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pdf - apeunikka cheongchun-ida pdf

아프니까 청춘이다 pdf - apeunikka cheongchun-ida pdf
신은경 차의과대학교수

얼마 전까지 부모님 질병 얘기

친구들에게서 듣곤 했는데

이젠 본인·남편 아프단 얘기 들려

어떤 병마에도 지배당하지 않고

담담하고 의연하게 살았으면

한 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쓴 같은 이름의 책 때문이다. 취업, 결혼, 성공, 인생 목표. 뭐 하나 분명하지 않은 청춘의 고민에 공감하는 멘토링으로 젊은이들의 공감을 샀다.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은 오늘날도 청춘의 고민은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은 것 같다. 

요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다시 입에 올랐다.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서 하는 얘기다. 처음 7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만 백신이 주어지고, 의료진 등 필수 요원들에게 백신이 배정됐을 때만 해도 백신 주사 후 반응이 그리 다양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후 65세 이상으로, 다시 60세 이상으로, 그리고 사람들 접촉이 많아 백신이 꼭 필요한 젊은 사람들까지 맞게 되자, 반응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처음 시니어들 사이엔 접종 후 딱히 아픈 곳도 없이 거뜬히 지나갔다는 것이 몸이 건강한 증거인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다 생리적 활동이 활발한 젊은이들이 접종 후 발열, 두통, 근육통 등을 호되게 앓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접종 후 반응으로 세대가 대별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젊을수록 백신 후 증상이 심하고, 노인들은 그리 큰 몸살 없이 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코로나 백신 후에 사용하는가 보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니까 노년이다’는 말은 진리처럼 다가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부모님들 얘기였다.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이 한두 분씩 편찮기 시작하고, 입원을 하고, 이후 치매를 겪으시고, 요양원에 가시고, 암 판정을 받으시고, 한 분 두 분 세상을 하직하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는 배우자와 본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혈압, 당뇨 정도는 누구나 한 가지쯤 가지고 있어 약을 상복하고 있고,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친구도 무릎이 혹은 허리가 속을 썩이고 있다. 귀에 이상이 생겨 어지럼증을 겪는 친구도, 심장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도 있다. 

최근 가족이 몇 가지 검사를 하느라 입원을 하게 되어 나는 병원에 며칠 동안 보호자로 있었다. 병원에 와 보면 온 세상이 아픈 사람 투성이다. 이 가운데서도 환자이지만 말도 잘하고 밥도 잘 먹는 사람부터 시작해, 걷기만 해도 뛸 듯이 기쁠 것 같은 사람, 밥만 먹게 되어도 소원이 없는 사람, 눈만 한 번 떠주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 등 상태가 여러 가지다. 이 땅에 나왔다 가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 병원이다.

고통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환자들과 간호하느라 지친 보호자들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병원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든 남이든 누군가 아픈 사람과 관계되어 있어 표정도 우울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한숨을 쉬었다.

병원에 오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인생에 겸손하게 된다. 왜 나만 이런 병이 걸렸는지 억울해할 것도 없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자만할 것도 없어진다. 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몸이 아픈 이 상황 또한 더 좋은 길로 가기 위한 행운의 다리일 수 있고, 쉼 없이 달리던 길에 잠시 쉬어가라는 브레이크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착하게 살았는데, 교회 다니는데, 불심이 깊은데 왜 병이 나고 고난을 받는지 물을 것도 없다. 어느 누구는 심성이 사악하고, 욕심 사나워 악한 일을 밥 먹듯 하는데, 왜 잘 먹고 잘 사느냐고,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불평할 일도 아니다.

저 세상 가는 길에는 세상의 명성도 재물도, 가져갈 주머니가 없다. 자연의 이치대로 땅에서 나왔으니 땅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가난한 자나 부자로 누리고 산 자나 높은 데서 보면 모두 짧은 인생이고 허무한 인생이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면 아픈 대로, 속 썩이면 속 썩는 대로 의연했으면 좋겠다. 어떤 병마나 상황의 변화에도 지배당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아프니까 노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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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역자김난도출판사쌤앤파커스출판일2010. 12. 24.총페이지318쪽추천자추천자 : 손수호(국민일보 논설위원)

도서안내

이틀을 보면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가 생각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책의 내용도 전체적으로 정 시인이 전하는 메시지와 같다. 부제 또한 그러하다. ‘인생 앞에 홀로선 젊은 그대에게’. 표지에는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글을 뽑았다. 이 정도면 알겠다. 젊은이들에게 주는 삶의 지침서다. 약간 삐딱하게 보자면 잘난 교수의 성공담 혹은 잔소리로 읽힌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남가주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의 소비자학과 교수로 입성한 자의 이력서 아닌가. 사랑 문제에는 아예 주례사 수준이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에게 책을 보여줬더니 인상부터 찌푸린다. 이런 책 한두 권 봤냐는 표정이다. 내가 읽을 책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목적의식에 사로잡혔나? 그런 혐의를 무릅쓰고 책의 미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기성세대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아니라 목소리가 조근조근 낮다. 그러면서 젊은이와 눈을 맞추며 가능성과 자신감의 중요성을 전한다. 스펙 쌓기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대학의 풍속을 두고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비의 주광(走光)’이라고 걱정하며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을 권한다. 저자의 신실함은 방법론을 전하는 데서 빛난다. 이를 테면 꿈을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하고, 정체성은 성찰을 통해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성찰에 이르는 길로서는 독서, 대화, 여행을 꼽는 식이다. 길을 먼저 걸어간 선험자의 내비게이션은 구체적인 지시어로 이어진다. 시간을 잘 관리하라, 신문을 제대로 읽어라, 글쓰기 능력은 힘이 세다….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읽을수록 새롭게 다가선다. 저자는 한국인의 평균연령을 80세로 잡는다면 24세는 아침 7시 12분이라고 셈했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재학 중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이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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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청춘은 아프다.고통을 수반한다.

