 관계자에 따르면 홍 여사는 전시회를 보고 난 뒤 "소중한 문화유산을 국민에게 돌려 드려야 한다는 고인의 뜻이 실현돼 기쁘다"며 "많은 국민이 이 작품들을 보시면서, 코로나로 힘들고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7월 29일 삼성 일가가 이건희 회장과 함께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을 참관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피카소가 특유의 화풍으로 그린 도예 그림들. 지난달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의 서양근대 작품들 가운데 일부다. 그림은 알아보고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성격과 가격이 달라진다. 미술품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시장 재화이기 때문이다.지난달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생 모은 2만점 넘는 미술 명품을 국가에 전격 기증한 것은 미술사를 넘어 시각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뒤바꾸는 큰 사건이 됐다. 삼성가 컬렉션은 지난 수십년간 한국 미술판에서 수집과 유행에 있어 일종의 기준이 돼왔는데, 그 지침이 된 명품들을 대부분 국가에 내놓은 것은, 그 자체로 극적인 반전이자 미술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이건희 컬렉션이라 이름 붙여진 수집품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불과 13년 전이다. 2007년 11월 삼성가에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홍라희 당시 리움 관장과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삼성가 사람들이 2002~2003년 거액의 비자금으로 로이 릭턴스타인의 팝아트 작품 <행복한 눈물> 등 세계적 대가들의 현대미술품을 무더기 구입했다고 폭로했다. 이듬해 1월 말 특검이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창고를 압수수색하면서 수천점의 작품 중 일부가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삼성가 미술품 하면 비자금과 <행복한 눈물>을 떠올리곤 한다.마크 로스코가 1956년 그린 색면추상 그림 <무제>. 로스코의 작품 가운데 손꼽히는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 각별히 아꼈던 작품으로 지난달 국립기관 기증 컬렉션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명품주의’로 유명한 이건희 컬렉션은 1970년대 경영수업 시절 형성됐다. 청자·고서화에 밝은 부친 이병철 선대 회장과 부르델 조각과 아르데코 공예 애호가였던 장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매년 무료 전시로 대중에게 공개한 간송과 달리 그의 컬렉션은 대중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었다. <행복한 눈물>처럼 음습한 밀실 비자금 비리 의혹을 동반했기에 국민의 존경을 전혀 받지 못하고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인 존재였다.이 회장은 주로 도자기 등 고미술품에 밝고, 현대미술품 수집은 부인 홍라희 관장이 주도한 것으로 미술판에 알려졌지만, 당시 수집에 관여했던 삼성가 지인들이 털어놓는 실상은 다르다. 이 회장은 실제로 고미술 중심이었던 선대 회장의 컬렉션 관행을 서구미술품과 근대미술품으로 방향을 돌렸다. 한국 조각 전문가들조차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가짜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프랑스 조각 거장 로댕의 사후 에디션 작품 <지옥의 문>이 생전 제작품과 동급의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회장이 되기도 전인 1984년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프랑스 정부 관계자와 담판해 국내에 로댕의 에디션을 처음 들여왔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거지를 둔 세계적인 화랑 거상 바이엘러를 여러 차례 직접 찾아가 마크 로스코의 1950~60년대 색면 추상화 구매를 직접 흥정하고 최고의 명품들을 줄줄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등 근대 대가들의 작품 수집을 본격화하면서 그들의 대표작을 모조리 리움 소장품으로 삼았다. 1980년대 말 개관한 호암갤러리에 당시 무명이던 한국화가 박대성,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전시를 과감하게 열고 작품들을 수집하는 파격을 구사했던 당사자다. 그의 안목에는 폄하할 수 없는 내공이 있다. 수집품이 당대 거장의 최고 대표작인지, 한국에, 삼성가에 계속 남겨둘 가치가 있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던 그의 수집관은 이 컬렉션이 한국에 존속돼야 할 명분을 제공한다.1980~90년대 민중미술로 불린 사회비판적 리얼리즘 진영에서 활약했던 신학철 작가의 1983년 대작 <한국근대사-종합>. 이건희 컬렉션의 방대한 수집 범위를 증거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건축물은 크게 3동으로, 각각 세계적인 특급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의 작품이다. 그러나 직접 건물을 짓는 시공단계까지 관여했던 인물은 마리오 보타이며 나머지 인물들은 건물의 설계만 했다. 유별난 개성이 제각각인 특급 건축가 3인이 드림팀을 이룬 듯한 대한민국의 삼성이 아니고선 그 누구도 감히 꿈조차 꾸지 못할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 그런데 건축가들의 명성이 너무 지나쳤는지 각 건물 간의 조화가 부족하다는 평이 좀 있다[10]. 그래도 2013년에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 11위로 선정되었다. 4. 