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 - beteunam iju yeoseong poghaeng sageon

“일부러 한국말 못 하는 척 화를 돋워서 맞은 다음 영상을 찍었겠지. 계획적인 쇼다”
“피해자도 이혼하고 난 뒤 베트남으로 다시 추방시켜라.”

베트남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을 두고 관련 온라인 기사들에 피해 여성을 비방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베트남 여성 폭행 사건의 피해자에게 한국 국적을 주지 말라’는 청원글도 올라왔다.

사건 초기만 해도 남편에 대한 공분과 더불어 ‘매맞는 이주 여성들’이 주된 문제로 환기됐다. 불과 며칠만에 여론의 초점이 옮겨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 - beteunam iju yeoseong poghaeng sageon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 - beteunam iju yeoseong poghaeng sageon

지난 8일과 10일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각각 올라온 청원글. 불과 3일만에 폭행 가해자에서 피해자를 지탄하는 것으로 여론이 바뀌었다. [사진 청와대 게시판 캡처]

온라인 뒤덮은 ‘불륜’ 보도…가려진 폭행 본질

발단은 남편 김모(36)씨가 피해자 A씨와 내연 관계였다는 보도가 나온면서다. 전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김씨는 A씨와 결혼이 세 번째였다. 두 사람은 5년 전 만나 교제를 시작했는데, 아직 김씨는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을 김씨의 전 부인이라 지칭한 여성이 A씨를 저격하는 글을 올리며 파장은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사생활 이슈로 사건의 본질이 가려지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어린아이가 보는 앞에서 무자비하게 아내를 폭행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때린 남편의 폭력은 어느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과거가 좋지 않은 사람은 맞아도 된다는 식의 논리가 본질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의 이현서 변호사는 “확인되지 않은 글로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비난이 가해지는 상황”이라며 “백번 양보해 불륜이 맞다고 할지라도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 노렸다?…현실은 쫓겨날까 이혼 못해

해당 여성이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계획적으로 폭력을 유도한 게 아니냐는 근거 없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이는 A씨를 넘어 베트남 여성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지에는 ‘베트남 여자들은 시집오면 몇 년 살다가 국적 취득해주면 동거하고 바람난다’며 이주 여성 전체를 폄하하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남편에게 폭력을 유도해 계획적으로 이혼한 뒤 국적을 취득하는 게 용이할까. 전문가들은 “실상은 정 반대”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결혼이주여성 중 42%가 가정폭력을 경험했고, 이 중 31%가량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 - beteunam iju yeoseong poghaeng sageon

베트남 이주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한국인 남편. [뉴스1]

이는 남편의 도움 없이는 체류가 연장되거나 귀화하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난 2011년 결혼여성의 체류기간 연장 때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서 제출 제도를 폐지했다. 이주 여성들이 남편에게 종속되면서 폭행을 참고 사는 상황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후 문서 제출은 없어졌어도, 여전히 남편이 동행하지 않거나 등본이 없으면 체류 연장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현서 변호사는 “많은 사건을 다뤄보면 대다수의 이주 여성들이 악의적으로 사건을 기획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며 “오히려 가정폭력 피해를 입어도 이를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도망간 신부…위장결혼 그늘도 존재하는 건 사실"

물론 이주 여성이 항상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국제 결혼의 이면에는 피해를 당한 한국인 남편들도 존재한다. 중개업체를 통해 수천만원을 들여 결혼을 했는데 몇 달만에 신부가 도망가버린 사례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상을 단편적으로 보고 이주 여성 전체를 매도하는 형태의 비난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성회 대표는 “베트남 등 해외 이주 여성들이 실상을 모르고 결혼했다가 가정 폭력을 겪고 놀라서 서둘러 이혼하거나, 한국의 법을 잘 몰라 급하게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관계자는 “이혼에는 다양한 사유가 존재하기 마련”이라며 “특정 국가 이주민들에게만 이혼을 했다고 꽃뱀이라는 식의 손가락질이나 낙인을 찍는 건 그 자체가 편견이며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박사라 기자

■ 기획·영상제작 : 한동희 PD
■ 취재·글 : 오종탁 기자
 

무슨 일이?