그것이 마음의 청춘이든 육체의 청춘이든.

고통.책에서 말하는 그 고통이란,무거운 고통이다.

스스로 받아들이는 능동적 고통이자, 나아가기 위한 고통이며무거울수록 더욱좋은 고통이다.

동시에 묘한 즐거움도 수반하는 고통이고, 훗날 환전이 가능한 저축형 고통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진부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교훈들은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으며, 죄다 자기자랑만 늘어놓은 의미 없는 책으로 느껴졌다. 허나 이 책은 진부하지 않았어떤 면에선 지극히 현실적이고 진부한 이야기어서 새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현실을 바탕으로 청춘들을 이해하고 고통을 공감하며 동시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605332/

누구나 하루 24시간 1365일을 알차고 행복하게 채우고 싶지만,

그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시간은 사실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살면서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참 '최선'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특히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하는 인터뷰에선 거의 반드시 등장한다.

"최선을 다한 경기라 만족합니다."

수능이 끝난 후 학생들도 비슷하다.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 했습니다."

조금 느낌은 다르지만.

어른들도 물어본다. 최선을 다했느냐고.

극한까지 나를 몰아붙이고 짜내야 하는 것일까? 그게 최선인 걸까?

내가 쓴 시 중 '최선'에 대한 시가 있다.

시는 단순하다

과연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존재할까? 그 순간 얼마나 노력하여야 최선일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시였다.

결론적으로 난 그냥 그런 것이 싫다. 최선부정하고 싶다.

난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난 아직 여지가 있다.더 잘할 수 있는,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그래서 아직 나는 괜찮다.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노력해도 된다.  

조금 돌아간 그 시간들이 나를 더 풍족하게 만든다. 다음엔 더 잘할 것이다.

이런 시각이 좋다. 이런 생각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이런 생각은 나를 좌절하게 하지 않았다. 좌절하지 않으니 또다른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405104/

과거의 내가 어떻게 나의 최선일 수 있겠는가.인정하고 싶지 않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난 그런 태도 자체가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계속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것이 청춘의 삶이 아니겠는가?

아직까지도 사회 곳곳에서 소위 대들이 활약한다. 

그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 "넌 아직 어려서 잘 몰라" "너도 내 나이 되면 알거야" 등등 

참 바보같다. 사람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해보지 않은 일을 미래에 하게 되고,

여태껏 자신이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가하며 즐거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면 정신적으로 늙은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청춘인 것 같다.

나이는 여전히 숫자일 뿐이다. 젊다고 꼰대가 아닐 거라 생각하지 말자.

'아프니까 청춘이다' 에 실린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내용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 하겠다.

 “곧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일상의 깊은 늪으로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나는 그렇게 빠져들 것이다. 적당한 이유를 댈 수 있는 속도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어느순간 쉽게 이름을 얻고 편히 돈을 얻는 일에 나의 꿈꾸기는 자리를 내어주게 될지도 모른다. 자애(自愛)를 담보로 한 이 도덕적 치열함도 차츰 탈색해갈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아마도 얼굴엔 주름이 지고 이마에는 광택이 들어, 바로 노인의 외모를 가지게 되리라. 치열한 꿈꾸기의 상실은 단순히 나이를 먹어감이 아니라, 안정과 안락의 보수성에서 비롯한다. 슬픔이 시인의 양식이듯, 불안은 치열함의 방부제다. 실패에 내재된 개혁성만이 그러한 꿈꾸기를, 늘 꿈꾸기를 포기치 않는 질긴 나르시시즘만이 그러한 치열함을 가능케 한다. (중략)

늘 꿈꾸기를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꿈꾸기를 망각하는 것이 백배는 더 무섭다. 따라서 꿈꾸기의 가장 은밀하지만 치명적인 적()은 꿈의 성취 바로 곁에 숨어 있다. 그 성공의 보수성. 내가 작은 성취에 마취되어 꿈꾸기를 천천히 잊게 되거나, 삶의 치열함을 차츰 잃게 될 것이 두려워서 이 글을 쓴다. 지금의 이 불안함과, 불안 속에서 키우고 있는 이 치열한 꿈꾸기가 부패하지 않도록.

매일매일 나를 일깨우는 이 버거운 현실과 어둔 미래가 명치끝 그 깊은 곳에서 나를 까맣게 태우는 오늘, 지금이 어쩌면 내 생애 중 가장 풍요로운 순간이리라 되뇌면서, 나태의 나락에서 몸을 추스르지 못할 그 어느 날에 바로 오늘의 불안과 오늘의 자위를 한 번만 되살려달라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984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