소장품[편집]한국 사립 미술관으로서는 최고 컬렉션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민간이 운영하는 사립 미술관에 국보만 36개, 보물이 96개. 한국의 어느 미술관에도 이 정도 숫자를 자랑하는 곳은 없다. 전국의 국립박물관 중에서 신라 시대의 문화재들을 대량 소장한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보 13점, 보물 30점을 소장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신라시대의 문화재라고 해서 모두 경주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은 감안하더라도[11] 그래도 국립경주박물관의 소장 비율이 높은 편인 건 사실인데, 일개 사립 미술관이 그보다 국보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4.1. 미술품 기증[편집]2021년 04월 28일에 발표된 故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 발표에서 23,000점에 달하는 ‘이건희 컬렉션’을 사회에 환원하여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밝혔다. 구체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보 14건, 보물 46건을 포함한 2만 1693점,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 제주도의 이중섭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의 5개 지역미술관에 102점으로 총 23283건이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고미술품은 절반 이상이 서적으로 초조대장경이나 석보상절 등 귀중본도 있지만 퇴계선생문집, 주역 등 비교적 흔한 서적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5. 나무위키에 문서가 생성된 소장품 목록[편집]자세한 내용은 분류: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문서 를 의 번 문단을 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관람 안내[편집]한강진역에 나와서 꼼데가르송 건물 앞 골목길로 올라가면 된다. 가는 길에 리움이라고 안내판이 있어서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 매주 월요일과 설, 추석 연휴, 1월 1일은 휴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 ~ 오후 6시까지이다. 7. 관람시 유의 사항[편집]로비는 B1. 지하 1층이 로비이다. 엘리베이터 탈 때 헷갈리지 마시길. 8. 기타[편집]
[1] 한남동 747-18[2] 2020년 2월부터 2021년 10월 7일까지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임시 휴관한 바 있다.[3] 매일 18시에 티켓이 오픈된다.[4] 공식 홈페이지[5] 여담이지만 에버랜드에 있는 호암미술관의 호암도 이병철의 호이다.[6]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으로 삼성그룹 핵심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시점이었다.[7] 응용미술학 전공자인 어머니 홍라희의 미술적 DNA를 이어받은 덕인지 이서현 역시 미술 전공자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미술을 전공했고 대학에서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8] 오죽하면 이병철이 회장인 시기에 도굴하면 일단 삼성 쪽에 연락해보라라는 속설이 돌 만큼 미친듯이 고미술품을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문제는 도굴품이나 도난품의 원주인이 뒤늦게 알고선 내놓으라고 하면 배째라로 일관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 실제 이런 식으로 분쟁이 은근히 있었으나 소리소문 없이 묻혀지곤 했다. 한국 미술계에서 이병철이 없었으면 그나마 수많은 한국 고미술품은 일본으로 팔려나갔을 거라는 점에서 이병철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과정에서 깨끗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사건사고가 있어도 한국 미술계에서 삼성가의 위치는 부동의 넘버원이라는 것도 씁쓸한 게 한국 미술계의 현실이기도 하다.[9] 오늘날의 리움이 있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생애 말년의 이병철은 미대생 출신의 막내 며느리 홍라희를 인사동 고미술품 상점으로 보내서 골동품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매일 시켰다고 한다. 이 당시 매일 사온 골동품의 가격은 1일 상한선 10만원. 2020년대의 시세로 보면 매일 500만원, 한 주에 대략 3,000만원(!!!) 이상의 고미술품을 사들였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현재 호암미술관이나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미술품 중 다수는 홍라희가 직접 사온 물건들인 셈이다.[10] 그도 그럴게 상기했듯 시공단계에 관여한 사람은 마리오 보타뿐이고, 한번도 만나지 않다가 시공 당일날에야 서로를 만나고 자료를 교환했기에 애초에 조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들도 시공하는 날에 서로의 건축 디자인보고 하도 조화롭지 않은게 웃겨서 서로 보고 웃었다고 한다.[11] 옮길 수 없는 문화재나 혹은 석굴암 같이 원래 위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경우는 여전히 다수가 박물관 바깥 경주 야외에 있으며,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청와대 등 타지에 유출되어있는 문화재도 많다. 심지어 북한을 비롯해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해외에 유출되어 전시 중인 신라 문화재도 꽤 있다. 물론 신라 외 다른 시대 문화재들도 마찬가지.[12] 주기적으로 전시품을 교체하는데 그 전에 일반에 공개된 것보다 더 좋은 유물이 슬그머니 끼어들어 올 때가 있다. 결론적으로 제일 좋은 작품만 내놓은 게 아니다! 