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3장 1 10 설교 - haeng 3jang 1 10 seolgyo

제목: 예수의 이름으로

말씀: 사도행전 3장 1-10절

(예화) 한 여성이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문 앞에 서 있던 베드로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정확히 말하기 전에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L. O. V. E’라고 철자를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여인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리고는 여인에게 급한 일로 자리를 비워야 하니 잠깐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도착하면 뭐라고 하죠?”

“누구든지 오면 내가 했던 것처럼 물어보면 됩니다.”

그녀가 서 있는데 잠시 후에 그녀의 남편이 걸어왔습니다. 놀란 여인이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애들은 어쩌고 벌써 여길 와요?”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장례 마치고 아이들은 장모님께 맡기고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심장발작으로 죽어서 여기로 오게 되었어! 여기가 천국 가는 문이지?”

남편의 말을 듣고 괘씸한 생각이 든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아직 아니에요. 내가 말하는 단어의 철자를 정확히 말해야 들어갈 수 있어요!”

남편이 무슨 단어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잠시 고민 후에 대답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남편이 천국으로 갈 사람인지는 아내가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천국 갈 사람인지는 남편이 알고 있습니다. 남편이 좋은 사람인지는 아내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남편이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평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평가’ 하는 것이 제일 정확합니다.

우리는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나와 가장 가까운, 또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평가가 나에 대한 진정한 평가입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오래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받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에게 가장 가까운 하나님으로부터는 어떤 평가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하지 말고,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배려하고, 사랑하는 인생을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화)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억만장자입니다. 비록 그는 지금 죽었지만 그의 업적은 지금도 많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회자됩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인생의 오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젊어서 동거를 통해서 얻은 딸 ‘리사 브래넌 잡스’라는 사람입니다. 잡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자신의 딸이었던 ‘리사 브래넌 잡스’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법원에서 ‘잡스’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는 단지 한 달에 500달러만 양육비로 주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억만장자인 그는 그 혼외자 딸에게는 냉혹한 아버지였습니다.

그 딸 ‘리사 브래넌’이 자신의 인생을 담은 ‘회고록’을 하나 썼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small fry - 하찮은 존재‘입니다.’

잡스의 혼외자 딸 리사는 어릴 때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은 상황을 보면서 자신은 아버지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존재이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기초 생활 수급자로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과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찮은 존재’로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리사는 ‘돈’ 만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업도 해 보고 돈도 벌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자신을 향해서 ‘하찮은 존재’로 보는 듯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자신에게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신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small fry’라는 책에서 ‘하찮은 존재’는 없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찮은 존재’는 자신이 만든 허상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경제 위기’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경제 위기’가 아니라 ‘영적 위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것이 ‘경제적 어려움’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 어려움’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 힘’이 작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경제적 어려움이 온다고 하더라도 ‘영적 힘’ 이 뒷받침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거뜬히 그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인생의 수많은 고난을 잘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려움’을 통해서 나의 ‘영적 ’ 상태를 점검하는 기회로 여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비참한 인생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하찮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는 ‘태어나면서 앉은뱅이’된 사람입니다. 그의 나이는 40을 갓 넘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에게는‘기회’가 주어집니다.

어떻게 그 비참한 인생 가운데 ‘새로운 인생’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일까요?

1. ‘자리’를 잘 잡으라

다 같이 2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인생의 기회는 ‘자리’에 달려 있습니다.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의 직업은 ‘거지’입니다. 거지도 급이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시단’이라는 상업 단지 안에는 ‘상의를 탈의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절을 하며 돈을 구걸하는 사람’ 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일 년에 벌어가는 돈이 2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호화로운 집 두 채와 자동차 4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돈 주는 사람보다 더 잘 버는 거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돈을 구걸하는 사람 중에는 억대 연봉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 흔히 말하는 몫 좋은 곳에서 장사(구걸)를 해야 큰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오는 앉은뱅이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평생 소망하던 일어나 걸어보는 일을 오늘 그는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자리를 잘 잡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앉은뱅이가 구걸하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성전 미문’입니다. 사도행전 저자 ‘누가’가 이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구걸의 장소로 ‘성전’ 미문으로 정했습니다.

