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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만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몰랐다면 결코 상대성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하며 그 중요성을 인정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무거운 돌과 가벼운 돌을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어떤 돌이 더 빨리 떨어질까? 이 질문은 짧게는 17세기의 갈릴레오까지, 길게는 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인 세계관으로 설명한다. 무거운 돌은 무거움의 본성을 찾아 지구로 향하고 가벼운 돌은 가벼움의 본성을 찾아 천상으로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은 유럽의 2000년을 지배했다. 갈릴레오는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무너뜨렸다. 가벼운 돌과 무거운 돌을 함께 묶어서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무거운 돌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돌이 위로 잡아당기고 있으니까 혼자 낙하할 때보다 더 천천히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돌이 묶여 있으므로 전체적으로는 더 무거워졌기 때문에 묶인 두 돌은 더 빨리 떨어져야 한다. 이는 모순이므로 가벼운 돌과 무거운 돌이 함께 떨어져야 한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갈릴레오도 왜 돌멩이가 땅으로 떨어지는지는 몰랐다.
공교롭게도 그런 힘이 우리 주변에 있다. 바로 중력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각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한다. 이런 힘이 두 물체에 작용하면 두 물체의 가속도가 같아진다. 가속도란 단위시간당 속도의 변화이다. 지표면에서 자유 낙하하는 물체는 매초 일정한 크기로 속도가 커진다. 두 물체의 질량이 달라도 가속도가 같다면 결국 동시에 땅에 떨어진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른 중력의 작용. 태양이 시공간을 휘게 하고 지구가 결국 휘어진 시공간을 벗어나지 못한 채 태양의 주위를 돌게 된다. 과학동아DB 실제로 중력장 방정식의 좌변은 시공간의 휘어짐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기하학이다. 이때의 기하학은 고색창연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다른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섯 공준 중에서 이른바 ‘평행선 공준’을 만족하지 않는 기하학 체계이다. 평행선 공준이란 2차원 평면에서 한 직선과 직선 밖의 한 점이 있을 때, 그 점을 지나면서 원래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 존재한다는 공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평평한 평면에서는 직관적으로 아주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공 표면과 같은 2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구본에서 경도선을 하나 생각해 보자. 적도상에서 그 경도선 밖에 있는 점에서 그 경도선에 평행한 선을 지구표면을 따라 그으면 그 또한 새로운 경도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새 경도선은 지구 표면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극지방에서 원래의 경도선과 만나게 된다. 이런 평면에서는 평행선 공준을 만족하는 평행선이 하나도 없다. 반대로 말안장과 같이 생긴 표면에서는 평행선 공준을 만족하는 평행선을 수없이 많이 그릴 수 있다. 또한 평면에서는 삼각형을 그리면 그 내각의 합이 180도이지만, 구의 표면에서 삼각형을 그리면 그 내각의 합은 180도를 넘고, 말안장 표면에서 삼각형을 그리면 내각의 합이 180도보다 작다.
아무튼 아인슈타인이 수학에서 아주 천재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럼에도 당연히 평균 이상은 되었다.) 1912년 동료 과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학에 대한 자신의 존경심을 표하며, 새로운 중력이론을 찾기 위한 여정에 비하면 특수상대성이론은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고 비유할 정도였다. 아인슈타인과 대학동기였던 수학자 그로스만은 아인슈타인에게 고등수학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중력장 방정식은 에너지 분포에 따라 시공간이 어떻게 휘어져 있는지를 결정하는, 즉 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하는 방정식이다. 이렇게 결정된 시공간 속에서 물체(지구와 태양 등)는 어떻게 움직일까? 바로 굽은 시공간에서의 최단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이 최단경로를 측지선(geodesic)이라 부르며, 관련된 방정식을 측지선 방정식이라 한다. 요컨대,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첫째, 시공간에 에너지가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를 확인하고 둘째, 그로부터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하고 셋째, 그렇게 결정된 시공간에서의 측지선 방정식을 풀어 물체의 운동방정식을 구하는 것이 대체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바라보면 과학이 발전하는 궤적은 단절적이라기보다 포괄적이다. 새로운 이론체계는 언제나 이전의 성공적인 체계를 포함하면서 적용 범위를 넓혀 나간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광속을 무한대로 놓으면 (즉, 모든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비해 대단히 느리면) 특수상대성이론은 고전역학으로 돌아간다.
※참고자료 데니스 오버바이, 《젊은 아인슈타인의 초상》(김한영·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