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 직업 - joseonsidae yangban jig-eob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데요!

여러분들은 양반다리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양반은 조선시대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집안의 사람을 일컫는 말로

관리가 된 이후에는 나라로부터

땅이나 곡식을 받아 넉넉한 생활을 했죠~

이 사람들이 과거 시험을 준비할 때

주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던 자세

양반다리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럼 양반이외에 조선시대 계급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조선시대 계급, 즉 조선시대 신분제도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계급은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조선시대 계급이 구성되어 있었죠~

양반은 관료 문반과 무반을 뜻하였으나

추후 그 가문까지 칭하는 신분으로 정착되었으며

서얼과 중인으로 구성된 중인,

농민, 수공업자, 상인 이외에도

신량역천이 포함된 상민,

노비, 백정, 무당, 광대 둥으로 구성된 천민으로

조선시대 계급이 나뉜답니다.

조선시대 신분제도 중 신량역천이란

신분은 양인이지만 천역을 담당한 계층으로

조례, 수군 등에 종사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양반은 관료를 뜻했죠~

납속책과 공명첩에 대해 아시나요?!

납속책과 공명첩이란 일정한 금액을 국가에 납부하면

노비 신분을 면해주는 정책과

재물을 받고 형식상 관직을 부여하는

일종의 백지 임명장을 말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모자란 국가 재정 확충을 위해

일부 상민들에게 돈을 받고

관직을 주면서 양반이 증가하게 된 것이죠.

또한, 세금과 역을 면제 받기 위해

족보를 위조한 양반이 증가하기도 했답니다.

음서제도고려시대로부터 이어진

신분 세습을 뜻합니다 :)

조선시대 직업, 신분에 따라서도 달랐겠죠~

중인은 특히 양반 첩의 자식으로

문과 응시가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중인은 무과에만 응시가 가능했으며

주로 중인 조선시대 직업은

향리, 역관, 기술관, 의관, 천문관 등의

기술직 중인으로 구성되었답니다.

조선시대 상민은 임진왜란 이후

상민이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하자

그 수가 줄어들어 국가 재정이 감소했다고 해요.

상민은 조선시대 직업으로 농민과 수공업자, 상인

속한 조선시대 신분이랍니다.

부를 축적한 농민이 성장한 부농층

농민들 다수가 소작농으로 전락하면서

농촌을 이탈하여 도시나 광산의 임노동자

구분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천민의 조선시대 직업은

노비, 백정(화척, 양수척), 무당, 광대 등으로 구성되며

특히 노비의 경우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노비는장례원이라는 관청을 통해

국가의 관리를 받았으며

관청에 소속되어 신공을 납부하는 공노비

개인에게 소속된 사노비로 구분되죠!

임진왜란 이후에 상민층이 감소하면서

아버지가 노비더라도 어머니가 양인일 경우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규정한 노비종모법

순조때 세금을 납부하는 상민층을 늘리기 위해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공노비를 양민으로 삼는

공노비 해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상으로 조선시대 계급, 신분, 직업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았는데요~

그동안 조선시대에 관한 신분제도가

궁금하셨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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