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목적 정의 - beob-ui mogjeog jeong-ui

법적 안정성과 법령심사의 태도

• 구분법제시론(저자 : 김의성 법제처 사회문화법제국장)
• 등록일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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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 부서 대변인실

법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이 실현하려는 목적·이념·가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개별적인 법의 목적은 개개의 법의 목적 조항부터 실체적 조항을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모든 법에 공통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현대 법철학의 대명사로 불리는 독일의 법학자 라드부르흐(G. Radbruch)의 견해에 따르면 법의 목적은 정의, 안정성, 합목적성의 3가지 기본가치의 추구라고 볼 수 있다. 법적 안정성이 법이 추구하는 목적이라는 것은 법에 의해서 사회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됨으로써 안심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는 법은 함부로 변경되어서는 안 되고, 법이 시행되면 일정한 기간 존재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법언(法諺)에서도 법적 안정성을 중요시하고, 변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많다. “모든 혁신은 그 유용성에서 오는 이익보다 그 혁신에 의하여 초래되는 혼란이 더 많다(Omnis innovatio plus novitate perturbat quam utilitate prodest)”라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지금은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법이 추구하는 3가지 목적 중에서 법적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법적 안정성이 중요하고, 법은 속성상 보수적이라는 단편적인 지식은 필자의 법령심사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법적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생각은 법령의 내용뿐만 아니라 법령심사의 방식에 있어서도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결국 법령심사를 할 때 보수적인 행태를 보이게 된 것이다. 법령심사를 할 때 선례는 언제나 존중되어야 하고, 새로운 형태의 조문을 접하면 일단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법적 안정성이 법이 추구하는 목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과거의 지식은 이러한 보수적인 법령심사방식을 유지하는 든든한 방패가 되었다. 법제업무의 보수성이 존재론적으로도 당위론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종종 필자의 언행에도 나타나곤 했다. 언젠가 혁신마인드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신 분에게 법제는 원래부터 보수적이고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변화에 부정적인 사회는 환경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고 그것은 그 사회의 쇠퇴 혹은 종말을 초래하게 된다. 역사는 그렇게 강력하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강대국들의 명멸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보편적인 진리임을 보여 준다. 우리는 돌연변이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지금의 다세포생물, 나아가서 인류는 돌연변이의 산물이라고 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물론 이론이 있다). 만약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인류는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고,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대부분의 생물은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진화란 더 완전하거나 균형 잡힌 어떤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합하도록 변화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피해서는 급격한 현대사회의 변화에서 살아남기기 힘들 것이다. 법령심사도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히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는 법제업무가 단순히 환경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을 벗어나서 좀 더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지금도 과거의 선례를 탈피하고 새로운 형태의 법령을 만들어 나가는 방향으로 법령심사 방식이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사회의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우려에서인지 법제처의 한 선배는 앞의 법언을 현대적으로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혁신을 금기시하는 법언도 혁신에 대한 절대적 거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혁신이 가져오는 유용성에 현혹되어 그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혼란이나 불안정성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칫 보수화되기 쉬운 법제업무담당자들이 늘 명심해야 하는 사항일 것이다.” 혹시 나와 같이 법학개론에 설명되어 있는 법적 안정성이 법제업무를 할 때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는 착오에 빠져서 선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를 범하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