사실 구걸하기 위한 장소는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붐비는’ ‘시장’에서 구걸해도 좋을 수 있습니다. 또 술집 같은 곳을 선택해도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을 선택했습니다. 그곳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입니다.

이 앉은뱅이가 ‘베드로’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베드로가 ‘기도’ 하기 위해서 성전에 가다가 만난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나름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기도’ 하러 가는 사람은 그 마음이 겸손하고 긍휼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들어갈 때는 모르지만 기도하고 나올 때는 마음들이 더 좋아져서 나에게 더 큰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오늘 그의 인생을 바꾸게 했습니다.

성전을 가까이하십시오, 이 말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뜻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까이하라는 뜻입니다.

인생 축복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속에 있습니다.

비록 그는 기도하지는 못합니다. 그것도 사실 그의 의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전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는 장애를 가졌기에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성전 미문으로 출근을 합니다.

저는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가까이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가까이하십시오

성전 안도 아닌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가 오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디 서 있습니까? 하나님 곁에 서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6절)

거지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입니다.

오늘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든’ 이 앉은뱅이는 ‘금과 은’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베드로와 요한’ 에게는 ‘금과 은’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베드로’ 에게 금과 은이 없었다는 사실이 오늘 ‘앉은뱅이’에게 큰 축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금과 은이 있었다고 하면 베드로는 금과 은을 그 거지에게 던져 주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금과 은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앉은뱅이’ 에게 금과 은보다 더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들이 사라지는 경험’ 들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사모하기 위해서는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 앉은뱅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그 앉은뱅이를 향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바로 ‘예수의 이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잊혀진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입니다.

교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능력’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들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더 이상 ‘예수의 이름’을 찾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삶을 일으키는 것은 금과 은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이름’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이름은 ‘예수의 이름’이고,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이름이 바로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 감리교회가 자랑하는 선교사 중에 스탠리 존스(1884년∼1972년)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인도에 가서 복음사역을 하는데 일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그를 성자로 추앙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쓰러졌습니다. 뇌출혈, 곧 중풍에 걸린 것입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89세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중풍인데 90세 가까운 나이에 쓰러졌으니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미국 보스턴으로 후송이 되었는데, 그는 자기를 치료하는 의사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를 보실 때마다 스탠리 존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이렇게 외쳐주십시오.”

의사가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아니, 선교사님! 저는 베드로도 아니고 요한도 아니고 또 부흥사도 아닌데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외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스탠리 존스가 억지로 강권하니까 의사는 어쩔 수 없이 볼 때마다 그렇게 외쳤습니다.

“스탠리 존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그때마다 그는 침상에 누워 있다가 큰 목소리로 “아멘! 아멘!”으로 화답을 했습니다. 그는 중풍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간호사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아침에 나를 보러 올 때 ‘굿모닝’ 하지 말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해 주겠어요?”

매일같이 “일어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일어나라!”하는 말씀이 귀에 확실하게 들려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간호사는 황당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환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스탠리 선교사의 병실로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리에서 일어나라!”

역시 그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아멘!”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놀랍게도 6개월 만에 완쾌가 됩니다. 그가 병원에 들어올 때는 들것에 실려서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자기의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서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했습니다. 그는 선교지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어떤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회복되는 인생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본문의 의도입니다.

‘누가’가 이 에피소드를 성경에 쓴 목적 말입니다. 오늘 사건은 초대 교회 가운데 일어난 최초의 기적 사건입니다. 이 기적 사건을 통해서 누가는 특별히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단순히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기적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8절’을 보십시오. 여기에 ‘누가’의 의도가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바로 앉은뱅이는 그가 일어난 후에 그가 한 것은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숨겨진 사실입니다. 그는 평생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저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드디어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고, 자신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놀라운 이유는 바로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인생을 성전’으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 있음은 바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앞에 들어갔을 때 ‘러브’라는 단어는 몰라도 됩니다. ‘체코 슬로바키아’라는 단어를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 삶에 그 이름이 중심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십시오, 성전을 가까이하십시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날마다 일어서는 회복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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