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어떻게 넘어 - nana eotteohge neom-eo

“나나, 언제까지나 함께 살자”

야자와 아이의 <나나> 리뷰

정이은 | 입력 : 2005/11/07 [20:39]

사랑, 그리움, 우정, 미움, 슬픔, 안타까움, 증오 등 감정에는 여러 이름이 있다. 그러나 이성과 달리 감정은 구구단처럼 똑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모호하고, 정의 내리기는 더 어렵다. 우리는 수없이 되묻고 의심한다. 사랑인지, 미움인지, 혹은 그리움인지. 특히 동성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일 경우엔, 주위의 시선 때문에 감정을 전부 드러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굳이 표현하기를 원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차라리 감정을 그 자체로 내버려 둔다면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을까.

야자와 아이의 <나나>에는 두 명의 나나가 등장한다. 오사키 나나와 고마츠 나나. 그러나 고마츠 나나는 줄곧 “하치”라고 불린다. 나나와 하치는 도쿄로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다.

오사키 나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나치게 화려한 생김새와 분위기로 십대 여자 애들에게 인기 만점인 인물이다. 언제나 혼자였던 오사키 나나는 상처가 많아 자신을 내보이지 않고, 사람에게 정을 주는 일도 별로 없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한 번도 자신의 노래 실력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이 정도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세상이 잘못된 거야.” 그는 메이저 데뷔라는 목표를 위해 도쿄행 열차에 오른다.

고마츠 나나는 오사키 나나와 정반대의 환경과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언니, 동생과 부대끼며 자랐다.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해내고 싶은 일도 없다. 오로지 상경한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싶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사실 버릴 것도 별로 없다) 기차에 올랐다. 누구 앞에서든 강아지마냥 샐샐거리고 웃는다. 하치에게는 싫은 것도 무서운 것도 없고, 더구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금은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났다. 하치가 나나의 기타에 걸려서 그 앞에서 방정맞게 넘어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나는 특유의 매서운 눈초리로 너 뭐냐, 며 노려본다. 하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주눅 들지는 않는다. 잠시 얌전하게 앉아 있었을 뿐, 금세 밝아져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나나는 지나치게 화기애애한 하치의 분위기가 어색하지만, 역시 금세 적응해서 하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하치는 지치지도 않고 자기가 왜 도쿄에 가고 싶어하는지, 지금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주절주절 잘도 떠든다. 오사키 나나가 고마츠 나나를 “하치”(강아지 이름)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쯤이면 이해가 된다.

기차가 도착하면서 그대로 헤어지기는 했지만 하치는 도쿄에서 가끔 나나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나는? 도무지 속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라 그것은 잘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나와 하치는 함께 살게 된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도쿄에서 둘은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고 아껴준다.

하치는 상경하고 얼마 안 있어 남자친구와 헤어지지만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동안 곁에서 하치를 지켜준 사람은 나나다. 나나에게도 남자친구가 있다. 그는 제멋대로긴 하지만 나나를 꽤 아껴준다. 그러나 나나와 하치는 언제까지고 함께 살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다. 나나는 남자 때문에 울기만 하는 하치가 쉴 수 있는 커다란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다.

<나나>는 발행 당시 여성독자들에게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화제가 됐다. 일본에서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과 트리뷰트 앨범이 나오고,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큰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물론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공이 크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치는 사랑과 실연에 연연하는 전형적인 순정만화 캐릭터고, 독불장군 나나도 한 남자만을 좋아하는 순정파다. 얼핏 보면 지루하고 진부한 설정이 만화의 포인트다. <나나>는 여성들의 경험과 감정을 건드린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친구에게 느꼈던,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두기에는 너무나 컸던 그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좋아하는 남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말이다.

뒤에 하치는 고백한다. “나에게 있어, 나나는 그때까지 만난 누구보다도 운명을 느낀 상대였다. 끊어져 있던 붉은 실도 한 쌍의 반지가 이어주는 것만 같았다”고.

다시 한 번 <나나>를 읽으며 문득 나나와 하치의 감정이 우리가 동성애라 일컫는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도 나나와 하치가 서로에게 품는 소중한 감정을 단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관계를 동성애라고 이름 붙이지도 않는다. 여자애들이 겪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선에서 서로를 찾고 엇갈리는 과정들만을 보여준다. 판단은 모쪼록 독자들의 몫.

어찌 생각해보면 감정의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두 사람에게 그게 중요하랴 싶기도 하다. 부디 나나들이 더는 남자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오랜 팬으로서 이제 13권으로 접어든 <나나>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자 2005/11/11 [16:15] 수정 | 삭제
  • 나나팬팬 2005/11/09 [18:53] 수정 | 삭제
  • 나나팬 2005/11/09 [17:39] 수정 | 삭제
  • 2005/11/09 [10:10] 수정 | 삭제

Toplist

최신 우편물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