지난 7월5일 오후 한 영상이 인터넷에서 퍼져나갔습니다. 2분33초 분량의 영상에는 남성이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 - beteunam iju yeoseong poghaeng sageon
ⓒ 유튜브 '시사저널TV'

영상에는 기저귀를 찬 어린 아이도 등장하는데요. 이날 앞서 오전 8시쯤 전남 영암군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A(30)씨가 남편 B(36)씨로부터 폭행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A씨와 B씨는 바로 영상 속 등장인물들이었는데요. 신고는 A씨의 지인이 했습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폭행은 하루 전인 7월4일 발생했습니다. 남편 B씨는 7월4일 술을 마시고 오후 9시부터 3시간여 동안 자택에서 베트남인 아내 A씨를 주먹과 발, 소주병 등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A씨는 갈비뼈 등이 골절돼 전치 4주 이상의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B씨는 7월5일 오후 8시쯤 경찰 지구대를 찾아 조사 받았습니다. 이어 긴급체포됐습니다. 경찰은 7월7일 B씨에 대해 구속영장도 신청했습니다. 하루 뒤인 7월8일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B씨에 대한 비난세례가 이어지고 엄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습니다. 한국과 경제·문화적으로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는 베트남에서도 논란이 확산됐는데요. 이낙연 국무총리, 민갑룡 경찰청장은 베트남 공안장관을 만나 유감을 표했습니다. 이주여성 인권보호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면에 궁금증

남편 B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영상에 나온 B씨는 키가 작고 호리호리하지만 한눈에 봐도 다부진 체구입니다. 머리는 염색했고, 오른쪽 팔에는 문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B씨가 쏟아낸 말들,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뻔뻔한 태도도 태도지만, 발언 내용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 - beteunam iju yeoseong poghaeng sageon
ⓒ 유튜브 '시사저널TV'

아내 A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영상을 보면 B씨에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할 정도로 왜소한 체구입니다. 아내 A씨는 7월8일 베트남 온라인 매체인 '징(Zing)'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이 옛날에 권투를 연습했었다. 남편이 (평소에도) 샌드백 치듯 나를 때렸다." 그런데 한 인터넷 언론은 B씨의 전부인 C씨를 인용해 A씨가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서 의도적,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B씨와 C씨가 혼인관계를 유지했을 당시 A씨가 C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이혼하라고 종용한 점, 한국말로 농담까지 했던 A씨가 갑자기 '나는 한국말 모른다'고 했다는 B씨 발언 등이 이런 의혹을 뒷받침했습니다.

불편한 진실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 - beteunam iju yeoseong poghaeng sageon
ⓒ 시사저널 양선영

베트남 이주 여성 폭행 사건 - beteunam iju yeoseong poghaeng sageon
ⓒ 시사저널 양선영

우리나라로 온 이주 여성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2017년 인권위가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920명에게 물었는데 42.1%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폭행당한 뒤에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30%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영주권 문제 등으로 폭행의 고통을 삼키는 이주여성들이 다른 곳에도 수두룩합니다. 또 국제결혼이 매년 전체 혼인의 7~11%를 차지하면서 문제는 단순한 가정폭력을 넘어 치정, 내국인들과의 갈등 등으로 복잡다단해지고 있습니다. 폭행당한 부인 A씨가 치료받는 병원을 7월8일 찾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A씨를 위로하고 지원을 약속하며 "언론도 2차 피해 우려가 있으니 과도한 취재를 지양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발성 사건과, 이에 대한 정부의 단순한 접근으로 이주여성 폭행 등 다문화 문제가 해결될 리는 만무합니다. 개별 사건의 디테일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감성적 대응을 넘어선 '진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겁니다. 

※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확인하세요.https://youtu.be/Z1BGXhauz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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