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번 버스 사건 - 420beon beoseu sageon

420번 버스... 마녀사냥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괴벨스- 

어제, 오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240번 건대 사건.
'현재 난리 난 건대역 버스 사건'이라는 글의 작성자(아마도 같은 버스 승객으로 사건의 목격자 일 듯, 어쨌든 최초 유포자)는 버스 번호, 차량 번호, 사건 발생 시간 등을 공개하며 버스 기사가 '어린아이만 내렸다며' 뒷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한 여성 승객의 요구를 무시하고 주행했다고 주장했다.   

대충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니 저 글은 감정 조절을 못하고 객관적 사건을 주관적으로 왜곡시킨 전형적인 C급 선동 문자들의 조합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냄비근성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지없이 저 글에 선동 당해 해당 어린아이가 4살이라느니 버스 기사의 아동 학대라느니 버스 기사의 해고는 물론 버스 기사의 신상을 털어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 한다느니 등등 버스 기사를 향해 온갖 폭언과 악담을 퍼부우며 마녀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나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외부 CCTV 상황과 버스 운행 기록을 찾아보았다.
1. 아이와 엄마가 버스에 탔음
2. 아이와 엄마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음
3. 엄마와 떨어져 있던 아이가 내림(차례대로 승객들이 하차한 것으로 보아 강제로 떠밀려 내려진 것 아님, 스스로 내림) 
4. 문은 16초나 열려 있었지만 엄마는 그때까지 아이가 내린 걸 인지하지 못하고 안 내림
5. 버스 기사는 하차 승객이 더 이상 없는 줄 알고 문을 닫고 출발
6.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그 10초' 동안 엄마는 (버스에서 이미 내려버린) 아이를 찾음 
7. '그 10초'가 지나서야 엄마가 버스 기사에게 내려달라고 요구함 
8. 당시 버스 기사는 이미 2차선으로 진입한 상황
9. 주행 중 정류장이 아닌 곳에 내려주면 사고 위험도 있고 규정에도 어긋나 버스 기사는 출발 20초 후 다음 정류장에 내려줌  

이것이 내가 파악한 가감 없는 상황의 전부였다.
결론은 '버스 기사가 무차별적으로 마녀사냥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으며 아이를 제대로 캐어하지 못한 엄마의 부주의가 좀 더 부각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광우병-채선당-세모자-정명훈-선릉역짬뽕...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 국민 수준은 그리 변한 게 없는 듯 하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한 경우가 아니라면, 양쪽 주장을 들어보고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에 비난을 하든 비판을 하든 늦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건만 터지면 사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뭔가 나서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허술한 정의감으로 둔갑한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이 혼자 힘으로는 안 되니까 허위로 사람들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거짓 선동 글을 많이 쓴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런 보잘것없는 글에
쉽게 선동 당해 마녀사냥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 사실관계가 확인돼 피해자-가해자 뒤바뀌기라도 하면 '기레기' 탓하면서 발뺌하기 바쁘다.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변명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선동과 조작이 사회 불신과 분열을 조장하는 걸 모르는 것은 10년 전 그대로다.어쨌든 최초로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 앞뒤 다 자르고 사실 여부 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고 조회 수 올리기 위해 그냥 막 실어 나른 기자들. 선동꾼의 선동에 휩쓸려 맹목적으로 죽어라 욕하기에 바빴던 개념 없는 네티즌들.
모두들 자신들이 한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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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를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댓글과 답글을 발견했다.
취향저격! 사이다!
자네가ㅡ직접 똑같이ㅡ당해봐ㅡ그런말ㆍ나오나
똑같은 일 당해도 내 탓을 남 탓하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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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대역 버스 정류장[중앙포토]

버스 기사에서 아이 엄마로, 다시 최초 글 게시자로 향한 마녀사냥터가 된 240번 건대역 버스정류장을 14일 찾았다. 지난 사흘 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사건의 중심지 주소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22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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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역 정류장과 건대입구역 정류장 사이 교차로.[중앙포토]

정류장은 지하철 2호선이 7호선이 만나는 교차점 인근에 있다. 왕복 8차선 도로 중간 오른쪽에 붙어 있었다. 8차선 중앙에는 청담대교에서 이어져 온 고가가 끝나는 지점이 있다. 경기도 분당에서 출발한 광역버스가 서울로 처음 진입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류장에는 240번 버스를 포함해 간선버스 2대와 지선버스 2대, 마을버스 1대와 직행버스 1대 등 버스 6대가 정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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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역 버스정류장 인근.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고, 대형 백화점과 대학 병원이 위치한 곳이다.[중앙포토]

정류장 오른편에는 롯데백화점 스타시티점, 북쪽 길을 건너서는 건국대 병원이 자리를 잡았다. 혼자 내린 딸(7세)을 찾아 발을 동동 굴렸을 엄마가 내린 다음 역은 건국대병원 앞 정거장이다. 건대역 정거장과는 280m 떨어져 있고, 시간은 1분 30초가 걸렸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건대역 정거장까지 걸어보니 2분 30초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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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6시 30분 무렵 교차로를 지나는 240번 버스. 퇴근 시간 대라 교통량이 많은 구간이다.[중앙포토]

버스는 다음 역인 건국대병원 정류장을 가기 위해서는 대형 교차로를 거쳐야 한다. 교차로 중앙을 기준으로 왕복 8차선 도로가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다. 버스는 건대역 정류장에서 승객들을 내린 뒤 80m 이내에 차선을 갈아타야 했다. 그래야 건대입구역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를 받을 수 있다. 신호 대기 중인 버스 오른 쪽으로 우회전하는 차량이 줄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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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역 정류장에서 80m 거리에 있는 교차로 직전 도로. 차선을 바꿔야 직진할 수 있다.[중앙포토]

 이 지역에서 4년 동안 음료 배달 판매를 맡아 왔던 40대 여성은 “오토바이 사고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정류장이 아니면 버스 운전기사가 내려주지 않는다. 오토바이 사고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후 3시 무렵 교통경찰도 교차로에서 캠코더를 손에 들고 단속을 하고 있다. 그는 “교통량이 많은 곳이라 상시 단속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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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6시 30분 무렵 건대역 정거장. 하차 시간이 계속 길어진다.[중앙포토]

 사건 당시 시간대인 오후 6시 20분쯤 건대역 정류장을 찾았다. 6시 27분 버스는 3명이 승차하고 11명이 하차했다. 6시 42분에는 5명 승차, 24명 하차했다. 하차 시간도 18초에서 33초로 점점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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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6시 30분 무렵 240번 버스 내부. 발 디딜 틈이 없다. [중앙포토]

 이번엔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7시 10분, 버스 복도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건대역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나오고 버스가 정류장에 진입했다. 제 시간 안에 내리기 위해 “내릴게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두 번을 외쳤다. 정류장에 진입한 버스의 뒷문이 열리고 닫히기까지 걸린 시간은 35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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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8시 420번 버스 내부. 버스 운전석은 유리창으로 가려져 있다.[중앙포토]

 혼잡 시간이 지난 오후 8시 무렵 다시 버스를 타고 건대역 정류장에서 다시 하차를 했다. 버스 운전기사 자리는 모두 유리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엔진 소음도 컸다. 엔간히 큰 목소리로 “내릴게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아이가 없어져 당황한 30대 여성이라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김민상·이민정·김은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