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모토 야스시 - aki moto yaseusi

아키 모토 야스시 - aki moto yaseusi

아키모토 야스시

아키 모토 야스시 - aki moto yaseusi

아키모토 야스시 (2012년)

기본 정보
출생1956년 5월 2일(66세)
도쿄도 메구로구
국적
아키 모토 야스시 - aki moto yaseusi
일본
직업작사가
활동 시기1973년 ~ 현재
가족타카이 마미코
소속사아키모토 야스시 사무소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 1956년 5월 2일 ~ )는 일본의 방송 작가, 작사가, TV·음악 프로듀서, 영화 감독이다. 도쿄도 메구로구에서 태어났으며, 아이돌 그룹 AKB48 그룹(AKB48, SKE48, NMB48, HKT48, NGT48, STU48, JKT48, BNK48, AKB48 Team TP, MNL48, AKB48 Team SH, SGO48, CGM48, DEL48, MUB48)과 사카미치 시리즈(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 요시모토자카46, 히나타자카46), 22/7, 라스트 아이돌, 더 코인 록커즈, 청춘고교 3년 C조의 종합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작사를 담당한 가수로는 AKB48, 알피, 이마이 미키, Wink, EXILE, 오냥코클럽, 체킷코, 카하라 토모미, 킨키키즈, 코이즈미 교코, TOKIO, 토모사카 리에, 톤네루즈, 나카시마 미카, V6, 혼다 미나코, 미소라 히바리, 야엔, 와다 아키코 등이 있다.

인물[편집]

1988년, 오냥코클럽의 구성원이었던 타카이 마미코와 결혼했다.

사건[편집]

방탄소년단과 협업 취소[편집]

  • 방탄소년단은 아키모토 야스시와 협업으로 Bird라는 곡을 발표하려 하였으나 협업 발표 며칠뒤 취소하였다.[1]

영화[편집]

  • 《착신아리》 (2004년) 원작
  • 《착신아리 2》 (2005년) 원작
  • 《착신아리 파이널》 (2006년) 원작
  • 《전염가》 (2007년) 원작·기획
  • 《코끼리의 등》 (2007년) 원작
  • 《AKB48: 끝나지 않을 이야기》 (2011년) 기획
  • 《만약 고교야구의 여자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는다면》 (2011년) 종합 프로듀스

저서[편집]

  • 어떤 것을 선택해야 행복할까 (1998년) ISBN 978-89-7221-178-5
  • 10대여 마음가는 대로 해라 (2001년) ISBN 978-89-7919-263-6
  • 나에게 딱 좋은 남자 (2002년) ISBN 978-89-8457-132-7
  • 너는 10대 네 삶의 지도를 그려라 (2008년) ISBN 978-89-7919-805-8
  • 코끼리의 등 (2008년, 산케이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로,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ISBN 978-89-5660-263-9위 목록은 모두 한국에 번역된 책들이며, 발매일은 한국에 발매된 연도이다.

만화[편집]

  • 리리카 SOS (1995년)

담당 방송[편집]

현재
  •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 (구성)
  • 《AKBINGO!》 (기획 협력)
  • 《주간AKB》 (기획)
  • 《오샤레이즘》
  • 《PRODUCE 48》(제작)
과거
  • 우타방 (구성)

각주[편집]

  1. [종합 방탄소년단, 아키모토 야스시 협업→논란→취소 "불편드려 죄송"] - 엑스포츠뉴스

외부 링크[편집]

  • (일본어) 후지 퍼시픽 뮤직 프로필
  • (일본어) 아키모토 야스시 - 일본 영화 데이터베이스

2편3편4편

유머는 어제 퇴근 6시에 못하고 8시까지 의미없는 야근한 내가 오늘도 출근한게 유머

0. 서론

아키 모토 야스시 - aki moto yaseusi

이 만화는 이 것만 넘기고 보면 그럭저럭 볼 만화라고 한다. 물론 난 안봐서 모른다. 본사람 후기좀.

사실 일본 여성 아이돌 이야기 하러면 남성 아이돌 보다 많은걸 알아야 한다.

쟈니스 사무소 처럼 일본 여성 아이돌 공급을 독점하는 회사도 없고, 여러 아이돌 회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lie로 대표되는 LDH, 모닝구 무스메로 대표되는 업프론트 등 여러가지가 있다.

LDH는 실력파 아이돌을 내보내며 나름 노력하였지만 한국 아이돌에게 엄청 밀렸다. 실력파를 자청했지만 댄스와 노래를 분업하여 멤버간 인기가 엄청 갈리고 막상 기초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업프론트는 아이돌 사업보다 다른게 더 엄청 잘나가는 회사라 아이돌에 집중투자를 안한다. 심지어 아이돌도 데뷔하고 사고 안치면 복지도 좋고 월급도 좋게 나온다.

또 단순히 여성아이돌 질적 하락의 원인을 AKB48 멤버 자체만이 원인이다! 라고 하면 애매하다.

AKB48 멤버 자체는 본인들이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지원 한거고, 본인도 춤과 노래를 배우고 잘하고 싶지만 회사가 지원을 안해주는 거 뿐.

심지어 AKB48은 뮤비를 찍기전 2시간 동안 급하게 안무를 외우고 투입되거나, 안무가 뮤비 중간 중간 개 뜬금 없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다들 춤을 전문적으로,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운적 없는 어찌보면 일반인이랑 다를바가 없다.

그래서 이런 엄청나게 끔찍한 공개처형이 발생하기도 한다.

저때가 2010년. 지금으로부터 11년전 소녀시대 전성기 시절과, AKB48이 한창 주가를 올리며 전성기 직전 시절이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아키모토 야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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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 여성 아이돌판을 이상한 방향으로 바꿔버린 어찌보면 선구자이자 갈라파고스 가속화를 진행시킨 인물이다.

