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Show 자료목록 전체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분류기호 도서명(국명) 도서명(한자) 발행년도 발행인 발행처 - 105-988-001 김해김씨(삼현파집의공)세보 金海金氏(三賢派執義公)世譜 1988 金熙權 謹書 發行場所未詳 030-989-001 김해김씨삼현파가승보( 전) 金海金氏三賢派家乘譜 (全) 1989 金容善 서울 107-929-002 김해김씨옥산세가선원보감 金海金氏王山世家璿源譜監 1929 宗中譜所 함북회령 072-000-003 김해김씨세보 金海金氏世譜 著者未詳 發行場所未詳 109-941-001 김해김씨가승보 金海 gamunjokbo.net Title Also Known As: 金海金氏金寧君(京派) 密直公孫家乘譜|Gimhae Gim Ssi Gimnyeonggun(Gyeong pa) Miljikgongson Gaseungbo Statement of Responsibility: 김종성金鍾聲 편집 Format: Books/Monographs/Book on Film Publication: 솔트레이크 : 유타 계보 협회 촬영, 1986년 Physical: 마이크로필름 규격 1통 : 자손록, 지도, 초상화 ; 35mm NotesRecords of Korea Collection of Genealogies are available online , click here. 국립중앙도서관 김해김씨밀직공파가승보소, 1984년 발행. 원시조 김수로金首露, 시조 목경牧卿의 자손록. Genealogy of Miljikgongson, a sub-branch of the Gim family of Gimhae to 1984. SubjectsLocation CopiesCall NumberLocationCollection/ShelfAvailabilityCall Number{{copy.call_number}} Collection/Shelf{{copy.collection}} {{copy.shelf}} High Density: {{copy.hd_shelf}}, {{copy.hd_shelfmark}} Availability{{copy.availability}} Page of {{film_note_page_count}} Film/Digital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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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ㆍ삼현파(三賢派) 휘 관(管), 고려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다. 절효공 극일·탁영 일손·삼족당 대유 등 3현(三賢)이 배출되어 삼현파라고도 부른다. 후손은 청도에 많이 산다. 1세 관(管)-2세 문숙(文淑)-3세 항(伉)-4세 서(湑) 8세 대유(大有:三足堂)·일손(馹孫) 군수공, 집의공, 한림공, 진사공, 녹사공, 진의공은 모두 판도판서공파의 지파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역사[편집]가락국의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흥무대왕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한다.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의 아홉 명의 촌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주색 밧줄에 붉은 보자기에 쌓인 금합이 구지봉에 강림하고 여섯개 황금 알 중에 제일 먼저 나온 아이를 수로(首露)라 하고 가락국의 왕이 되니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다. 이후 후손들이 가락국이 세워진 김해를 본관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관가야는 5세기 광개토태왕의 남정 이후 급속히 쇠퇴하게 된다. 532년(법흥왕 19년) 신라에 투항하여 진골 귀족이 된 가락국의 마지막 왕으로 김유신의 증조부가 되는 구형왕(仇衡王)은 신라에 투항함으로써 상등의 작위를 받고, 금관국을 식읍으로 받았으며. 그의 세 아들 중 차남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장군이 되어 관산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최고의 관등인 각간(角干)을 지냈고, 신라의 한강유역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백제와 여려번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대양주도독(大梁州都督)을 지냈고, 고구려 낭비성을 함락시키고 각간(角干)으로 제수 받았으며, 김서현의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혼인하여 문명왕후(文明王后)가 되었다.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金庾信)은 무열왕과 함께 삼국통일의 대업(大業)을 달성한 명장(名將)으로 무열왕의 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했으며,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사후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김해김씨는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해 왔다. 이런 신김씨의 위세가 쇠퇴한 계기는 780년 혜공왕이 피살당하는 것으로 무열왕계 왕통이 단절되고 선덕왕의 내물왕계가 왕위를 잇게 되면서부터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도 다시금 경원 당하면서 심지어 6두품으로 추락했다.[1][2] 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金商佐)가 왕건에게 위탁해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올른 이래 그 후손들이 문무 명신을 배출한 삼한갑족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게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으며 무오사화(戊午士禍)[3][4]를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에 휘말려 쇠락을 면치 못했다. 김희철(金希哲)의 딸이 선조(宣祖)의 후궁 공빈 김씨(恭嬪 金氏)가 되면서 김희철은 국구(國舅)로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고, 아들 광해군(光海君)이 왕으로 즉위한 후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다. 역대 정승에서도 숙종조의 김우항(金宇抗) 한 사람뿐이었다. 조선시대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승이었다. 본관[편집]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의 지명이다.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이 되었고,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을 통합하였다. 세계도[편집]
분파[편집]김해김씨는 신라김씨의 알지계(閼智系)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특히 김해김씨는 족세(族勢)가 크게 번창해짐에 따라 148여파로 분파(分派) 되었다. 그 중 직계종파는 김목경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익경을 파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있다. 여기에 경파, 사군파, 삼현파마다 각각 세부적인 인물을 중조로 하여 총 24개의 공파로 구분되어 있는 등 계보가 복잡하다.
항렬자[편집]
과거 급제자[편집]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 인물[편집]신라[편집]
고려[편집]
조선[편집]
일제강점기[편집]
대한민국[편집]
사당[편집]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신라[편집]
조선[편집]
인구[편집]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며,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41.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서울 81만 5천 783명, 부산 40만 7천 41명, 대구 19만 9천 252명, 인천 20만 7천 736명, 광주 14만 8천 736명, 대전 9만 6천 887명, 울산 10만 4천 627명, 경기 71만 8천 661명, 강원 10만 7천 612명, 충북 8만 6천 978명, 충남 14만 151명, 전북 17만 3천 712명, 전남 26만 8천 525명, 경북 23만 7천 826명, 경남 35만 12명, 제주 6만 1천 395명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구분[편집]신라계 김해 김씨는 김녕 김씨라고 하여 가야계 김해 김씨와 구분한다. 또는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라고 한다. 분가[편집]
분적설[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김해김씨 몇명?실제 사람 수로 보면 '경주' 본관을 가진 인구가 482만 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 '김해'를 본관으로 한 43개 성씨가 449만 명으로 뒤를 잇는다. 성씨와 본관을 합쳐서 살펴보면 '김해 김씨'가 413만 명으로 11명 중 1명꼴(9.0%)로 제일 많다.
김씨 몇명?김씨는 무려 약 1,070만여명으로 남한의 인구 5명 중 1명이 김씨이다.
왜 김씨가 많은가?당시 김씨를 채택한 양민이나 노비가 많았다고 한다. 가장 많은 성에 편승해야 티가 덜 났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만 해도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 성씨를 가졌다.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뒤 후기로 갈수록 성씨를 '스스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김해김씨 삼현파 몇대손?블로그 주인인 나 또한, 김해김씨 삼현파 72대손으로 알고 있었지만, 72 세손인 것을 이 항렬표를 보고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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