얼마나 더 좋은 걸작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13] 문서 개요에 있는 사진의 거미 모양 조각상. 연작이어서 라움미술관 외에도 전 세계 곳곳에 비슷하게 생긴 조각상이 있다.[14] 문제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비수도권도 배려하겠다', '공모전으로 공정하게 하겠다.' 하여 서울/경기/대구/부산이 유치전을 벌였다가 서울로 다시 결정되면서 타 지자체의 불만과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나온다. 장관 본인이 목포 출신이라 대구, 부산에 불리하게 한 것이 아니냐, 대통령선거 뒤에 다시 결정해야 한다, 각 지자체에 미술품을 나누어야 한다 등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15] 그러나 기증자 혹은 유족이 이미 기관을 지정하여 기증했다면 국가라도 그것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된 가야의 기마인물형 각배의 경우, 가야의 유물이기에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누차 이전 요청을 했음에도 결국 기증자의 의사를 고려하여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예. 국립이건희미술관이 지어져도 유물의 관리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계속 해야 하고, 따라서 새로 지어지는 미술관은 두 기관의 분관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미 예술계나 박물관계에서는 지방의 유치가 불가능하고 서울 강북지역이 될 것이라고 유력하고 보고 있었다.[16] 2021년 연말까지는 기획전도 무료로 운영한다.[17]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정 돈이 아깝다면 도전해보자. 언덕과 골목길만 잘 극복하면 가능하다..[18] 코로나로 전면 사전예약제로 전환되었다. 하루 600명으로 인원제한. 사람은 적게 오지만 티켓팅이 엄청 어려워졌다..[19] 초등생 이상 대여가 가능하며 기기는 갤럭시 S21[20] 꼭 둘 이상 온 사람들이 없어도 되겠지 하면서 안가지고 그냥 가는데 곧 작품이 의미를 알 수가 없어 멀뚱멀뚱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두 케이스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가지고 가길 바란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설명도 없이 그냥 다니는건 뭐야..[21] 2021년 11월 기준 별도공지 시까지 무료운영 중이다. 여권, 주민등록증 등을 맡겨야 한다.[22] 데스크에 가방을 보여주며 내부반입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부를 말해준다. 옆가방은 허용되는 정도.[23] 일반 관람객에게는 전시물 터치를 극도로 제한하지만 초청 받은 외국 협력업체 임원에게는 미술품을 개방하는 2가지의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로,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에게 주의를 주지 않는 미술관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미술품은 인쇄물처럼 망가지면 교체할 수 있는 그런 물품이 아니다. 단 하나만 존재하거나, 에디션이 제한된 물건이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들의 행동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그 관람객들의 행동으로 인해 작품이 손상될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다가 옷깃이 회화 표면에 스쳐 물감 부스러기가 떨어지거나, 사진 플래시의 광선 때문에 변색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린아이의 경우 미술관에서 떠들거나 뛰어다니기도 한다. 이 경우 작품을 건드려 깨뜨리거나 찢어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뺑소니 야외에 설치되는 걸 고려하고 만든 쇠나 돌로 된 조각 작품이면 모를까, 회화나 석고, 청동 조각품은 생각보다 쉽게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으로 손상된다. 심지어 입에서 나오는 날숨으로도 조금씩 손상된다. 당연히 불특정 다수 대상으로는 어느 정도 행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내빈객에게 접대를 할때 소장품을 드러내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런 만찬은 해외 협력업체 '임원'이나 장관급 이상 국가 정상을 대상으로 한다. 이 경우 불특정 다수가 아니고 초대받은 내빈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느정도 통제가 된다. 만찬장에서 돌아다니거나 개념없이 작품에 손을 대는 손님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문화재나 미술품을 가지고 외교나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애물단지처럼 아무도 못 보게 막는게 아니라, 이득을 줄 사람에게는 드러내고 자랑하라고 있는 게 문화재나 미술품이라는 말이다. 유홍준 교수의 경우 문화재나 미술품을 가지고 이렇게 외교나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24] 코로나로 인해 도슨트 잠정 중단[25] 흔히 구속으로 알려졌으나 불구속 기소다.[26] 동서양을 막론하고 규모 있는 기업 소유주들이 취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80년대 일본과 홍콩의 부호들이 경쟁적으로 전세계의 미술품들을 수집했고, 90년 후반부터 08년까지 미국 부자들이 상당히 많은 미술품을 수집했다. 투자 면에서 미술품은 훌륭한데 훼손되지 않는 이상 계속 가치는 올라가니까 경제적으로 이득이고, 작품에 따라 크기가 작은 경우 세금 추적 회피나 뇌물용으로도 좋다. 물론, 고상한 취미로 순수한 의도에서 미술품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괜히 재벌가의 사모님들이 미술관 관장을 하는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