현재 AKB48은 자매 그룹으로 15개나 되는 (각 그룹당 48명씩) 엄청난 저글링 러쉬같은 인원수를 자랑한다. 이 모든 그룹은 아키모토 야스시가 관리한다.

거기에 사카미치 시리즈 라고 하는 노기자카46(멤버 43명), 사쿠라자카46(멤버 25명), 히나타자카46(멤버 22명) 또한 프로듀싱 하고 있다.

와 ㅅㅂ 이모든걸 관리 혼자 다한다고? 대단한데? 라고 생각하기엔 22/7 , 라스트 아이돌 이라고 해서 2~3개 그룹을 더 관리한다.

정말 혼자 다해먹는 구조로 만든 아키모토 야스시. AKB48을 알려면 일단 이사람 부터 알아야 한다.

이사람이 이병헌 일본 콘서트 기획하고 여러가지 손을 대서 돈을 벌고 거의 15살 어린 여성과 결혼하며 주식조작 일어난 회사에 재빨리 빤스런 해서 자기는 피해가 없던 여러 일이 있었지만...

여튼 그런건 생략하기로 하겠다

1. 아키모토 야스시의 시작

사실 가장 중요한건 아키모토 야스시는 처음부터 아이돌 프로듀서로 활동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사람은 처음에는 방송국 작가로 활동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고등학생때 라디오 듣다가 개그 코너가 너무 노잼이라 '아 진짜 내가해도 저거보다 잘하겠다' 해서 각본을 써 방송사에게 넘겼고 바로 스카웃 되었다.

이후 츄오 대학으로 진학 하지만 방송국 일과 동시에 학업을 병행 할 수 없어 자퇴하고 방송국 일을 하다가, 일본 전설적 엔카 가수의 마지막 곡을 작사하면서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된다. 

서론에서 혼자 저 많은 그룹을 관리하네 대단하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저 그룹들의 모든 노래 가사를 야스시 혼자서 작사했다고 한다. 지금은 잘 모름.

그리고 아이돌 프로듀서의 길은 오냥코 클럽 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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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모토 야스시가 오냥코 클럽을 전문적으로 혼자 프로듀싱한건 아니다. 이때 그는 그냥 여기 소속된 작가+ 프로듀싱 도 겸업하는 정도였다.

오냥코 클럽은 일반 여성을 불러서 만든 아이돌이다. 사진만 봐도 와 씨 얼마나 오래전이야?? 하겠는데 남성 아이돌 편에서 나온 소년대, 히카루겐지가 활동 하던 시기였다.

물론 이 아이돌 그룹은 이벤트성으로 만들어져 85~87년, 2년만에 해체를 했지만, 적어도 사회적 파장은 굉장히 컸다.

이 오냥코 클럽 전까지만 해도 일본 여성 아이돌에 대한 시선은 '여성 아일돌 = 노래+비쥬얼+댄스 = 정말 우상 같은 존재' 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오냥코 클럽은 현직 고등학생들을 불러 모아 만들고, 그당시 굉장히 선정적인 노래를 부르며 대박을 치게 된다. 노래 제목이 '세라복을 벗기지 말아요'

가사는 뭐 알아서 찾아보도록 하자. 참고로 현직 고등학생들이고, 티비는 방과후 1시간만 나오고 멤버들에게 학업에 충실할것을 권한 아이돌 그룹이다. ㅇㅇ 미친거 아닌가? 생각하면 미친거 맞음.

여튼 이 그룹은 티비 프로그램 기획용으로 만든 급조 그룹이지만 대박을 쳤고, 2년만에 해체되긴 했어도 그 안 인기는 대단했으며 멤버들 중 몇명은 가수나, 연기자 등 방송 관련으로 진출 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일본 여성 아이돌 사업에 커다란 선례를 남겼다. 아이돌이라고 해도 가창력, 춤, 비쥬얼이 대단하지 않아도 성공 할 수 있구나!!! 라는 커다란 선례를.

이후 아키모토 야스시는 90년대, 오냥코 클럽과 같은 성공을 위해 체킷코 라는 그룹을 만들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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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룹 또한 오냥코 클럽과 똑같은 방식이였지만 사실 이때 아이돌 빙하기라 남성아이돌도 여성아이돌도 전부 침체기.

히카루겐지가 뮤직스테이션에 나가서 프로를 먹여 살리는 역활을 할때 만들어진 그룹이라 결과적으로 망했다.

당시 세가의 사외이사였던 아키모토 야스시가 세가의 게임기 드림캐스트를 팔기 위해 체킷코와 콜라보를 해서 광고 하였지만.....

드림캐스트는 폭망하고 채킷코는 초대박을 친 모닝구 무스메에 밀려 결과적으로 1년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세가는 빡치지만 야스시는 응 내잘못 아니야~ 하고 런 해버리는 결과가 발생한다.

2001년 사실상 세가에서 해고를 당하며 세가와의 인연은 끝나게 된다.

이후 추정소녀 라고 하는 진짜 알수 없는 컨셉의 듀오 그룹을 프로듀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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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의 컨셉이 판치라 라는 아니 진짜 이건 뭔 뿅뿅빨고 만드셨어요? 라고 말이 나오는 그룹 이였으며 2001년~2006년 동안 활동하다 해체한다. 

저 듀오는 당시 중학생이였으며 방송에 비키니를 입고 나와 방송을 하거나 판치라 처럼 사진을 찍는 등의 행동을 하고, 2006년 소녀라는 이미지에 맞게 성인이 되기전에 해체를 했다.

그동안 야스시는 앞으로의 일본 여자 아이돌 산업을 뒤엎을 만한 것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